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 2011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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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책 만들기 시작한 지 벌써 만 7년이네. 그간 뭐했지? 고맙다고 쓰려고 몇 해나 이 일을 했는지 세어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이 일을 했는데, 편집은 참 어렵다. 무엇을 책으로 만들고, 책을 어떤 콘셉트로 만들지 결정하고, 만든 책을 어떻게 독자에게 알려야 할지 결정하는 게 제일 어렵지만, 그만큼 어려운 건 우리말 맞춤법이다. 뭔 놈의 예외가 이렇게 많은지... 왜 맞춤법을 만들었는지 의아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까. 내 생각에는 예외를 대폭 줄이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아무튼 한동안 기본 소양 공부를 게을리 했더니 원고를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 많이 헷갈린다. 그래서 이 책 집어들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애를 써 주신 열린책들 편집부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근데... 머리말에 오타가 몇 개 보인다. 완벽하면 안 되니까 일부러 틀린 것 같다. 책에서는 신의 냄새가 아닌 사람의 냄새가 나는 게 더 좋다. '갤러시'와 '캘럭시'는, 어쩌면 삼성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의 표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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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 말과 글을 단련하고 숫자, 언어, 미디어의 거짓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
노르망 바야르종 지음, 강주헌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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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참 많다. 광고를 보고 간장게장을 샀는데 속이 텅 비어 있었다든가, 아파트를 살 마지막 기회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계약을 했다가 집값이 폭락한다든가...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는 건, 간장게장을 판 그들이나 아파트 광고 기사를 쓴 그들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억장 무너지는 일이다.
왜 우리는 번번이 그들에게 당하고 살까? 그건 아마 그들이 펼쳐놓은 생각의 덫에 우리가 빠져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생각하라는 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힘 있도 돈 많은 그들이 세상을 주무르고 있으니 생존을 위해 그들의 논리를 전혀 외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농락당하며 살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우리의 뜻을 관철하는 것! 그러려면 일단 그들의 머릿속을 환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욕망이 간절한 사람에게 긴요한 아이템이다. 촘스키가 누군가. 거대한 미국에 맞서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세상에 말하는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인물 아닌가. 국가와 미디어와 다국적 기업이 숨기는 거대한 거짓을 밝혀낸다는 것 자체가 그의 지적인 힘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어산지 같은 인물이 등장한 지금이야 촘스키의 작업들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하겠지만, 촘스키는 오랜 시간 동안 거대한 제국에 맞서 싸우며 우리가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을 응원한 지적인 스승이다.
바로 그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우리를 속이는 다양한 말의 매커니즘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보이는 숫자에 숨어 있는 함정들은 무엇인지, 과학이 어떻게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지, 미디어가 우리를 어떻게 조종하는지, 또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을 어떻게 속이는지를 흥미로운 예들을 들어가며 설명한다. 머리를 탁 치는 기발한 것도 있고, 화가 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예도 있다. 그중 하나만 들어볼까.
1991년에 페르시아만에서 일어난 걸프전쟁을 아는지 모르겠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서 미국이 최첨단 무기로 전쟁'쇼'를 펼친 일이다. '쇼'라고 하니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분명 쇼였다. 미국이 그렇게 했으니까. 미국이 참전하기 몇 달 전, ‘나이라’라는 한 소녀가 워싱턴 하원 인권위원회에 출두했다. 자신이 일하던 쿠웨이트의 한 병원에 이라크군이 급습해서 인큐베이터를 깨뜨리는 바람에 312명의 아기가 차디찬 병원 바닥에서 숨을 거뒀다고 증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되었고, 이후 미국의 소중한 친구였던 사담 후세인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불렸다.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던 여론은 순식간에 찬성 쪽으로 반전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홍보회사 힐앤놀튼이 미국의 참전을 원하던 쿠웨이트인들과 1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고 진행한 사기극이었다.
 
