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독일인 이야기 - 회상 1914~1933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 돌베개 / 2014년 10월
평점 :
1.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스릴러나 호러에도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단 추리물이라거나 호러물이라면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책으로 치자면 호러물은 (의외로) 추리물보다 더 협소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호러물 자체는 굉장히 대중적인 장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어릴 때 '학교 7대 불가사의'류의 괴담을 속닥거리며 나누던 시절이 있을 것이고,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 영화가 스크린에 오르지 않던가.
어디에서인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공포물을 접할 때는 일종의 카타스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화면이나 책 속에는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보는 사람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다. 때문에 그 공포는 '현실의' 공포가 아니라 '안전한' 공포이며, 오히려 무서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현실의 안전함을 재확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문에서 사건/사고를 읽으며 끌끌거리는 마음이나 각종 재난을 다룬 이야기를 읽는 마음 역시 비슷할터이고, 조금 더 확장해보자면 내가 홀로코스트 이야기면 일단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다 이런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끔찍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접해도, 비록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해도 결국 나와는 거리가 있는 사건이다. 때문에 나는 안전하며, 지금의 인류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마음 놓고 편안한 쿠션에 몸을 묻은 채 끌끌거리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일 테고. 홀로코스트 이야기는 내게 세련된 공포 영화와 다름이 없는지도 모른다. 응. 어쨌거나 다 지난 날의 이야기니까. 나는 안전하니까. 이런 종류의 책을 다 읽을 때면 늘 생각하곤 한다. '정말 끔찍한 일이야!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 이 때 태어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지 뭐야. 그리고 설마 이런 일이 또 일어나겠어.'
2.
도서관에서 이 책을 뽑으면서 나는 이번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시점만 바뀌어서 다시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사는 사람의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누구나 홀로 죽는다(http://icarus104.egloos.com/5733603)'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 그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들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만.
이 책은 나치 치하에 얼마나 독일이 비참했는지,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고발하는 그런 글은 아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앞으로 있을 전쟁을 예감하며, 1차 세계대전의 발발부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3년까지의 일을 회상하고 있는 글이다.(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1939년 9월 1일이며, 이 글의 구상이 나온 것은 1939년 봄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죽음의 수용소 이야기나 게토 이야기, 유대인들을 거리에서 쏴 죽이는 이야기, 강제 노동 등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하다. 히틀러와 나치에, 각종 유대인 탄압이나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많아도,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이 시기는 내게 거의 '미싱 링크'에 해당한다. 게다가 저자는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 시기를 써 내려간다. 이런 시선 역시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모든 세계사 교과서에 꼭 나오는 1차 세계대전에 대해 쓰면서도 '사라예보 사건'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전쟁의 발발은 '휴가가 취소되어 슬펐던 날'로 기억되며, 전쟁 중 시기는 매일같이 게임을 하는 듯 즐거웠던 시기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역사적인 사건은 집중도가 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역사적인 사건'은 실제 현실, 즉 개인의 사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사건도 있다. (중략) "1890년,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해임하다." 분명 독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에 관련된 몇몇을 제외하면 어떤 독일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생활은 전과 다름없이 계속되었다. (...) 데이트 약속이나 오페라 공연조차 취소되지 않았다. (...) 이를 다음 사실과 비교해보자. "1933년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다." 6,600만 명의 인생에 지진이 일어난다! (p.18)
이 말 그대로다.
3.
