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 외 - 한국소설문학대계 20
이태준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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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 기쁜 일이다. 3.1 운동이 있었고, 해외를 떠돌던 임시정부를 생각하면 해방은 분명 눈물 나도록 반가운 일이다. '해방 전후'를 읽고 놀란 부분은 해방의 순간을 서술한 부분이다.

주인공 현의 기쁨과는 달리 주위는 담담하다. 그리 흥분된 분위기도 아니요, 놀라는 모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방 후 묘사도 마찬가지다. '기대와는 달리 서울 사람들도 냉정하고 태극기조차 보기 드물다.'는 서술에서 활기찬 거리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작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신문은 1면 기사로 그 중요성이나 의미를 충분히 강조했고, 후대 사람들은 그 역사적인 순간을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읽으면서 '정말 감동적인 일이야! 김정일과 손잡은 저 모습을 봐.' 라고 말할 지 모른다.

물론 우리는 같이 기뻐하고 눈물도 흘렸다. 특히 이산가족이 바라보는 그 모습은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렇지는 않다. 밤새 일을 하는 직장인에게는 기쁠 순간도 없이 그 순간을 보냈을 것이고, 가족을 잃어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관심 밖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 순간, 개인의 일과 감정에 몰두한 다수이다.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나 당장 거리에는 순사들이 걸어다니고, 그 강압적인 모습 앞에서 해방 순간은 마음에 와 닿지 않으리라. 또 어쩌면 그날 끼니 걱정에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순간의 획을 긋는 거대한 사건은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무감(無感)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내가 '해방 전후'라는 소설 속에서 발견한 것은 거대한 사건 속에서 지나쳐간 작은 일상이다. 순위를 따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간과하기엔 편견으로 자리잡을 것 같아 언급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의 편견 속에는 당시의 모습에서 활기찬 그 무언가를 느낄 것 같았다. 좌우로 나뉜 논쟁도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념속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티격태격 다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때도 사람이 살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순간에 사랑하는 연인들도 있었을 것이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도 있었을 것이고, 징용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말하지만 이런 사건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소설 속에서도 이것은 지나가는 배경으로 자리할 뿐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님도 오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이 근질근질했다.

얼마 후면 통일이 된다고 한다. 통일이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일상에 매달리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다가오지 않을까. 가슴 설레고 기쁘면서도 세금이 오를 걱정에 표정이 일그러지지는 않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세월이 더 지나서 그들의 자손들에게 '통일이 될 때 나는 잠을 자고 있었지.'라며 추억처럼 말하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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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 외 한국소설문학대계 27
황순원 지음 / 동아출판사(두산)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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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를 통해 친숙한 작가 황순원의 작품들이다. 1915년에 탄생해 2000년에 생을 마감한 그는 문단에서도 알아줄 만큼 글을 쓰는 데 초지일관했던 작가다. 한 해도 거름 없이 작품을 발표하고 직접 교정을 볼 만큼 그의 장인 정신은 유명하다.

그의 생애만큼 그가 쓴 작품은 많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작품은 일부인 듯 하다. 이 책은 황순원 작가의 대표작을 모아놓은 선집이다. 다른 선집들도 많지만 그의 작품 중 주목할만한 것들만 신중하게 골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 소설 문학 대계>가 다 그렇듯 비평가의 평과 작가 연보, 참고 서지는 그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는 자료다. 20세기를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그이기에 그의 작품 속엔 언제나 시대가 있다. 그리고 시대를 포착하는 남다른 눈도 있다.

전쟁시에도 펜을 놓지 않았던 그를 떠올리며, 현 시대를 사는 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나약해 있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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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동네에서 생긴 일 - 60년대 문단 이야기
정규웅 지음 / 문학세계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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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상이나 경제적인 면을 보는 것처럼 분야별로 시대를 분석해내는 방법이 있겠고, 시대의 흐름을 한 눈에 정리해 가면서 세부의 차이를 알게 해주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글 동네에서 생긴 일'은 60년대의 문단을 이해하는 새로운 코드를 제공해주고 있다.

