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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평점 :
[서평] <스페인 내전> -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한 사람의 절정이 담겨 있는 역작을 읽을 때의 기쁨이란 것이 있다. 8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육중한 두께의 이 역사책과 나는 무려 10일을 함께 했으나, 지겨움과 버거움없이 술술 페이지를 넘겨 나갔다. 앤터니 비버는 복잡하고 방대한 스페인 내전의 역사를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필체로 풀어 나간다. 그가 평생을 연구하고 수집했을 빽빽한 자료를 씨실과 날실로 잘 엮어 아주 훌륭한 책을 뽑았다. 번역자 김원중씨의 깔끔한 번역은 이 책이 주는 풍미를 전혀 해치지 않았으며, 친절하게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역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스페인 내전의 시작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좌파정부를 군부를 필두로한 우파세력이 불복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앤터니 비버는 그것은 당시 스페인 정치 세력 모두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이는 양비론이 아닌 명확한 사실이다. 선거 직전 좌파는 선거에서 진다면, 폭력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고, 우파는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 공언했다. 단지 선거에서 좌파가 근소하게 승리했을 뿐이었다.
정부 공화파는 쿠데타를 진압하지 못했고, 반란군 우파는 쿠데타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전선이 교착되었다. 쿠데타는 이제 내전이 되었고, 적색테러와 백색테러가 난무했다. 반군의 수장 프랑코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좌파는 소련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전은 이내 국제전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평범한 스페인 사람들은 이념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배가 고파서 참전한게 다수였다. 전쟁이란 원래 지배층의 말겨룸이 민중에겐 생사의 결단이 되는 그런 잔악한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프랑코의 국민군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데 반해, 소련은 소극적으로 지지하며, 스페인 내전을 공산당 세력확장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스페인 내전이 세계대전으로 확장될까 우려하며 효력없는 중립을 고집했다. 특히 영국은 파시스트들이 공산당을 유럽에서 몰아내주기를 바라며, 내심 국민군을 응원했다. 프랑코의 군대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지원한 압도적인 공군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넓혀갔다.
반면 스탈린은 막대한 금을 갈취하면서도 구식 무기를 지원하였고, 소련의 지령을 받은 스페인 공산당은 스페인의 권력을 탈취한 뒤, 자신에게 반하는 아나키스트를 비롯한 다른 좌파세력 숙청작업에 돌입한다. 공화파는 한 편으로는 국민군과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당이 일으킨 권력투쟁에 휘말린다. 권력을 쥔 공산당은 체면과 권위를 위해 어처구니 없는 전투를 반복하다, 막대한 희생만 치루고 결국 패배한다.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잘해서가 아니라 공산당이 못해서 졌다.
앤터니 비버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도 않으면서 한 챕터씩 교차로 양측의 객관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민군의 실수, 공화군의 실수 가릴 것없이 인물과 사건과 상황의 정황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다. 군데군데 관련된 유명인사들의 일화 및 관계에 대한 부연설명은 비버가 우리에게 주는 보너스이기도 하다. 혁명과 쿠데타, 그리고 강대국들의 손익계산서에 희생된 것은 스페인의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그는 책임소재를 섣부르게 예단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이 책이 지니고 있는 최대의 장점일 것이다.
앤터니 비버가 재현한 혼돈의 역사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지 또한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스페인의 지방명, 이를테면 안달루시아,아라곤,카스티야에 관한 간략한 지도가 없는 게 약간의 흠이지만, 스페인 내전에 관해 자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배우고 싶은 이에게 매우 권하는 책이다. 다소 두꺼운 분량은 간결한 문체와 구성이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 책에 들일 비용과 시간은 절대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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