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가 너무 힘들었음. 힘들어서 나를 조금 변하게 할는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미(美)를 사랑하지만 절도 있게 사랑한다. 지(知)를 존중하지만 탐닉하지 않는다. 부(富)를 추구하지만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은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함은 깊이 부끄러워 한다."

- 페리클레스 연설 중에서

<뛰어난 직원은 분명 따로 있다>(김경준, 원앤원북스, 2004)에서 재인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극장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았다. 와이프 생일이어서 용인 민속촌에 가려다가 작년과 같은 이유로(추워서) 그냥 서울에서 영화를 봤다. 와이프가 <사랑해 파리> 보자고 하는 걸 내가 이 얘기 저 얘기 해서 <황혼의 사무라이> 보는 걸로 바꿨다. 맘씨 고운 와이프 히메. 참고로 이 글은 스포일러성이다.

잠시 나 사는 이야기 좀 하고.

사무라이의 일상을 잘 그리는 데 성공했다기에 맘이 끌린 영화다. 요새는 그렇다. 삶 그리고 그 속의 사람. 이 둘이 없으면 영화를 봐도 본 것 같지 않다(가끔 보는 스트레스 해소용 영화는 빼고). 이제 서른을 갓 넘겼을 뿐인데, 한동안 먹기를 거부했던 나이를 이제 다시 먹고 있나보다.

내 기억이 미치는 가장 오래된 시간부터 남들은 내게 '어른같다'는 말을 했다.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다보니 애어른으로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갑자기 원통했다. 제 나이에 맞게 살지 못한 서러움이 밀려와서 그 전에 못했던 애 노릇 좀 하기로 결정했다. 한 10년쯤 그렇게 살았다.

여기부턴 영화 이야기다.

폐병으로 아내가 죽자, 아니 아내가 죽기 전부터 홀로 집안일을 모두 챙겨온 이구치 세이베이. 창고 관리 공무원인 그는 업무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향하는 '황혼의 세이베이'다. 직장 동료들은 몸도 잘 씻지 않고 옷차림도 변변치 않은 그를 두고 뒷담화를 즐기곤 했지만, 우연히 치른 결투에서 상대를 가볍게 제압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그를 '황혼의 사무라이'라 부른다.

이구치가 살던 번주의 주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전통에 따라 이전 정치 세력들은 할복을 명령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요고라는 한 사무라이가 할복을 거부한다. 일대에선 최고의 검객으로 인정받는 인물이었던바, 그를 죽이는 임무가 이구치에게 하달된다. 이구치는 자기의 소신과는 상관없이 가족을 위해 명령을 받아들인다.

그를 죽이러 갔으나 그를 기다린 건 칼이 아니라 가슴 깊은 대화. 요고는 자신의 비참한 삶을 술과 곁들여 술회한다. 요고에 못지않게 어려운 삶을 사는 이구치는 대화에 빠져들고 그에게 마음을 연다. 생활이 어려워 칼을 팔았다는 이구치의 말에 일순간 분개한 요고가 드디어 칼을 빼들고, 요고의 장검과 이구치의 단검이 맞부딪힌다. 가까스로 승리한 이구치에겐 첫사랑 토모에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 행복은 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세이베이는 메이지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뜬 불운한 '황혼의 사무라이'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정말 불운했을까? 요고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이구치는 자신의 삶이 절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가족을 위해 밭을 일구며 최선을 다하는 자기의 삶을 이구치는 긍정한다. 그렇기에 사무라이의 긍지인 검도 가족을 위해 처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삶을 '가족주의'라 비난할지도 모른다. 다른 이는 구차하다며 이런 삶을 거절할지도 모른다. 분명 폼 나는 삶은 아니다. 허나 진실한 삶이다. 생계만을 위해 사는 게, 어쩌면 인간답지 않은 삶일지도 모른다. 생계 이상을 꿈꾸는 것, 불멸을 꿈꾸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말도 설득력 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진정 '초월'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명예의 탑 꼭대기에 이름을 남기는 것만이 인간이 꿈꿔야 하는 초월이고 불멸의 삶일까. 초월, 무언가를 넘어서는 것, 나를 넘어서는 것, 치매에 걸린 노모를 위해, 이제 막 생명의 파란 싹을 틔운 어린 딸들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투신하는 것. 나는 이 영화에서 '일상의 초월'을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