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집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폭풍전야 월요일, 외도직전 화요일, 소통불가 수요일, 대폭발 목요일,

탈출시도 금요일, 앓느니 죽는 토요일, 그리고 눈물바다 일요일…
일일연속극보다 시끌벅적하고 막장드라마보다 꼬인 가족 8인의 88마일이 펼쳐진다!"
-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저 소개를 보고, 그리고 책 표지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책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이야기는 죽어라 잘 안 맞는 사람들이 한정된 공간에 모여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요절복통 시트콤 같은 것이었다. 난 일단 웃을 준비, 혹은 쯧쯧거릴 준비를 하고 책 표지를 열었고, 그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문구들 중에서 건질 단어는 '꼬인' 한 단어다. 

 화목하고 서로 모여 왁자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 이 가족의 모습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는 모습일 터. 그렇다고 나처럼 '평범한(?)' 가족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친척 집에 가는 걸 가능하면 피하고 싶고(그 친척을 싫어하는 것이 아님에도!), 명절처럼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리에 가면 어색해서 묘한 썩소같은 미소를 짓고 또 짓다 못해 연휴 마지막 날이 되면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무척이나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들과 일주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면? 세상에 악몽도 그런 악몽도 없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는 것 같다. 그렇다. 아마 당신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답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저 표지는 사기라니까!)

 가족이란 참 이상한 존재들이다. 도대체 가족을 엮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하기가 어렵다. 가족 간의 관계 유지에 있어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건 의외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듯, 부모도 자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당장 초등학교만 들어가더라도 부모님이 모르는 내 부분이 부쩍 늘어난다. 형제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어릴 때는 거의 하루종일 붙어 지내던 형제들도 자기만의 세계가 생기면서 서로 모르는 부분이 커진다. 그 간극은 대개 나이를 먹을 수록 커진다. 나만 해도 동생과 지금은 잘 지내는 편이지만, 그건 나와 동생의 관계가 정말로 더 좋아진 걸까? 다만, 이제는 서로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운 건 아니고?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가족이란 꽤나 질척한 관계다. 오히려 나를 더 잘 이해해주는 타인은 가족보다는 생판 모르는 남이나 회사 동료, 친구일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유지되는 관계라니, 거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렇게 평소에는 으르렁거리면서도, 또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질척하고 끈적한 관계. 

 이 소설 속에는 그런 질척함이 페이지마다 느껴진다. 서로에게 '넌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외치면서도 서로에게 어떻게든 이해받고 이해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순이 있다. 인물과 인물이 만날 때는 날카로운 긴장이 느껴진다. 작가는 집요하게 인물들을 따라다니는데, 그 서술법으로 인해 마치 저 집의 CCTV가 되어 가족의 맨 얼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읽은 동안 그 답답함에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 흘러가는지! 이 정도 되었으면 한 사흘은 지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페이지를 넘겨봐도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더랬지. 꼭 어색한 친척들과 함께 하는 여행 그 자체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건 꼭 쓰고 넘어가야겠다. 분명 읽기는 쉽지 않다. 몰입해서 마구 페이지를 넘기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장면 장면을 넘겨야 한다. 중간에는 유령 이야기까지 나와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딱히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뭔가 감동적인 일이 빠방, 터져서 가족들이 샘솟는 애정을 느끼며 '그래, 우리도 가족이었지!'라고 느끼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걸. 여기 나온 가족들은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 각자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될 것 같다. 다시 보자는 약속도 -그런 약속이 으레 그러하듯-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허공으로 흩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모르지. 조금은 변할지도. 최소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문득 이 여행지를 떠올리며 잠깐 같이 미소 지을지도 모르는 일이잖는가. 그럼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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