간절히 @ 두려움 없이
전여옥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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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도 다 끝난 고3의 끝무렵. 벌써 마음은 이미 학교 담장을 넘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친절하게 편성한 프로그램 가운데 유명인 선배나 앞선 여성들을 모셔놓고 얘기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에너지 넘치는 전여옥 씨를 처음 만났다. 졸업 후 만나게 될 세상이 두려웠지만 그녀의 강연을 듣다보니 징징거리며 나약한 여자로 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글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그녀의 에너지를 주변 사람에게 전이시킨다.

그녀의 다른 책들에도 나타나있지만 그녀는 처한 악조건을 묵묵히 참고 순응하며 사는 스타일은 아니다. 자기 합리화에 뛰어나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마인드컨트롤 해가며 해쳐나갈 줄 알며 다소 감상적일 지언정 자신감에 넘치고 덩달아 기분좋은 최면에 걸리도록 만들어준다. 어차피 어려운 현실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장점을 찾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삶을 대하는 여자의 풍성한 수다를 듣고 있는 것은 확실히 즐겁다. 잘난 여자의 잘난척은 그냥 웃으며 들어줄만 하지 않은가.

그녀는 자신이 겪었고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을 통해 배운 삶의 노하우를 명쾌하게 요약하여 아낌없이 전달한다. 하루하루 자극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무심하게 사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하잖아'하고 큰 목소리로 다그치며 자극시키는 인생 선배 같다고나 할까.

경제적 독립, 외모, 사랑, 조직생활의 노하우, 이혼, 다이어트, 재테크,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파워풀한 어조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refresh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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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자이너 모놀로그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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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엔가 소속감을 느낄 때 사람은 안도하게 마련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한 사람의 여성임에 안도했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문제들로 혼자 고민해야 하는 여성이 아니라 서로 감싸 안아주고 자기 자신을 찾도록 도와주며 함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고 터전을 마련해나가는 당당한 여성들의 무리에서 나는 함께 빙긋 웃었다.

연극을 놓치고 책으로 만났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터미널에 앉아서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엔 옆에 앉은 다른 사람들이 책 내용을 오해하여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책을 슬그머니 가리고 읽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은밀하다고 생각했던 단어와 마주치면서 나는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겪어온 부당한 일들에 함께 분노했으며, 수치스럽고 억눌려왔던 여성들의 욕망이 자유로와지는 순간 웃을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여성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자유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왜 공공연한 진리가 배제되어 온 것일까. 감히 딴지 걸지 못하는 사실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온 것만으로도 이 책은 유쾌하다.

'버지니아'에 옷을 입히고 '버지니아'를 향해 귀를 기울여 얘기를 듣고, 여성들이기에 할 수 있는 자유롭고 즐거운 상상들로 버지니아가 더이상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소중히 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도 이 책의 힘이다. 또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폭력을 당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의 성이 주체성을 지니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환기시켜준다.

인간적으로 여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남자들을 위한 책이며, 억압된 사회구조에서 자신의 몸, 자신의 의지, 바로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여성들을 위한 책이다.
두려움없이 당당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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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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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내내 영상이 아른거렸다. 사람이 오가는 소란스런 공항의 대기실에서 바람이 머리카락에 날리는 날, 풀냄새가 나는 묘지로 다시 공항의 대기실 또 유럽영화에 나오는 낯선 인테리어의 집, 다시 공항의 하얀 벽 귀퉁이로 전환되는 씬을 따라 다녔다.
융통성없어 보이는 외모로 매사 따분하고 관심없다는 표정의 한 남자와 껄렁대며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기분나쁘게 실실 웃으며 엉뚱한 소리나 해대는 또 한 남자. 시종일관 서로를 무시하는 투의 두 남자의 대화로 이어지는 이 책은 실제로 가독성이 고려된 편집과 글자 크기 때문에 어려움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반면, 중간 중간 작가의 지적인 관념을 드러내기위한 철학적 인용 때문에 멈춰 꼼꼼히 되새기게 만들기도 한다.

제목을 충분히 의식하고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긋나는 불편한 그 둘의 대화에 말려들어 갑작스런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이적'이라는 가수는 실제로 자기 자신을 적으로 설정하고 'this 적'이라는 가명을 지었다던데, 내 안의 적을 의식하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럼없이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해야 했던 그에게 거침없고 무자비한 말투의 내적 자아와의 대면은 그를 얼마나 괴롭혔을 것인가.

