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거나, 책보다 더 매력적인 매체가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비주얼 시대라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실용적 필요 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 나를 찬찬히 돌아볼 때마다 내 마음속 청개구리를 발견하곤 한다. 남들이 뭐라건 내 하고 싶은 대로 살려고 애쓴 삼십 년이다. 그게 지나쳐 어떤 때는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남이 그걸 하라고 하면 하지 않기도 했다. 몸쓸 기질이다. 약간은 후회도 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걸 누군가 권했던 적이 많았고, 진작 그걸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좀 더 맘에 드는 내가 되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만난 건 대단한 행운이다. 이미 밝혔듯이 난 이 책을 순전히 실용적 필요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해 아는 이와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해서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러 제 값을 주고 책을 샀다. 솔직히 18000원이란 돈은 이 책의 제 값은 아닐 거다. 인터넷 서점에서 각종 할인을 받아 사는 사람에게는 적정한 가격인지 몰라도 나처럼 버스비 들여가며 표지에 적힌 가격 그대로 지불하고 사는 사람에게는 분명 거품이 낀 가격이다. 그래서 돈을 지불할 때는 아까웠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십여 쪽 읽었을 때 이런 감정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을 줄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주얼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문자보다는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 책을 잡고 있는 순간만큼은 TV도 만화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내가 강연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오주석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문장 중간중간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적어두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하!' 하고, '하하~' 했다.

이미지 시대라고 책에도 이미지가 많이 들어 있곤 하는 게 요즘 추세이다. 하지만 이미지가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글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있으면 우선은 보기가 좋긴 하지만 글이 이미지를 리드하지 못하면 (특정 분야의 책을 제외하곤) 책은 뒤뚱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글과 그림을 오가는 내 시선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편안했다. 글의 리더십이 대단했다. 이런 글을 가능케 한 강연자의 수준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오주석 선생님 생전에 강연을 듣지 못한 게, 아니 그런 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게 아쉽다. 내용이 얼마나 공정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평가야 지체 높은 학자 양반들이 할 일이고, 나 같은 사람이야 이렇게 친절한 안내서를 보고 한국의 미가 무엇인지 어슴푸레하게나마 아는 게 목적 아니겠는가. 우리의 미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이 책을 계기로 분명 달라졌고, 앞으로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탐사하는 즐거움이 나와 함께할 것이다. 내게 이런 기회를 마련해준 모든 분께 감사한다. 앞으로 오주석 같은 분이 많이 나와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수준 높은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길을 터주었으면 좋겠다.

하나만 짚고 글을 마치겠다. 이 책은 대단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다른 책에서라면 별로 아쉽지 않을 부분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두어 군데서 드러나는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이다. 우선 74쪽 이미지가 흐릿한 게 맘에 안 든다(내가 갖고 있는 책은 1판 24쇄임). 74쪽의 흐릿한 이미지는 하단부에 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 이상을 하지 못한다. 흐릿하기 때문에 71쪽으로 자꾸 돌아가게 만든다. 기술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선명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또 227쪽과 229쪽 사진 이미지는 도대체 뭔가. 사진 자료는 이보다 더 좋은 걸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24쇄 정도나 팔았으면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문구-"워싱턴 주미대사관이 선정한, 전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가장 훌륭한 명저!"-가 부끄러울 지경이다(혹 외국판에는 더 좋은 이미지가 들어가 있는 건 아닌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무슨 자동차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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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5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에도 그런 결정적 결함이 있었군요.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더욱 아쉽게
느껴지셨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