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머리 속이 일본어로 가득해서인지
무의식 중에 무엇을 보다가도 일본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멈춰버리고 만다.
이 책도 그랬다.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보다가 책 제목을 봤는데 '츠나구'
암만 생각해도 일본어다. 살펴보니 「つなぐ」였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을 잇다. 연결하다] 란 의미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라....뭔가 삶과 죽음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듯 해서 관심이 갔다.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작가의 이름은 익숙치 않았는데
프로필을 보니 작년에 나오키상 후보에도 올랐고, [츠나구]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은 거 보니
이제 한창 활동을 시작해 촉망 받는 신인작가인 모양이다.

 

 

 


기본 설정은 <츠나구>로 불리는 사자가 등장인물들의 부탁들 받아 죽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
죽은 자를 만나기를 희망하는 각기 다른 네 사람의 사연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츠나구>인 주인공의 사연으로 이야기는 끝맺는다. 
'보름달이 뜨면 평생에 단 한 번, 떠나간 이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누구나가 한 번쯤은 꿈꿔봤을 희망이 소설 속에서 다양한 각도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왜 떠나보낸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을까?
미련, 후회에 대한 고백? 진상을 알고 싶어서? 단지 그리워서?
이 만남은 어쩌면 산 자들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단지 남아있는 자들의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짐을 덜어 놓기 위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죽은 자들이 남아 있는 그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남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아 있는 그들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남들보다 뭐 하나 뛰어난 것도 없고, 그럴다할 의욕도 없는데다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 게 두려운 심심한 인생 히라세 마나미.
그녀는 가족들에게 외면 당하고, 동료들에게 이용 당하며 하루하루 안으로 숨어만 산다.
하지만 그녀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이돌 미즈시로 사오리.
그녀의 유일한 우상이자 안식처였던 아이돌의 죽음 후, 그녀는 그 아이돌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산게 아닌란 걸 알게된다.
그래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자신의 존재가치를 모르고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던 그녀는
그 아이돌과의 만남으로 삶에 대한 자그마한 희망과 용기를 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유서 깊은 집안의 장남 하타다 야스히코. 늘 집안의 기둥이라는 무게와 책임감으로 꽉꽉 막힌 밥 맛없는 아저씨다.
그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츠나구를 통해 만났단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츠나구를 찾아온다.
늘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자신의 삶의 무게에 버겁지만 내색도 못하고 가문을 이어가야 했던 그는
어쩌면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어리광 피우고 싶고, 자그마한 칭찬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등교길 자전거 브레이크 고장으로 사고사한 단짝 친구 미소노를 만나고 싶어하는 아라시 미사.
둘은 항상 자매처럼 사이좋고 뭐든지 털어놓는 단짝 친구였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아라시. 하지만 모두에게 인정 받고 선택받은 건 미소노였다. 그녀가 미워졌으리라.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게 되고, 그녀는 죄책감과 (진실이 탄로날까) 두려움 사이에서 미소노를 만난다.
마지막까지 솔직하지 못했던 그녀...그녀는 평생 미소노의 삶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7년 동안 실종된 여자친구를 기다리며 일에 파묻혀 늘 오늘을 제자리걸음하며 사는 쓰치야 고이치.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할머니를 통해 츠나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영문도 모르게 떠나간 여자친구를 찾으려 마음 먹는다.
만나게 된다면 그녀는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마음 한 구석에선 그녀를 믿지 못 했던 그였다.
하지만 만날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깨닫는다. 줄 곧,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던 자신을...
만날 수 없어 그립지만 만날 수 없어 영원한 인연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렇게 그녈 놓아보내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그리고 이 이야기의 중심, 츠나구.
그는 아직 마음에 드는 코트를 얻기 위해 두달치 알바비를 털어 사고마는 철부지 고등학생, 아유미 일뿐이다.
그런 그가 츠나구의 역할을 이어오던 할머니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믿을 수 없던 일을 할머니를 통해 겪게되고 차차 츠나구의 역할을 배워나가며 위에 언급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을 한 아버지....그에게는 늘 털어낼 수 없는 어두운 꼬리표가 붙어있다.
정식 츠나구가 되기 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딱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할머니의 제안에 혼란스럽기만한  아유미.
그는 부모님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다만 믿기로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그들과 내가 인정하는 진실을....


