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바닥파'
나는 아홉 평의 집을 지을 수 있는 땅과 예산만 머릿속에 가득해, 그 땅 주변의 환경이나 우리들이 살아야 할 장소라는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실제 물건들을 돌아다니며 보니, 어떤 환경에서 살고 싶은가 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건에 맞는 물건들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만으로 긍정적인 기분이었다.
이왕이면 가능한 우리 조건에 맞는 장소를 고르자고 마음먹었다. 마누라도 점점 더 신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한 스물일곱 살까지 태어나서 쭉 살아온 곳은 도쿄 외관의 구니타치 역에서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부모님이 세운 단독주택이었다. 주변에는 밭이나 잡목림이 많다.
어쨌든 이사 왔을 때는 역까지의 사이에 거의 집이 없었다. 지금은 빈 공간이 거의 없는 곳이 되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공터가 많아 언제나 그곳에서 놀았다.
일하기 위해 도쿄로 나온 마누라는 고등학교 때 히로시마 외곽의 단독주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일본 삼경(三景) 중 하나인 미야지마 섬이 바다 건너 보이는 멋진 위치에 있는 집이다.
즉, 우리 둘 모두 도시 외곽에서 살아왔다. 그것도 주변에 자연환경이 넉넉한 주택가였다. 살고 싶은 집 주변 환경에 대한 의견은 살아온 배경 탓인지 거의 일치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싫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산속에 살자는 것은 아니다. 자연도 있고 살기 편한 마을이면 좋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정도다.
물론 고층빌딩은 안 된다. 2층 정도가 한계랄까. 이제까지 3층 이상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고층아파트는 전망은 좋겠지만, 가끔 놀러가는 정도라면 몰라도 매일 사는 건 무리다.
우리들은 바닥파다. 땅이 가까워야 한다.
작은 집에 어울리는 장소는 어딜까
마쓰자와 주택의 남면에는 한 칸. 즉 1.8미터 폭의 창문이 1층, 2층 두 장씩 도합 넉 장이 있다. 작은 집치고 상당히 큰 편이다. 집 중간에서 남측으로의 개방감이 대단하다. 물론, 아직 어떤 식의 집으로 할까 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토지를 찾을 때 어디까지나 마쓰자와 주택을 머리에 두고 있었다. 남측 면이 좁아 답답하지 않고 열려 있는 토지 말이다. 이 지역의 토지를 찾다 보니 예산이 어느 정도 모자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측에 공원 또는 녹지가 있는 땅을 찾고 싶었다. 생각한 대로 조건에 맞는 토지가 있을까. 다만 그 대신이라기는 뭐하지만, 역에서 떨어져 있더라도 괜찮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걷기에 멀고 버스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집의 면적을 근거로 토지를 찾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우선 토지가 있고 그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집을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라 생각했던 나에게는 그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바닥 면적 60제곱미터 단층집의 도면으로, 그 집에 어울리는 작은 토지를 찾는 이야기였다.
그 집을 설계해 토지를 찾은 것은 누구라도 알 만한 근대건축의 거인, 르코르뷔지에였다. 레만 호수 부근의 땅을 찾은 것은 1923년이었다. 이 집은 부모님이 노후에 살 집이었다. 우선 집이 있고 토지를 찾는다. 이런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그러고 보니 마쓰자와 주택을 옮겨 살고 있는 요도가와 씨는 자택을 해체하기로 한 마쓰자와 씨로부터 돌연 “이 재료를 가져가서 집을 지으라.”는 말을 듣고 당황해서 토지를 찾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처갓집의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토지가 없다. 자력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1개월이라는 기한이 있었다. 아니다. 이제 3주밖에 없다.
과연, 르코르뷔지에처럼, 작은 집에 어울리는 토지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