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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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감독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솔직하게 아직 채 감동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잘 정리가 될까 모르겠다.
벌써 읽은 지 일주일이 지나가건만, 이 짧은 한 권의 책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준다.
일단, 야구와 관련된 문학, 혹은 책이라고 해 봐야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밖에 없으니
딱히 비교의 대상은 없다.
있다면 <내츄럴> 같은 몇 편의 야구 영화를 비롯한 스포츠 영화 정도?
(수많은 야구 만화, 스포츠 만화야 워낙 독특한 월드를 구성하고 있으니 비교를 할 수는 없고.)
그래도 역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듯하다.
다분히 정체성(일본과 개인, 집단)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난해하고 웃기는 소설은
솔직히 문학 좀 한다는 사람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해체니 하는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들 가운데 몇이나 이 내용을 이해했을까 궁금하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고 말이다. 일본의 기본적인 야구 열정이야 우리와는 너무 다르니까 그쪽 상황은 다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에서 출발한다.
야구가 없는 세상이라는 다소 헐거운 설정(중간중간 과연 그 설정이 맞나 싶기도 하니까)
카프카, 라이프니츠와 비교하고 기표와 기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더라도
이 책은 야구의 진실에서부터 시작한다.
야구의 진실이, 야구만이 아니라, 야구를 보고, 야구를 하고, 야구장에 살고, 야구공에 맞은 사람까지 포함하여... 야구와 관련된 모든 총체적인 관계를 다 포함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거기서부터 정체성이니 분석이니, 인간이니, 일본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만으로 포장해서는 당연히 말장난밖에 안 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무언가 글을 쓰면서 개콘과 웃찾사를 소재로 한다면, 그것을 모르는 이들은 그저 유머에 대한 분석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같이 웃지도 못하면서, 혹은 쭈욱 보면서 느끼는 둘 사이의 변천과 차이를 모르면서, 고전적인 희극의 정의만 읊조리는 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야구 감독>은 조금 다르다.
이 작품은 오로지 야구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감동적인 스포츠 드라마로도 읽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그걸로 이 작품의 평가를 끝내고 만족한다면
차라리 엄청나게 감동적인 <불의 전차>나
감동, 사랑, 캐릭터가 충만한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볼 만한 것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 감독>은 조금 다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감동하고 흥분하는 것은
물론 이 만년 꼴찌 팀이 승리할 때도 가능하지만
그것보다는 감독이 작전을 짜고, 선수가 그것을 따를지 말지
손에 땀을 쥐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이다.
혹은 이 감독의 아주 교과서적이지만 가장 힘든 작전 플레이가
과연 끝까지 먹힐 것인가, 그것이 과연 야구의 전부인가
이런 고민을 할 때
야구가 가진 본성과 프로 스포츠로서의 딜레마,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중첩되게 된다.
맞다.
이 작품은 끝까지 야구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야구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나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혹은
내가 꿈꿔 왔던 일, 혹은
내가 지탄하고 있는 사회, 혹은
내가 등돌리고자 하는 무언가
......
끝없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단위의 그룹에 대한 고민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면 야구를 싫어하거나 좋아하지만 그리 잘 모르는 사람은
이 작품을 읽지 말아야 할까?
아니, 적어도 아는 척은 하지 말자.
같은 방식이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아는 방식으로 내가 이렇게 작품을 받아들였음을
정확하게 밝히고, 그만큼의 감동에 만족하고, 혹은 아쉬워하고
이러는 것이 수용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에 이 작품이 참 소중하다.
어느 한 분야에 대한 꼼꼼한 접근으로 시작한 작품이
무한하게 넓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일단, 야구에 대해서만,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그렇더라도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너무 오버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지 말자고.
야구 하나만 이야기해도 이렇게 벅찬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잘 보면 말이지
어느 곳에나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과잉들의 흔적이 존재한다.
오래간만에 전문 영역에 몰두해 성취를 이뤄낸 한국 문학의 경우에도 말이다.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그것만 제대로 설명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것만 제대로 알 수 있다면, 많은 걸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이상하게 결론을 내 보자.
그래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보며 항상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최고로 긴 글인 듯하데...
언젠가는 또 정리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