책을 읽으며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을까 생각해봤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다. 그건 왜일까? 분명 내 미안함과 아쉬움때문일테다.
하지만 만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그건 내 마음의 무게일 뿐이란 걸 말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밝게만 표현한 건 아니지만 삶에 대해 희망적이란건 분명한 것 같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삶의 무게들, 먼저 떠난 자들에 대한 미련과 연민들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이라는 장치로 시원스럽게 풀어줬다.
진실이란 건 항상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을테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 전체평

누구나가 꿈꿔봤을 이야기가 여러 사연을 가지고 현실로 그려져 감동적이었지만
전제적인 몰입도 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처음 두 인물들의 이야기에서는 솔직히 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에피소드의 완결성이 약했다고 할까.
단지 짤막한 에피소드의 나열인가해서 좀 실망하던 찰라, 후반으로 갈 수록 이야기에 힘이 실렸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단짝의 본분부터가 짜임새도 있고 연결성도 있어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구나 느꼈다.
앞 두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연계성이 좀 약하고 에피소드의 긴장감이 별로 없었던게 조금 아쉬운 점이다.
아직 신인작가니까! 앞으로 더욱 좋은 활약을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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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보면 양장본의 경우는 여간 곤혹스러울 수가 없다.
책의 많은 의미를 함축시켜 놓은 것이 표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표지를 다 떼어내버려 칙칙한 단색 표지에 제목만 덩그러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잉아이를 우연히 뽑아들었을 때도 그랬다.
칙칙한 진한 회색면에 기하학적인 그림 하나와 
Dying Eye HIGASHINO KEIGO 라는 제목과 작가이름뿐
하지만 묘하게 끌리기도 했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과 기대로 서슴없이 대출해왔다.

주말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몸은 나른했지만 잠을 청하기는 이른 시간이었던 오후 11시.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펴고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아~ 오늘 또 밤새겠군'이라고 조용히 투덜거리고
마지막 장에 새겨진 섬뜻한 눈을 보고 소름 돋는 여운을 느낀 후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4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흡사 한편의 시나리오를 읽는 듯 하다.
어느날 돌연 일어나는 사건.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에 의해 사건은 재구성 되고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버리는 진실.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인물과 숨겨진 진실을 덮으려고, 지키려고 하는 인물들과의 얽힌 고리들.
그 속에서 두려움과 추함, 속물적인 욕망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인간적이기까지 한 그들의 내면.
이런 것들이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묘사와 어우려져 드러난다.
그렇게 작가는 사건 발생- 진실의 은폐- 밝혀지는 진실 이라는 뻔한 미스테리 스릴러의 구성을
보다 생생하고 긴장감있게 그려내는 것이다.


어느날 발생한 교통사고
그 사고가 일어난 지 일년 반 후, 사고의 가해자인 바텐더 신스케가 습격을 당하게 된다.
범인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여자의 남편으로 밝혀지지만 그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다.
다행이 목숨을 건진 신스케는 사고를 낸 그날의 기억만을 상실하게 된다.
뭔가 석연치 않게 느낀 그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간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
두렵고도 추악한 진실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습격한 남자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진으로 본 마네킹의 눈.
그 섬뜻함이 그를 사건의 진실로 이끌어 간 건지도 모르겠다.
 
바를 찾아 온 의문의 여성. 묘하게 신스케를 사로잡는 그녀 루미코.
갑자기 사라진 동거녀 나루미.
사고의 또 다른 가해자 기우치.
단지 운이 나빴던 거라며 애써 기억을 찾지 말라고 하는 에지마.
대체 그들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귀신에 씌이다? 다소 황당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 온 죽음에 살고자 하는 간절함,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이에 대한 증오
그 모든 감정들을 담은 눈과 마주한다면
순간 자신의 영혼을 놓아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스테리 호러라는 타이틀.
그리고 쇼킹하면서 잔혹하기까지 해서인지
일본 문예지 '소설보석'에 1998년 2월부터 1999년 1월까지 연재되었지만
8년이 지난 후에야 해금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한 여름 머리를 쭈삣서게 할 시원한 글을 원하신다면 강추!!
그 눈은 모든 것을 보고 있다!!!

 

+ 일본 표지 맛보기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의 강렬한 눈의 이미지를 강조한 한국 표지에 비해
일본 표지는 이야기 속에서 섬뜻함을 던져주는 마네킹에 시선을 두고
무표정하지만 음침한 마네킹 사진을 넣었다.

개인적으로 한국표지는 영화 포스터 같고
일본표지는 연극 포스터 같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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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학교- 알바- 집을 허둥지둥 넘나들며 정신없이 보내던 그 날들 속에서
 유독 쓸쓸했던 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기회가 좀처럼 없다는 것이었다.
여유도 없을뿐더러 영화표도 비싸고 한국에 비해 영화관 시설면에서나 인식면에서나
보급수준이 형편없는 일본에서는 영화를 즐긴다는 기쁨도 덜했기 때문이다.
그럴즈음 꽤 히트를 치고 롱런을 했던 작품이 영화 [고백]이었다.
원작 소설과 함께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이 작품은 영화관 문 앞까지 날 이끌었었지만
사정이 생겨 내 언제든 꼭 보리라 하며 다짐했었던 인연이 있다.
일본을 떠난 후에서야 번역본으로
그것도 기차 안에서, 벼르던 내 의지가 무안할 정도로 단숨에 읽어내려버린 이 소설.