얼마 전 여당의 대표가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말해 전국민에게 웃음을 준 사건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본 거다. 그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저자는 '모든 걸 의심하라, 심지어 너 자신까지도 (그리고 저자 자신의 말도) 의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너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가 환생한 것 같다.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싸울 때 위태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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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곡물이 내 몸을 살린다
하야시 히로코 지음, 김정환 옮김 / 살림Life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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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중학 3학년 때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동네 어귀의 구멍가게에서 별사탕이 든 뽀빠이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노래를 힘껏 외치면서 집으로 가던 시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깨끗한 농촌이었는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곤 했다. 별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9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배도 고프고 해서 라면을 자주 끓여 마셨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위염이 내 몸에 자리 잡았다. 내쫓기까지 10년도 넘게 걸렸다.

솔직히 위염을 고친 일등공신은 신경 덜 쓰고 논 20대의 시간이었다. 위염이란 게 십중팔구는 신경성이란 게 주위의 정설 아닌가. 이등공신 정도를 꼽으라면 식생활 조절을 꼽을 수 있다. 비교적 철저했다. 맵고 짠 거 조금 멀리했다. 적당히 먹는 거는 20대 후반부터 가끔 성공해서 지금은 보통 사람 수준으로 먹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재료 맛을 죽이지 않은 음식들이 좋아졌다. 흰 쌀밥이 아니라 여러가지 잡곡이 들어간 밥을 더 좋아하게 된 것도 20대 후반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언저리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리바리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세상이 하도 수상하여 요새는 먹을 거리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어디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착한 밥상 없을까 하던 차에 이 책 봤다. 다 읽지는 않았다. 이런 책 한 번에 다 읽는 사람 있을까 싶다. 책꽂이 어디, 책상 어디, 부엌 한 귀퉁이에 두었다가 착한 음식 그리울 때 한 번씩 펼쳐 보면서 깨끗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먹음직한 아이템을 발견하는 용도가 이런 책이 세상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 아닐까? 그래서 펼쳐 보고 몇 가지 시도해봤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내 몸 살린다는 잡곡 몇 가지 밥에 넣어서 먹은 게 다다. 뱃속이 좀 편해진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이 책 착한 건가?

일본 책을 우리말로 옮긴 거라 그런지 일본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별 넷 줄 것을 셋으로 줄였다. 그런다고 착한 밥상 차리는 데 도움 된다는 사실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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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 돈버는 모든 원리가 숨어 있는곳
이상건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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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읽은 경제 관련 도서라곤 딱 두 권뿐이었다. 대학생 시절 보았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과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 얻은 거라곤 유연해진 턱뿐이었다. 하품을 하도 많이 해서 그렇다. 하품을 자주 했다고 해서 이 두 책이 형편없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때 내가 이 책들을 읽을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은 순전히 일 때문에 손에 든 책이다. 우연히 이 책을 쓴 이와 만날 자리가 생겼는데,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것보다 책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다. 행운이란 우연히 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행운은 노력한 자에게만 온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생의 모든 일들을 하나 빠짐 없이 인과율로 엮어낼 수 있을까.

어느 일요일 밤 TV를 켰을 때 화면에 비친 이가 이 책의 저자였다. 좋은 느낌을 받았는데 연이 닿아 만날 수 있었고, 만남을 준비하느라 책을 읽었다. 그렇다면 왜 행운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받은 영향, 이 모든 것이 오늘을 사는 내게 새로운 기준 하나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원리를 이해하라'는 선언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저자는 사회운동을 하는 학생이었고, 사회에 나와서 돈 때문에 고생했다. 나는 대학생 시절 사회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운동을 하는 친한 친구와 선후배의 영향, 나의 청개구리 기질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려 했다. 보려 했지만 비판적으로 볼 수 없었다. 무엇을 알아야 비판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냥 비난한 거다. 그만큼 내 사유의 기반은 빈약했던 거다.