자살에의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버티지 않고 순순히 자살을 감행해나가는 인물들을 작품속에서 낳으며 그녀 자신은 알코올 대신 차를 즐겨 마시며 절제되고 정제된 채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심히 느긋하게 읽기. 그리고 놀라 잠깐 멈춤 시간 몇 초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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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진단 2 - 만화로보는
이원복 / 조선일보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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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진단]의 2권 째. 1권이 정보와 현대인의 고독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권의 키워드는 여성, 냉전체제의 붕괴, 통일된 독일, EC 통합 등이다. 우선 신장되어 가는 여성의 권익에 대한 인식과 세계의 변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며,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이에 파생되는 문제들에 대응하는 여러 국가들의 변화와 통일을 맞게 된 독일이 실제 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구동독과 서독의 문제들도 짚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목소리를 담은 여러 유형의 운동이나 이 책이 씌였던 당시 EC통합을 앞두고 불거져 나온 화폐 통합과 칭호 문제부터 다양한 난제를 어떠한 방법으로 타협과 절충을 해왔는지도 엿볼 수 있다. 변모한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의 키워드를 파악할 수 있으며 교육계, 종교계에 인 변화의 바람도 느낄 수 있다.

또한 대딩 때 미처 만족스럽게 채우고 나오지 못한 교양과목들의 답안지들이 다시금 생각날 만큼 고전을 쉽게 풀이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과학혁명의 구조 - 토마스 S. 쿤> /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카를 R.포퍼>/ <세속도시- 하비콕스> / <역사와 계급의식- 게오르크 루카치>/ <부정의 변증법 -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이 그것이다. 어려운 얘기를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으려면 100%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고 그것도 만화로 표현해내기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님을 알기에 그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딩때 이 책을 제대로 읽었더라면 사회주의니 변증법이니 하는 것들을 답안지에 서술하기가 좀더 쉬웠을 것을, 아쉽기도 하다.

독일의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취업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을 보고 이원복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취업박람회를 열어보는 게 어떨까 하고 만화컷에서 다루고 있는데 실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세계의 흐름을 의식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개선점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끊임없이 세계의 움직임을 주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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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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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실은 아무 연관성도 없는 어떤 개별적인 사실들에 개연성을 부여하도록 자신으로부터 강요당하는지도 모르겠다. 폴오스터도 그리고 자신의 대변인인 주인공 삭스도 또 이 책에 등장하는 일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예술가인 마리안 터너도 그들은 예술 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어떤 컨셉과 규정된 룰을 따라 이루어져야 안심하고 자기 삶에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듯 하다.

실제로 삶은 어떠한가. 어떤 인과관계로 성립되기에 사실 우연이 넘치고 바로 몇 분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것을 우연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선택이다. 우연, 운명 둘중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데 스스로 자유롭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삭스는 운명 쪽에 섰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삭스와 피터의 만남,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결혼할 여자를 선택하고 또 이혼을 결정하고 벌어진 상황들을 헤쳐나오는 방법을 나름대로 결정하고, 자신의 나머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나갈 것인지 결정하기 까지 이 모든 것이 우연에서 비롯된 상황들을 자유의지로 이끌어온 것 뿐이다.

작가의 설정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엉뚱하고 다소 작위적인 전개방법은 어색했으나 개별적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서술방법은 대중소설처럼 쉽고 재미있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향해 던지는 말들은 통찰력이 있고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날 태어났고 자신도 결국 테러리스트가 되어 폭사로 죽음을 맞게 되고, 예의를 갖춘 옷을 입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갔던 6세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자유의 여신상을 폭파하러 다니는 행위를 감행하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 만든 운명이고 설정이다. 삭스는 소설을 통해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파괴함으로써 세인들의 관심을 일으키고, 디마지오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그의 삶을 대신 사는 듯 정의를 구현하고자 자처하고 나섰다.

삭스는 디마지오가 썼던 '베르크만'에 대한 논문을 읽으며 자본주의 압제의 상징을 제거할 생각으로 저격을 시도했던 베르크만을 통해 어떤 형태의 정치적 폭력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이해했다.'정확하게만 사용된다면 테러리즘은 당면한 문제를 극화하기 위한, 제도적인 권력의 본질에 대해서 일반 대중을 일깨우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어.' 911 테러로 한 방 크게 얻어맞은 현재의 미국에게 자성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이미 꼬집고 있었다.

홉스는'리바이어던'에서 탐욕스러운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공포를 규제하고, 인간의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의 보장하기 위해 상정한 대상이 곧 국가인 '리바이어던=거대한 괴물'이라고 했다. 그러면 자유의 여신상을 파괴하고 다닌 삭스의 행동은 이런 국가를 향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엿먹으라는 말인가. 어쨌거나 급작스럽게 국가 운운한 결말은 소설 전체의 흐름에서 봤을 때 약간 오버였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보면 삭스는 어느 순간 마리아와 유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고, 릴리언과 마리아는 유사한 방식으로 남자들을 매혹시키며, 피터는 삭스의 친구인만큼 그와 닮아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천연덕스럽게 소설에 말려들어 지루하다고 느낄 새가 없고 의심할 틈도 없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설명형으로 끝낸 결말 부분은 설득력을 잃고 미심쩍어 책을 덮었을 때는 뭔가 할말을 다 못한 원고를 읽은 듯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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