한마디로 흡입력 짱!인 소설이었다.
등장인물들의 담담한 독백들을 들으며 나도모르게 이야기에 빠져
맨뒷장까지 읽고 나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어느 여교사가 자신의 딸을 잃은 진위를 학생들에게 털어놓으면서 시작된다.
담담하고 나직한 어조로 시작된 그녀의 말은 충격적이고도 잔인한 진실로 이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파문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은 바로 자신의 반 학생이라는 것!
하지만 법적 제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열세 살의 그들에게 그녀는 스스로 제제를 가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소설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피해자,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또는 그들 주위에서 그들과 얽힌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자신의 상처와 삶을 호소해 나간다.
그로써 독자는 한발 뒤로 물러나 인물들을 통해 이 사건을 재조합하고 결말에 이르게 된다.

하나의 사건이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는지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가혹하고도 허망할 수 있는지 느끼게 해 준 소설이다.
작중 등장인물 이력서까지 꼼꼼히 만들며 인물들의 내면묘사에 힘을 싣는 작가이기에
이런 구성이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긴장감과 함께
작가는 생명의 존귀함, 또 그것이 점점 존대받지 못하는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이 우주만큼 커 정작 중요한 타인의 생명을 하찮게 생각하고
어느덧 자신을 정당화 하는 우리의 현실을 말이다.
게다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방패막이 되어버린 현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때로는 잔인한 복수극이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현실.
어쩌면 이 모든 고백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상처에 대한 호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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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관한 짧은 고찰

 

 

[고백]을 읽으며 잠깐 짧은 생각에 빠진 부분이 있다.
리뷰를 쓰면서 다시 떠올라 여담삼아 글을 써본다.

 
"하지만 증오를 증오로 갚아서는 안 돼. 그런다고 절대 마음이 풀리지는 않아.
그보다 그 두 사람은 반드시 갱생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믿어. 
그건 당신이 회복하는 길로도 이어질 테니까...."
                                                                  - 제 6장 전도자의 한부분

여교사의 남편이 그녀의 복수를 막은 것을 죽기 직전에 털어놓으면서 하는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깊은 아픔을 견디고 드디어 신앙으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로 한 여주인공이 범인을 찾아갔는데
그 범인은 이미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면서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여주인공은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신이 용서했다는 사실에 절규한다. 

과연 진정한 용서란 것이 있을까? 
증오를 증오로 갚아 분이 풀리든 신앙으로 극복하든 가해자의 갱생과 피해자의 용서는 별개다.
가해를 하는 시점과 가해를 당하는 시점에서부터 그들의 상처는 이미 다른 색일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것. 
그건 어찌보면 죄를 짓는 것보다 더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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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8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애인이 헤어지자 한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8년을 지내온 그녀에게 겨우 몇번 만난 여자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녀는 그대로인데 그는 떠나려 한다.

모든 것이 그와 있을 때와 마찮가지다.
사흘에 한번씩은 꼭 전화가 오고, 다정한 그의 목소리도 그대로인데
이제 그를 웃게 만들고 울게 만드는 건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다.
그리고 남겨진 두명분의 버거운 집세....

어느날,
그의 여자와의 난데없는 동거가 시작된다.
 서서히 스며드는 그의 그녀.
자유로운 듯, 제멋대로인 듯 알 수 없는 사람.
누구나 여자를 사랑하고 누구나 여자를 소유하려 애를 쓰지만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스스로도 자신을 얽매이려 하지않는 여자

다른 이의 사랑을 파괴하는 나쁜 여자일까...
모든 이의 집착에 스스로를 온전히 소유하지도 못하는 가련한 여자일까...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사랑과 혹은 이별처럼
어느날 갑자지 다가온 여자의 죽음으로
여자는 여자를 사랑한 모든이를 자유롭게 풀어준다.
사랑을 얻기 위해 허덕이던 수많은 그들도 그제야 집착의 끈을 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녀도...
긴....이별의 끈을 놓게된다.
이제야 온전히 그를 잊을 수 있게 된다.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건....
바로 이런 사랑이야기가 좋아서이다.
강렬한 듯하지만 한없이 차갑고 무덤덤한 사랑이야기.

몇년전만 해도 이런 관계....말도 안돼지...
몹쓸 관계야...라고 버럭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이해가 된다는 건
사랑을 어느정도 알게 된건지
나도 닳고 약은 어른이 되어버린건지....

