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중학 3학년 때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동네 어귀의 구멍가게에서 별사탕이 든 뽀빠이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고 노래를 힘껏 외치면서 집으로 가던 시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깨끗한 농촌이었는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곤 했다. 별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9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배도 고프고 해서 라면을 자주 끓여 마셨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위염이 내 몸에 자리 잡았다. 내쫓기까지 10년도 넘게 걸렸다. 솔직히 위염을 고친 일등공신은 신경 덜 쓰고 논 20대의 시간이었다. 위염이란 게 십중팔구는 신경성이란 게 주위의 정설 아닌가. 이등공신 정도를 꼽으라면 식생활 조절을 꼽을 수 있다. 비교적 철저했다. 맵고 짠 거 조금 멀리했다. 적당히 먹는 거는 20대 후반부터 가끔 성공해서 지금은 보통 사람 수준으로 먹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재료 맛을 죽이지 않은 음식들이 좋아졌다. 흰 쌀밥이 아니라 여러가지 잡곡이 들어간 밥을 더 좋아하게 된 것도 20대 후반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언저리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리바리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세상이 하도 수상하여 요새는 먹을 거리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어디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착한 밥상 없을까 하던 차에 이 책 봤다. 다 읽지는 않았다. 이런 책 한 번에 다 읽는 사람 있을까 싶다. 책꽂이 어디, 책상 어디, 부엌 한 귀퉁이에 두었다가 착한 음식 그리울 때 한 번씩 펼쳐 보면서 깨끗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먹음직한 아이템을 발견하는 용도가 이런 책이 세상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기여 아닐까? 그래서 펼쳐 보고 몇 가지 시도해봤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내 몸 살린다는 잡곡 몇 가지 밥에 넣어서 먹은 게 다다. 뱃속이 좀 편해진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이 책 착한 건가? 일본 책을 우리말로 옮긴 거라 그런지 일본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별 넷 줄 것을 셋으로 줄였다. 그런다고 착한 밥상 차리는 데 도움 된다는 사실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