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부채의식과 분열은 무엇인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4년제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야말로 '조기졸업'이자 모범생의 표본이 되는 시절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 소요기간이 평균 5.4년(남 6.2년/여 4.8년)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평균 초혼 연령은 진작에 30대를 훌쩍 넘었으며, 30대 미혼율 또한 2015년 기준 44.2%에 육박한다.


신체 건장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져야하는 입대 조차 무한경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공익근무요원은 대기 인원이 한참이나 밀려 기본으로 1~2년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의무경찰의 경쟁률은 2015년 기준 최고 26.4:1 에 달했으며, 제대 후 곧바로 복학이 가능한 겨울은 입대 성수기로 치열한 경쟁률을 보인다. 이로 인해 군 입대 N수생이 생기는가 하면, 입대 경쟁력을 위한 헌혈과 봉사활동 따위의 스펙 마련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등, 징병제 하에서의 입대조차 수월치 않게 되었다. 




장기간 양육 당하는 세대의 구조적 부채의식


사회의 일각에서는 20대의 불만을 두고서 쉽게 얻어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N포 세대'라는 명칭이 유행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문화적으로 혜택 받고 자랐으나 경제적으로 그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달관세대' 프레임을, 진보 일각에서는 20대가 공정성과 기회, 그리고 역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분석은 일반적으로 타당하다. 절대빈곤이 사라진 시대의 청년세대가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은 것과 교육수준에 있어 막대한 투자를 받은 것도 사실에 부합한다. 80%를 넘는 대학 진학률(2017년 기준 68.9%)과 대한민국의 막대한 사교육비는 물론, 입시제도 변경과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지대한 관심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성세대의 투자를 통해 자식세대가 본전을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기성 세대의 자식 교육에 대한 계층을 불문한 과투자가 오히려 자식세대의 무한경쟁과 심적 부담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년의 사회진출 시기가 늦춰지는 만큼 청년세대에 대한 양육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청년 세대가 스스로를 어른이기 보다는 양육의 객체로, 부모 세대에 대한 채무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20대 철부지론', '눈이 높아 취직 못해'라는 말에 청년들이 한동안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배경이 위와 같았던 것이다.


그동안 청년 세대는 정치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기성세대의 양보를 구해야했고 동시에 시장에서 기성세대에 도전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 기성세대의 지원과 헌신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년들이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를 감추고, 그대신 자책의 정서를 풀기 위해 위로와 힐링 담론에 열중했던 이유에 해당한다. 


일전에 한 예능에서 종이접기 아저씨로 유명한 김영만씨가 "여러분들도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됐으니까. 예전에는 엄마가 접어주던 종이접기,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발언에 수많은 청년이 눈물을 흘렸던 데에는 경쟁에 대한 포기의 정서, 거듭된 실패에 대한 무력감 등이 부모 세대의 투자와 고생에 대한 부채의식과 함께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20대의 분열의식 ① : 학벌과 역차별과 무임승차

고졸 채용 정책은 이명박 정권의 마이스터고 육성을 비롯해 당시 정권의 핵심 차원으로 추진되던 사업이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전임 정권들의 기조를 이어받아, 고졸 채용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워 실행 중에 있다. 


그러나 2017년 기준 대졸자 실업률(4.0%)이 고졸자 실업률(3.8%)을 앞지르는 역전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라고 일컬어지는 공무원 선발과 공기업 채용의 살인적인 경쟁률을 비춰보았을 때, 20대 대졸자들이 이를 역차별 내지는 특혜로 여기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마디로 취업시장에서 우대받기위해 대학 진학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취업시장에서 차별받는다는 정서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고졸 채용에 대한 대졸자의 부정적인 인식은 직장 현장에서도 목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현장에서는 고졸 공채 사원들을 두고, 우리(대졸자)가 먹여 살리고 있다(무임승차)는 의미로 '식구(食口)'라는 은어가 사용되기도 한다고 전한다. 대졸자들에게는 대학생활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진 파워포인트, 워드, 엑셀 보고서 정리와 같은 기초 업무조차 숙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졸 채용자를 업무현장에서 가르치면서 이들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일까지 떠맡아 해야 한다는 짐적인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차별적인 시각을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또래에게는 기회에서 '취업특혜 역차별'과 현장에서 '실력 미비로 인한 무임승차'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대감각에 뒤처지는 직장 상사에게는 가부장적인 '꼰대 문화'를 겪으면서(세대 문제에 대해서는 앞전 글 20대 남성의 불만은 무엇인가에서 자세히 다룬바 있다), 젠더 문제라는 새로운 분열 구조가 더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대의 분열 의식 ② : 래디컬 페미니즘과 20대 남성의 충돌

