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그날의 회의는 고이즈미 씨의 사무실이 있는 구니타치에서 열렸다. 마누라와 스미레, 아오이도 함께였다. 고이즈미 씨는 집도 구니타치였다. 집과 사무실이 멀지 않은 생활을 실현시키고 있었다. 부럽다. 프리랜서여서 가능한 일이겠지, 월급쟁이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구니타치에서 고엔지로 이사해, 전차 탑승 시간이 30분에서 7분으로 줄어들었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놀랄 만큼 줄어들었다. 택시로 귀가하더라도 예전만큼 부담스럽지 않아 전철 막차 시간 고민 없이 마시게 되었다.
직장과 집이 가까운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나 원거리 통근자가 많은 건 국가와 기업과 철도회사가 유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돈을 벌고 있는 건 철도회사뿐이겠지만. 그러고 보니 철도회사는 주택지 개발에도 손을 대고 있다. 수상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아주 중요한 회의였다. 도와 주고 있는 사토 씨도 참가해 설계에 관해 기본적인 것을 말 그대로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했다.
그때까지 설계에 관한 주도권은 어느 쪽에 있었냐고 하면 나였다. 고이즈미 씨는 내 얘기를 들어 주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날을 경계로 고이즈미 씨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사토 씨도 든든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씨의 사무실에서 일을 한 덕에 구조나, 법규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다.
2층에 있는 금속접합부를 없애도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지, 천장을 늘려 지붕과의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여름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는지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더욱이 그날의 초점은 남면의 출입구 부분을 어떻게 할까였다. 볕도 잘 들어야 하지만 프라이버시도 중요하고 마누라에게는 어디에 빨래를 널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씨는 건물의 남면에 세탁물을 말리기 위한 도구를 걸어 두는 걸 끝까지 반대했다. 남측의 시원한 외관은 어떻게든 실현하고 싶어 했다. 원 주택에서 남면 넉 장의 거대한 창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는 나무살 없이 거대한 유리창을 실현시킬 것이다. 이것이 1952년과 98년의 기술 차이겠지.
“창틀은 어떻게든 나무로 하고 싶네요.”
이게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알루미늄 창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전날 이바타 씨도 나무로 틀을 짜는 것은 문제없다고 했다. 솜씨 좋은 전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설계 도중 고이즈미 씨가 “역시, 알루미늄 새시로 하는 게 쾌적하게 만들어지겠네요.”라고 하거나 이바타 씨가 견적을 보며 “알루미늄 새시로 하면 좀 더 싸질 텐데.” 하는 걸 보니 몇 번이나 나무틀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스미레 아오이 하우스의 창이 나무틀로 완성된 것은 기적이다.
게다가 초점이 된 것은 남면의 창에 장지를 넣을지 여부였다. 마쓰자와 주택은 실내에서 바라본 넉 장의 인상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이 장지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도 가격이나 기한을 생각했 때 롤스크린이나 블라인드로 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커튼이라면 정말 싫지만 블라인드 정도라면 괜찮다 생각했다. 장지를 고집했던 건 마누라였다. 이유도 밝히지 않고 주장했다.
“이 집은 장지가 아니면 안 된다고요.”
모두들, 왜 그런지 묘하게 납득당해 장지를 만드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도 결론적으로 대단히 잘한 선택이었다.

기둥은 노송나무, 들보는 삼나무를 썼다.

바닥재와 다다미, 월도지를 사용한 장지문은 직접 구해 시공했다.
장지문을 통해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