이 책에는 자본주의에서 돈이 어떤 원리로 모이는가가 정리되어 있다. 경쟁자가 없는 분야를 찾고,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 저자가 말하는 돈의 원리는 크게 이 두가지 정도다. 이 두 원리를 작동시키는 작은 원리들도 있다. 경기 하강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경기 상승이 있다, 부의 미래는 인구 지도가 결정한다, 대중과 반대로 움직여라, 가격보다는 가치를 눈여겨보라, 등등. 하지만 저자가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런 원리들이 아니라 이 원리를 실천으로 옮기는 자의 태도다. 돈의 테크닉을 익히기보다는 지식을 머리에 담도록 노력하고, 세상(돈)에 겸손해지고, 자기를 스스로 책임지며, 기다릴 줄 알아라.

이 책을 읽고, 전에는 전혀 읽지 않았던 경제 뉴스에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경제 용어들도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 꿈은 도시를 떠나 자본주의 체제에 발을 덜 담그고 사는 것이다. 얌치 없는 생각이겠지만 그렇더라도 자본주의의 단물을 조금은 빨아먹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 공부, 더 나아가 경제 공부를 어느 정도는 해둬야겠다. 혹시 아는가, 그러다 보면 뭔가 확실한 선을 긋는 날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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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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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쯤 집에 누워 있다가 아르바이트 생활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3개월 만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한 7개월쯤 더 일했다. 직장을 옮겨 8개월 동안 일하고, 또 한 달 쉬고 직장을 옮겼다. 그 직장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직장을 잡고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처음 직장을 잡을 때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정답은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직장은 내게 낭만적 공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그런가?'싶었다. 낭만과 현실이 일치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 세상에 그런 행운을 손에 쥔 사람은 흔치 않아 보였다. 한 택시기사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아서 일 하는 사람이 흔한가. 그냥 하는 거야. 하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좋아지기도 하고. 그러니 그냥 해."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욕심이 많으니까.

그런데 난 나빴다. 내가 지고 있어야 했던 수많은 책임들을, 나를 아끼는 분들에게 떠넘겼다. 그러고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눈을 감는다고 있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의 어깨 위에 있는 짐은 원래 내 몫이었다는 것. 나는 이것을 머리로만 알았다. 머리로만 아는 건 내 문제가 아니다. 머리로만 아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쉽게 생각하고 쉽게 내뱉는다. 세상이 쉽다.

고민을 해야 한다. 도덕 교과서 속 정답을 외우고 있다가 줄줄 내뱉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런 말과 행동은 울림이 없다. 속이 텅 비어 있다. 그 사색의 깊이가 빤히 보인다. 그런 것으로는 자신도, 남도, 세상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위안일 뿐이다. 적어도 자기는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산다는 위안. 냉정히 따져보면 그 착한 삶은 나쁜 삶이다. 꼭 그렇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럴 가능성은 많다. 무인도에 있지 않은 한, 사람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무책임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편한 것은 전염성이 높다. 세상이 무책임해진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대학 시절 한 선배가 말했다. "세상에 좋은 것 볼 시간도 모자란데 나쁜 것 볼 시간이 어디 있냐." 그땐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르는 내 시선은 변했다. 그래서 그때 그 선배의 말을, 지금은 용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이 책의 본문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만약 당신의 가치관이 '능력에 따른 차이도 인정하기 어렵고, 성과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경제활동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중략) 자신이 따를 수 없는 규칙을 가진 게임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이는 그 게임에 참여하는 개인의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불행이고, 다른 사람의 건전한 게임 진행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더 큰 불행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냉랭한 세계관이다. 1,2년 전에 이 책을 만났다면 책을 펼치자 마자 바로 던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그때의 대학 선배와 같았다. '이상', '꿈',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들', 내가 신처럼 떠받들던 가치들을 통째로 짓밟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이 사회의 시스템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개혁할 의지도 시스템 바깥으로 뛰쳐 나갈 용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자각을 한 지금은, 이 책이 보여주는 현실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기에 좀더 진지하게 생각할 예정이다.

나는 이 책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젠 가벼운 농담 같은 말을 줄여야 할 것만 같다. 비록 내 농담에 진리가 담겨 있을지라도 나의 진실이 아니라면 함부로 하지 않겠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그 현실에 메스를 대려면 책임을 깊이 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변증법 원리대로 돌아간다. 오직 그것만이 영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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