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도는 포르투나토의 팔에 이끌려 방을 돌면서 손님들을 소개받는 와중에도 별로 말이 없었다. 영어가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불편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모르핀에 취한 환자처럼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보니, 그 어색함이 사교상의 문제지 약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탤리는 에두아르도의 상태를 본 뒤, 누가 됐든 이날 밤 그에게 슬라이드를 제대로 보여주기는 글렀음을 알았다. 그는 그림 얘기는 다음날 에두아르도의 전담 큐레이터에게 전화해서 그때 본격화하기로 했다. 에두아르도의 큐레이터는 똑똑한 조정자에 불과하고, 최종 결정은 언제나 에두아르도가 맑고 예리한 정신 상태에서 내렸다. 다만 그럴 때가 드문 게 탈이었다.

 

 

 

                                         [위프레도 램,이니시에이션(Initiation)]

 
소개가 끝나자 사람들은 주인의 안내에 따라 집을 구경했다. 집은 그 자체로 미술 전시장이었다. 모든 것이 빈틈없고 정교했다. 전기 스위치 하나도 시대를 반영했고, 완벽하게 작동했다. 하늘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천사가 내려와 구석구석 요술지팡이를 휘두른 것 같았다. 침실에는 멋들어진 나카시마 책장이 있고, 그 안에 미술 관련 장서가 알파벳순으로 놀랍고 흐뭇하게 정렬돼 있었다. 나카시마는 바닷가 기념품 가게에서나팔 것 같은 원목가구를 순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가구 디자이너였는데, 긴 공백기 끝에 이즈음 재조명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일등공신은 역시 플로레스였다. 침대 위는 쿠바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위프레도 램의 그림이 장식하고 있었다. 램은 일종의 피카소 아류지만, 큐비즘에 초현실주의를 접목한 독특한 화풍으로 찬사를 받았다.
“쿠바니즘.” 플로레스가 농을 날렸다. 보이는 것만큼 약에 절어 있는 상태는 아닌 듯했다.
“이런 것들을 대체 어디서 찾아냅니까?” 스털링이 물었다. 딱 탤리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저게 어디서 났더라?” 에두아르도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탤리의 마음속에 있는 다른 질문은 오직 스털링만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었다. ‘블랑카와 섹스하는 느낌은 어떨까.’ 탤리는 블랑카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램 그림은 보지 않고, 그녀의 드러난 목을 바라봤다.

(중략)

게일이 하는 짓은 아트 딜러보다 농구 수비수에 가까웠다. 그녀는 목표물을 철저히 마크해 탤리의 공이 그쪽으로 흐르는 것을 원천봉쇄했다. 하지만 탤리는 식사 후에 게일이 목표물을 훤히 노출시킨 채 화장실에 토하러 갈 것을 알고 그때를 노렸다. 예상대로 게일이 정확히 디저트 후에 자리를 떴다. 탤리는 당장 플로레스의 옆자리를 차고 앉았다. “현대미술로 방향을 잘 트셨습니다. 침대 옆에 파일럿 마우스 그림 슬라이드를 하나 놔뒀습니다. 가짜가 나돈다니까 조심하세요. 그건 진짭니다. 그리고 아까 램 그림말입니다, 파실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파실 의향이 있다면…….”
만찬은 모두가 인사불성이 된 후에야 끝났다. 탤리는 호텔까지 걸어갔다. 밤공기가 훈훈했다. 그는 취한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른 손으로는 시내트라처럼 외투자락을 등 뒤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가 호텔방에 들어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림, 돈, 그리고 음모

레이시 이야기

스티브 마틴 지음. 이재경 옮김.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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