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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 책이든 영화든 공연이든, 어떤 컨텐츠를 처음 접하게 될 때 '기대'하게 되는 내용이나 흐름이 있다. 우선 제목을 보고 내용을 짐작하고 책 표지나 포스터 등을 보면서 분위기를 짐작한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이미 그 작품을 접했던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볼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거나,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예감'이 자신의 취향에 맞을 것 같으면 그 작품을 보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넘기게 되는 것이겠다. 내가 이 작품에 처음 흥미를 느낀 것도 제목과, 표지와, 리뷰 때문이었다. '끝까지 연기하라'는 제목과 표지에서는 계속된는 거짓말과 기만, 그리고 그것을 통한 진실의 추구 등을 예감했고, 책 뒷표지에는 이 책에 숨어있는 반전이며 이 책의 내용들을 칭찬하는 각종 언론사의 찬사를 통해 (그것을 다 믿지는 않더라도) 이 작품에 어떤 '반전'이 있을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또한 서점 홈페이지 등에서 작가의 필력을 칭찬하는 리뷰들을 통해서는 이 작품이 속도감있게 진행될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 기대는 (늘 그렇듯이)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이 책을 처음 신간평가단 도서로 추천할 당시, 내가 쓴 추천글은 다음과 같았다. --- 이 책은 줄거리 자체는 딱히 끌리지 않습니다. 표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만, 줄거리는 아주 많이 흥미롭지는 않아요. 그런데 리뷰들을 보니 이거,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일 것 같은 기운이 물씬물씬 풍깁니다. 이 책에 달린 리뷰들의 평이 상당히 좋은데다가, 그 평들이 또 상당히 괜찮아서, 믿고 기꺼이 추천해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이 내용은 이렇다. 이제 한물 간 배우 토비는, 마찬가지로 한 물 가서 가망성 없는 연극을 하러 브라이턴에 가게 된다. 하지만 브라이턴에서 만난, 곧 이혼할 예정인 제니는 스토킹 문제를 토비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고, 토비는 제니와 잘 해볼 욕심에 그 청을 수락하게 된다. 토비는 그저 제니와 잘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제니가 돌아올 가망은 점점 보이지 않고, 금방 해결된 것만 같던 사건은 점점 엉뚱하게 꼬여만 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추리소설'로 보자면 별점 5점 만점에 1.5~2점 정도밖에 줄 수 없다. 내용은 어느 정도 작위적이고, 특히 영매 이야기가 나오면서는 나도 모르게 흥미가 뚝 떨어지며 '이거 뭐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추리에 우연은 있을 수 있어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초자연적 현상이라니!! 게다가 주인공은 또 어떻고? 뭔가 머리를 써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막무가내로, 뒷일은 별로 생각지도 않고 돌진하는 듯하다. (솔직히 연극 배우인 주인공이 뒷일은 제대로 생각지도 않고 무대를 막 비웠을 때는 이 사람이 직업의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의문이더라) 사건 진행에서의 현실성은 논할 여지도 없다. 결말이 그 무엇보다 뒤통수를 치기 때문이다. 이건 뭐,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이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없다. 아니, 애초에 추리소설에서 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오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제 3자(?)가 등장해서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면, 도대체 지금까지 주인공의 삽질은 왜 있었냔 말이다. 추리소설로서는 5점만점에 별 1개도 아까울 지경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어거지 해피엔딩같은 결말까지!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멍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이게 작가의 잘못은 아닌지도 모른다. 이 책이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잊고만 보면, 이 책 자체는 뛰어나다고는 못해도 꽤 괜찮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추리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한 편의 스릴러 (혹은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이 정신없이 어떤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면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보려고 발버둥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그런 영화 말이다. 이 책의 미덕은 그 속도감에 있다. 얇지 않은 두께에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꽤 수월하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감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필력이 어느 정도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이 작가는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의도 자체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왜 출판사는 이 책을 마치 추리소설인양 포장한 것일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으니까? 최근의 코드는 '반전'이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책은 작가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그 안의 컨텐츠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판형, 자간, 글씨 크기 등등을 교정하는 것에서부터 표지, 마케팅까지...그 모든 것들이 모여 오롯한 한 권의 책을 만들고, 독자는 그 안의 내용(책의 software적인 부분)을 접하며 자연스레 그 책 자체(책의 hardware적인 부분)을 접하게 된다. 어떤 것을 파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여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내용보다도 마케팅이 아쉬운, 그런 작품이었다. 만약 내가 그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아무 정보 없이 이 책을 접했다면 '재미있는 책 한 권 읽었다'는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책을 덮을 수도 있었으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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