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이삿날은 아침부터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6년간 살던 고엔지의 아파트와도 작별이다. 하지만 감상적인 기분이 되기보다는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와 긴장 등이 섞여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사 준비는 마누라 중심으로 한 달 전부터 착착 진행해 왔다. 어쩐지 이 즈음 마누라의 행동이 날랬는데 걱정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격상 막상 닥치기까지 미뤄 두는 성격이다. 여름방학 숙제할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이번 이사의 최대 과제는 가능한 한 짐을 줄이는 것이다.
결국 6년 전 이사에서 버리지 못하고 갖고 살다가 한 번도 쓰지 않고 창고에 박아 두었던 물건들을 전부 버렸다. 하지만 이번 집의 수납량을 생각하면 좀 더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속옷 양말은 한 사람당 일곱 장, 일주일 분으로 한다든가 하는 분량을 결정해서 줄여야 했다. 어쩐지 여행가방을 싸는 느낌이었다. 식기류는 마누라 담당이니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었지만 생활에 필요한 최소량으로 하면 좋겠다.
가구는 마누라가 알아서 처분했다. 재활용업자로부터 견적을 받았는데 대부분 1만엔 이하였다. 살 때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값을 전혀 안 쳐주는 물건도 있었다. 그러자 마누라는 친구들에게 가져갈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다행히도 가구를 가져가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이사에서 가장 큰 짐인 가구가 없다 보니, 이삿짐 가격도 확 떨어졌다. 4만 5천 엔으로 해결되었다. 혼자 사는 사람보다 더 적게 나온 게 아닐까.
나는 먼저 고엔지의 아파트를 빠져나와 전철로 미타카의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로 향했다. 짐이 도착하는 대로 받아서 넣어야 하니까. 빗발이 수그러들지를 않는다. 빗속에서 물건을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맑은 날이라면 남쪽의 큰문으로 쉽게 할 수 있는데, 비 오는 날에는 젖은 데크 위에 물건을 둘 수 없으니 효율이 떨어져도 집안까지 바로 옮겨야 했다. 정원도 질척거릴 테니 큰일이다.
부피가 큰 냉장고가 문제였다. 어디에 둘 지는 정해 두었지만 카운터와 기둥 사이로 지나갈 수 없어 보였다. 냉장고를 들어 올려 카운터를 넘겨 겨우 정해 둔 장소로 옮겼다.
짐을 다 옮기고 이삿짐 차가 떠나려는 순간 또 문제가 생겼다. 바퀴가 앞으로도 뒤로도 구르지 않았다. 근처의 차에 로프를 연결하고 모두들 차를 밀어 빼냈다. 차를 미느라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정원 수도관 박스도 부서졌다.

첫날 밤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작은 집에는 골판지 상자가 가득 들어와 있었다. 정원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짐이 이 집에 다 들어갈까 걱정이다. 마음먹고 왕창 버렸는데도 이 집에는 너무 많은 걸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나. 이 집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 무엇일까. 수속이라면 시청에 전입신청서를 내는 것부터겠지. 아직은 이 집에서 살게 된다는 실감은 없었다.
사 가지고 온 주먹밥을 짐들 사이에서 먹으며 한숨 돌렸다.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 이 집에서 먹은 첫 식사였다.
“자, 힘내서 정리해요. 빨리 안하면 해 떨어지겠다.”
마누라는 정리의 달인이랄까,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참지 못하는 결벽증이 있다고 할까. 그런 사람이다. 마누라에 비하면 나는 그냥 대충대충이다. 할 때는 하는 남자지만, 보통은 잘 안 한다. 스미레와 아오이도 어지르기 대장이지 정리는 나 몰라라 스타일이다.
“엄마, 저 박스에서 놀아도 돼요?”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 역시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의 관리인은 마누라밖에 없다.
박스를 나누어 짐을 풀어 수납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힘들어. 당분간 쓰지 않을 물건과 스키, 골프백 같이 큰 것들은 다다미 밑에 넣었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다. 이불은 1층의 서랍에 넣었고 의류는 2층, 책과 잡지도 2층으로 옮겼다. 무거운 걸 들고 뜬금없이 계단을 오르려니 익숙지 않아서인지 조금 무서웠다. 식기류는 당연히 부엌으로 옮겼다.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녁이 되어 처제가 음식을 가져왔다. 짐 박스가 산더미 같은 방에서도 밥은 잘 넘어갔다.
그날 우리 가족은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이사가 너무 힘들었는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는 느낌이었다. 새 나무의 좋은 냄새가 났다. 내 억지에서 시작된 집 짓기가 10개월 만에 정말 현실이 되었다. 누워 있는데도 믿지 못하겠다.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어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