처음에는 흥미롭게 읽기 시작한 이야기가 점점 힘겨워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뒤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 하는 동시에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 책장을 덮고 한숨을 쉰 것이 수십번이다. 중간에는 너무 읽기가 힘들어서 잠깐 책을 덮고 만화책으로 도피하기까지했다. 어째서일까? 이 저자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냥 딱히 정해진 정치색 없이 그 날 그 날의 일상을 살아내기 바빴던 사람이었다. 사회면을 보고 끌끌거리면서도 올림픽 등에서 자국의 우승에 가슴 설레하던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회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취업을 해 보려고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나 나나 사람 자체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2015년에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민주주의' 나라라는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고 저자는 1933년(마지막 회상 기준) 독일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아가던 딱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 정도이다. 그런데.......그런데 왜 이렇게 그와 내 삶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보이는 걸까? 왜 저자가 묘사하는 삶이 지금 내 삶과 이렇게 비슷하지? 그걸 처음 자각하던 순간 등 뒤가 서늘해졌고, 이후 페이지 페이지마다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에 원래 표시를 하지 않는 나지만, 중간 중간 인상깊은 장면마다 체크를 해 놓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내 다시 체크하길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법이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하고 일상생활도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 자체를 나치에 대한 승리로 보려 했음을 고백한다. 저들이 아무리 거칠고 요란하게 행동해도 기껏해야 정치적 표면만 휘저을 수 있을 뿐 그 아래 현실 생활이라는 대양의 깊은 곳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을까? 그 때 이미 수면에서 무엇인가가 아래까지 뚫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 사적인 정치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화해할 수 없거나 격렬하게 증오하게 되는 것으로, 부엇보다도 늘 정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담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p.138)
정말 비슷한 장면은 계속 나온다. 이 시기 독일에서 어떤 법이 제정된다. 이 법은 정부의 행위를 숨기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행위를 숨기기 위한 게 아니라 '그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위험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p.158) 이 때부터 누군가가 정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하려고 하면 '너 그러다 어떻게 될 줄 알고?'하며 쉬쉬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안 그런가? 내가 정부에 비판적인 말을 공개적으로 하려 할 때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은 그러다 큰일난다며 말리던데? 심지어 선거에서 나치당이 패배(44%지지)했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나치는 '패배를 승리처럼 축하하고 테러를 강화하고 축제는 열배로 늘렸다'(p.159) 그러니까 지금은 안 그러냐고. 국민들이 반대하고, 각종 역사 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하면 뭐 해. 그냥 국정 교과서 밀어붙이지 않던가. 아무리 시민 단체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도, 사회의 각계에서 우려를 나타냈어도 4대강 공사는 시행되지 않았던가. 한때 힐링 문학이 유행했고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돌려 일상의 소소한 먹방, 쿡방에 몰두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전원문학이 유행했었다. 각종 풍경 화보집, 전원시, 가족 소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나왔다고 한다.
왜 유대인을 보이콧해야 하는지 그 이유라고 갖다붙인 것을 보면 나치가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헌법을 무시하고 개인적 자유를 제한하려고 공산주의자들이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전설을 퍼뜨릴 때만 해도 나치는 신빙성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지어냈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국회의사당에 불까지 놓았다. 이에 반해 유대인에 맞서 불매동맹을 맺어야 하는 이유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을 보면 그 말을 믿는 척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뻔뻔스러운 모욕이고 조소였다.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이 새로운 독일에 대해 온갖 꼬투리를 잡아 아무 근거 없는 끔찍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으니 이를 막고 처벌하기 위해 불매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p.173)
1933년 나도 화를 내고 분통을 터뜨리기는 했다. 이제 법원에 나가지 않겠다고, 이민을 가겠다고, 보란 듯이 유대교로 개종하겠다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해서 식구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저 말뿐이었다.(p.170) 이렇듯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기다리면서 나는 틀에 박힌 일상을 계속 채워나갔다. 분노와 공포는 그냥 억누르거나, 우습고 비생산적이지만 집 안에서만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 수백만 명처럼 관심을 끊은 채 살아가면서 그 일이 나에게 다가오게끔 했다.
그 일은 나에게 다가왔다.(p.171)
지금은 이 부분을 인용하는 것 이상 내가 책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생각이 지금보다 더 정리되면, 그리고 감정이 지금보다 더 가라앉으면 다시 한 번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에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책 속의 세상과 너무 닮아있다. 나는 분명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뽑아들었는데,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이 전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