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학교- 알바- 집을 허둥지둥 넘나들며 정신없이 보내던 그 날들 속에서
 유독 쓸쓸했던 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기회가 좀처럼 없다는 것이었다.
여유도 없을뿐더러 영화표도 비싸고 한국에 비해 영화관 시설면에서나 인식면에서나
보급수준이 형편없는 일본에서는 영화를 즐긴다는 기쁨도 덜했기 때문이다.
그럴즈음 꽤 히트를 치고 롱런을 했던 작품이 영화 [고백]이었다.
원작 소설과 함께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이 작품은 영화관 문 앞까지 날 이끌었었지만
사정이 생겨 내 언제든 꼭 보리라 하며 다짐했었던 인연이 있다.
일본을 떠난 후에서야 번역본으로
그것도 기차 안에서, 벼르던 내 의지가 무안할 정도로 단숨에 읽어내려버린 이 소설.

한마디로 흡입력 짱!인 소설이었다.
등장인물들의 담담한 독백들을 들으며 나도모르게 이야기에 빠져
맨뒷장까지 읽고 나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어느 여교사가 자신의 딸을 잃은 진위를 학생들에게 털어놓으면서 시작된다.
담담하고 나직한 어조로 시작된 그녀의 말은 충격적이고도 잔인한 진실로 이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파문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은 바로 자신의 반 학생이라는 것!
하지만 법적 제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열세 살의 그들에게 그녀는 스스로 제제를 가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소설은 이 사건을 중심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피해자,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또는 그들 주위에서 그들과 얽힌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자신의 상처와 삶을 호소해 나간다.
그로써 독자는 한발 뒤로 물러나 인물들을 통해 이 사건을 재조합하고 결말에 이르게 된다.

하나의 사건이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가는지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가혹하고도 허망할 수 있는지 느끼게 해 준 소설이다.
작중 등장인물 이력서까지 꼼꼼히 만들며 인물들의 내면묘사에 힘을 싣는 작가이기에
이런 구성이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긴장감과 함께
작가는 생명의 존귀함, 또 그것이 점점 존대받지 못하는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이 우주만큼 커 정작 중요한 타인의 생명을 하찮게 생각하고
어느덧 자신을 정당화 하는 우리의 현실을 말이다.
게다가 어리다는 이유로 제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방패막이 되어버린 현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때로는 잔인한 복수극이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현실.
어쩌면 이 모든 고백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상처에 대한 호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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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관한 짧은 고찰

 

 

[고백]을 읽으며 잠깐 짧은 생각에 빠진 부분이 있다.
리뷰를 쓰면서 다시 떠올라 여담삼아 글을 써본다.

 
"하지만 증오를 증오로 갚아서는 안 돼. 그런다고 절대 마음이 풀리지는 않아.
그보다 그 두 사람은 반드시 갱생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믿어. 
그건 당신이 회복하는 길로도 이어질 테니까...."
                                                                  - 제 6장 전도자의 한부분

여교사의 남편이 그녀의 복수를 막은 것을 죽기 직전에 털어놓으면서 하는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깊은 아픔을 견디고 드디어 신앙으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로 한 여주인공이 범인을 찾아갔는데
그 범인은 이미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면서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여주인공은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신이 용서했다는 사실에 절규한다. 

과연 진정한 용서란 것이 있을까? 
증오를 증오로 갚아 분이 풀리든 신앙으로 극복하든 가해자의 갱생과 피해자의 용서는 별개다.
가해를 하는 시점과 가해를 당하는 시점에서부터 그들의 상처는 이미 다른 색일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것. 
그건 어찌보면 죄를 짓는 것보다 더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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