페미니즘은 그 사상의 방대함과 여러 분파가 있으나, 논의 필요를 위해 개략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에서는 'Girls Can Do Anything'(소녀는 뭐든 할 수 있다)의 구호로 압축되는 '여성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분파와 미투 운동과 합류된 '피해자 중심주의'로 크게 양분되고 있는 실정이다(이 두 분파는 전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비중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사회의 차별행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미러링'이 여성운동 진영의 주된 전략으로 채택되고, 일베의 미러링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워마드가 등장하였다. 여기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미투 운동과 관련된 사회적 파장이 합류되어 '피해자 중심주의'가 페미니즘 담론의 선두에 서게 되었고, 트위터 및 SNS 등지에서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따라서 20대 남성 사회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결합된 래디컬 분파를 여성 운동의 주류로 여기거나, '페미니즘 = 래디컬 페미니즘'의 도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SNS 상에서 벌어지는 남녀 사이의 '진정한 페미니즘' 혹은 '한국 페미니즘의 이중성'에 관한 논쟁(이해VS몰이해) 또한 이러한 도식적 인지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담론 차원에서 래디컬 분파가 우세하고 있다고 해서, 래디컬 분파가 주류라거나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 기득권을 침식시킬 만큼 유의미하게 확장되고 있는 것인지는 좀 더 따져볼 여지가 있다. 어떠한 사회 운동이든 담론이 반이면 나머지 절반은 그것을 뒷받침할 조직력에 해당된다. 그러나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조차 전국적으로 총여학생회 해산이 도미노처럼 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혜화역의 반 여성혐오 시위 참가자 수가 상당한 규모를 이룩해냈다고 하더라도, 익명의 다수와 조직화된 다수의 응집력 차이는 상당하기 때문이다. 조직 없는 담론이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볼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조직 쇠퇴와 온라인에서의 활황은 페미니즘 담론이 오프라인에서 힘을 잃고 오히려 온라인에 격리되어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자극적이고 선명한 래디컬 의견이 더 강하게 표출되고 노출될 수 있다. 선명한 목소리가 가장 쉽게 인지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조직 쇠퇴를 겪고 온라인에 격리된 페미니즘이 강렬한 목소리 위주로 유통되면서, 20대 여가시간과 생활공간의의 주 서식처가 온라인인 것을 감안하면, 왜 그토록 온라인에서 강하게 젠더갈등이 빗발치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제공된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처럼 인화성이 강한 사상이 트위터와 같은 짧고 공유가 쉬운 매체와 결합하면 단기간에도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가부장제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기성세대는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가부장제의 약한 고리에 있으며 병역 문제의 당사자이자 래디컬 페미니즘의 강경한 목소리에 가장 인접하게 있는 20대 남성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대 남성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곧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을 일부의 문제로 축소함으로써 억울함의 정서로 반응하고 있으며, 일베와 워마드라는 양극단을 규정하면서 그 사이를 젠더 갈등의 무풍지대로 설정하고 싶어 하는 회피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의 문제가 아닌 미뤄둔 시대의 숙제


20대는 기성세대의 꼰대 문화에는 조롱을 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양육에 관해서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20대는 학력의 골품제에서 역차별과 무임승차의 문제로 분열하고 있다. 젠더 문제에 있어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 항으로 맞서며 바닥을 향해 경쟁하는 '불행의 올림픽'으로 갈등하고 있다. 


해묵은 구조적 불평등과 개선 노력 사이의 과도기에서 세대-성별-학력-계급과 계층이 모두 파열음을 내고 있다. 20대의 심리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주요 환경인 세대와 학벌 사회, 젠더 문제는 어느 한 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이 미봉한 채 넘겨왔던 사회적 숙제가 경제위기에 맞물려 한꺼번에 다시 터져 나온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귀책을 짓기 보다는 사안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지혜와 욕설과 비난을 넘어설 더 높은 차원의 사회적 관용이 더 요구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필자의 기고문 [20대 남성의 불만은 무엇인가]에 대한 보론입니다.


본 글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를 다시 게재 한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0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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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9-01-04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의 달인 등극하심 축하드립니다. 멋진 글이라 생각했는데 오마이 뉴스 기사로 쓰셨군요. 앞으로 종종 들리겠습니다.

프리즘메이커 2019-01-04 16:56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알라딘을 자주 들르지 못하는데 종종 뵐때마다 인사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