실연에 울고, 집착하고, 질투하고....
사랑의 흔적에는 이런것들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
그녀의 사랑 이야기.
그녀의 이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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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두 남녀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2년여에 걸쳐 실제로 연애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간 릴레이 러브 스토리 Blu & Rosso

 

<냉정과 열정사이> 한 이야기를 두 남녀 작가가 각각 자기의 방식으로 썼다는데서 큰 화재를 불러 일으켰고 나 또한 그 새로운 도전에 신선함을 느끼고 꼭 한번 봐야지 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아오이'와 '쥰세이'라는 두 남녀의 사랑과 그들의 삶, 그리고 그 속에 녹아져 내리고 있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기묘한 줄다리기다. 그들은 풀지 못한 오해 속에서 헤어졌고 그로부터 8년....서로의 기억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침금으로 남아 그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약속... 10년후 그녀의 생일날,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자던 그 약속은 꼭 풀어야 할 숙제, 치뤄야 할 시험이었다.

아오이...그녀는 아르바이트로 보석상에서 일하며 미국인 - 다카시의 말에 따르면 '나이스가이' 인 마빈과 동거를 하며, 목욕을 즐기고, 독서를 즐기고, 친구 다니엘라를 만나고 쇼핑도 하고 자기 자신의 만족을 느끼며 조용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용한 생활 속에서 문득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쥰세이와의 기억들, 추억들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녀는 자신을 숨기려하고 목욕탕으로 도망만 칠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냉정한 그녀의 생활속에서 쥰세이에 대한 갈망, 열정은 휴화산처럼 숨어있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쥰세이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결국 그녀는 모든걸 포기하고 그녀의 생일날 피렌체로 향한다. "결국 오게됐어"
그녀는 어떠한 이끌림에 의해 결국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는 것이다. 확인하고픈 무언가.......

쥰세이...그는 사랑했던 연인을 잃고 그 속에서 방황하다 명작들을 복원하는 복원사의 길을 걷고자 한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다.그는 그렇게 과거속에 머물기를 원한다. 그에게 미래란 두렵다. 과거속에 자긴 도시 피렌체에서 복원공부를 하며 늘 아오이를 추억하는 것이다. 메미라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애인이 있지만 그녀와 섹스를 하면서도 아오이를 떠올린다. 메미는 불완전한 그와 많이 닮아있다. 그리고 그런 동질성에서일까? 그녀는 어린아이와 같은 집착으로 그를 사랑한다.
그는 10년후 그날을 늘 기다린다. 아오이는 기억하지 못할거라 믿으면서도 그는 다짐한다.

그리고 그날...그들은 그곳에서 만난다. 어색한 재회. 그러나 그들은 행복했다. 과거를 뛰어넘어 지금 현재 늘 그리던 자신의 삶의 분신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열정속에서도 시간과 세월이란 벽은 어느새 달라져버린 주위의 환경들속에 놓여 어긋나고 만다.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서로를 숨기고 헤어지려 한다.
아오이는 혼자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있어야 할 자리, 늘 편안하고 조용한 그 생활이 자신의 삶이란 걸 깨닫고 열차를 타고 돌아온다.
쥰세이는 그녀를 보내고 생각한다. 작은 열정이 쏫아난다. 그녀를 잡지 못한다면 자신은 또 늘 과거 속에 묻친채 살아 갈 것이다. 두번이나 사랑하는 여자를 놓쳐선 안된다.
그는 급행열차 표를 끊고 아오이를 잡기위해 밀라노로 뒤따른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뒤는 아무도 모른다.


사랑의 순간에는 항상 설렘과 두려움, 우울이 따른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우리는 몸부림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무언가를 깨닫지 못하고 우리는 현실 속에 나 자신을 다 잡으며 살고 있다. 순간순간 뻗어나오는 작은 열정들을 때론 부끄러워하고 당황해하며 혼란스러워한다. 편안하고 조용한 생활을 원한다. 그와 반해, 때로는 열병같은 열정속에 허우적거리다가 정작 중요한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오늘도 난 냉정과 열정 속에서 헤메인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간결한 문체. 사막의 햇살처럼 건조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이랄까.......그래서 일본 소설은 늘 읽을때마다 지루함을 잘 느끼지 않는다. 깔끔하다. 그리고 Rosso에서는 에쿠니 가오리의 성급하지 않게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게 참 좋았다.아오이를 통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 혼란스러움들이 뭔가 거리를 둔 느낌으로 좋았다. 그에 비하면 츠지 히토나리는 성급하게 바로바로 표현한 점이 별로였지만 강한 문체는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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