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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머리 속이 일본어로 가득해서인지
무의식 중에 무엇을 보다가도 일본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멈춰버리고 만다.
이 책도 그랬다. 인터넷으로 이것 저것 보다가 책 제목을 봤는데 '츠나구'
암만 생각해도 일본어다. 살펴보니 「つなぐ」였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을 잇다. 연결하다] 란 의미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라....뭔가 삶과 죽음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듯 해서 관심이 갔다.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작가의 이름은 익숙치 않았는데
프로필을 보니 작년에 나오키상 후보에도 올랐고, [츠나구]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은 거 보니
이제 한창 활동을 시작해 촉망 받는 신인작가인 모양이다.
기본 설정은 <츠나구>로 불리는 사자가 등장인물들의 부탁들 받아 죽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
죽은 자를 만나기를 희망하는 각기 다른 네 사람의 사연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츠나구>인 주인공의 사연으로 이야기는 끝맺는다.
'보름달이 뜨면 평생에 단 한 번, 떠나간 이를 만나러 갈 수 있다'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누구나가 한 번쯤은 꿈꿔봤을 희망이 소설 속에서 다양한 각도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왜 떠나보낸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을까?
미련, 후회에 대한 고백? 진상을 알고 싶어서? 단지 그리워서?
이 만남은 어쩌면 산 자들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단지 남아있는 자들의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짐을 덜어 놓기 위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죽은 자들이 남아 있는 그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남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아 있는 그들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남들보다 뭐 하나 뛰어난 것도 없고, 그럴다할 의욕도 없는데다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 게 두려운 심심한 인생 히라세 마나미.
그녀는 가족들에게 외면 당하고, 동료들에게 이용 당하며 하루하루 안으로 숨어만 산다.
하지만 그녀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이돌 미즈시로 사오리.
그녀의 유일한 우상이자 안식처였던 아이돌의 죽음 후, 그녀는 그 아이돌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산게 아닌란 걸 알게된다.
그래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자신의 존재가치를 모르고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던 그녀는
그 아이돌과의 만남으로 삶에 대한 자그마한 희망과 용기를 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유서 깊은 집안의 장남 하타다 야스히코. 늘 집안의 기둥이라는 무게와 책임감으로 꽉꽉 막힌 밥 맛없는 아저씨다.
그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츠나구를 통해 만났단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츠나구를 찾아온다.
늘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자신의 삶의 무게에 버겁지만 내색도 못하고 가문을 이어가야 했던 그는
어쩌면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어리광 피우고 싶고, 자그마한 칭찬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등교길 자전거 브레이크 고장으로 사고사한 단짝 친구 미소노를 만나고 싶어하는 아라시 미사.
둘은 항상 자매처럼 사이좋고 뭐든지 털어놓는 단짝 친구였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아라시. 하지만 모두에게 인정 받고 선택받은 건 미소노였다. 그녀가 미워졌으리라.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게 되고, 그녀는 죄책감과 (진실이 탄로날까) 두려움 사이에서 미소노를 만난다.
마지막까지 솔직하지 못했던 그녀...그녀는 평생 미소노의 삶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살아야할지도 모른다.
7년 동안 실종된 여자친구를 기다리며 일에 파묻혀 늘 오늘을 제자리걸음하며 사는 쓰치야 고이치.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할머니를 통해 츠나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영문도 모르게 떠나간 여자친구를 찾으려 마음 먹는다.
만나게 된다면 그녀는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마음 한 구석에선 그녀를 믿지 못 했던 그였다.
하지만 만날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깨닫는다. 줄 곧,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던 자신을...
만날 수 없어 그립지만 만날 수 없어 영원한 인연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그렇게 그녈 놓아보내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그리고 이 이야기의 중심, 츠나구.
그는 아직 마음에 드는 코트를 얻기 위해 두달치 알바비를 털어 사고마는 철부지 고등학생, 아유미 일뿐이다.
그런 그가 츠나구의 역할을 이어오던 할머니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믿을 수 없던 일을 할머니를 통해 겪게되고 차차 츠나구의 역할을 배워나가며 위에 언급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을 한 아버지....그에게는 늘 털어낼 수 없는 어두운 꼬리표가 붙어있다.
정식 츠나구가 되기 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딱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할머니의 제안에 혼란스럽기만한 아유미.
그는 부모님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다만 믿기로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그들과 내가 인정하는 진실을....
책을 읽으며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싶을까 생각해봤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다. 그건 왜일까? 분명 내 미안함과 아쉬움때문일테다.
하지만 만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그건 내 마음의 무게일 뿐이란 걸 말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밝게만 표현한 건 아니지만 삶에 대해 희망적이란건 분명한 것 같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삶의 무게들, 먼저 떠난 자들에 대한 미련과 연민들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이라는 장치로 시원스럽게 풀어줬다.
진실이란 건 항상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을테고, 그것을 원동력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 전체평
누구나가 꿈꿔봤을 이야기가 여러 사연을 가지고 현실로 그려져 감동적이었지만
전제적인 몰입도 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처음 두 인물들의 이야기에서는 솔직히 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에피소드의 완결성이 약했다고 할까.
단지 짤막한 에피소드의 나열인가해서 좀 실망하던 찰라, 후반으로 갈 수록 이야기에 힘이 실렸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단짝의 본분부터가 짜임새도 있고 연결성도 있어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구나 느꼈다.
앞 두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연계성이 좀 약하고 에피소드의 긴장감이 별로 없었던게 조금 아쉬운 점이다.
아직 신인작가니까! 앞으로 더욱 좋은 활약을 기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