'글 동네에서 생긴 일'은 단순히 문단의 가십거리가 아니다. 60년대의 사회, 정치 현실 속에서 문단의 현장을 집어보며 오히려 60년대를 이해하는 책이다. 사회와 문학을 동시에 이해하는 독특한 형식의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정규웅은 각 장마다 등단 제도, 문단 구조, 문인 단체, 외설 시비, 정치와 문단 등 굵직한 문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는 주관 대신 문인들의 증언과 문학 논쟁 기록들을 사건 사이사이에 촘촘하게 박아 넣었다. 이 때문인지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받는 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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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4
고은 지음 / 민음사 / 197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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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시집을 봤다. 누구의 손에 닿았는지 종이의 끝은 닳아 있었다. 지금은 민음사에서 재판을 찍어내어 헌책방에서나 볼까말까한 고은의 시선집 '부활'(초판). 제목에서부터 청년 고은의 패기가 느껴진다. '부활'은 고은의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에서부터 네 번째 시집인 <문의 마을에 가서>까지 총 5파트로 나누어 정리해 놓은 시집이다. 말이 정리지 그의 시들중 괜찮다는 것은 모두 있으니 초기시의 정수만 뽑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부활'은 그의 초기시를 간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지만, 언어가 얼마나 신선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2000년에 70년대의 시가 신선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가 그만큼 시대를 앞서 있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비평가 염무웅은 '부활'의 해설에서 고은의 언어가 낯설다는 말을 내비친다. 그러나 지금의 시선에선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젊은 작가의 언어처럼 현재의 시대와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이리라. 그러면서도 그는 당시의 상황들을 조용히 내뱉는다. 신선하고 어찌보면 낯설기도 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조용하고 나지막이 표현된다.

시집을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일기장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시 자체가 마음의 고백이라지만, 표지의 느낌도 그렇고 시의 내용도 일기일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난 지금 시인의 일기를 훔쳐본다. 그 일기엔 절제된 언어가 있고 젊은 날의 그가 있고 그가 사랑한 사물들이 꾹꾹 눌러 적혀있다. 한 장 한 장을 읽을 때마다 그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 같아 미안하고 다른 한 편으론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시대가 지났어도 그의 언어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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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꿈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3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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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를 보면 이런 말을 한다. '화장발일 거야.'

'화장발'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본연의 모습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을 넘어 화장의 힘을 빌어 전의 모습을 탈바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예쁘니까 질투도 나고 부럽기도 해서 괜히 해본 말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는 지나치게 덕지덕지 겹을 쌓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경우는 젊은 층 보다는 중, 장년층 여성의 경우에서 발견된다. 그들 말에 따르면 자신이 없어지니까 화장품으로 두껍게 커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음.. 듣고 보니 수긍이 된다. 그러면 남자의 경우는 어떨까. 여기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씌우고 다니는 이가 있다. 바로 이청준의 '가면의 꿈'에 나오는 주인공 명식이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위의 아주머니들과는 그 경우가 또 다르다.

나는 아내 지연의 시선에서 명식을 바라본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소문난 천재였던 명식. 초등학교 오학년 때 검정시험을 거쳐 일류 중학교에 들어가는 가 하면, 중학교 이학년 땐 심사위원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소문난 문재였고, 그 뒤로도 주위의 기대에 어긋남 없이 최연소로 법관에의 관문에 들어섰다. 그러던 그가 무슨 일 때문인지 어느 밤이면 가면을 쓰고 외출을 한다. 그리고는 집에 오면 아내와 성생활을 즐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가면의 힘을 빌어 또 다른 그를 만드는 것일까.

'남편은 그런 식으로 변장을 하고 그 자기의 가면 뒤에서 정말로 조용한 휴식을 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처럼 그는 가면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그의 얼굴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을 하고 그 자신을 잠시 잊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천재인 경우 그 이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 뿐만 아니다. 우리들의 경우도 가끔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그것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가면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는 안으로 많이 숨어들고 있다. 소외감. 개인주의 이런 것들이 바로 안으로 숨어들고자 하는 이유에서 출발한다. 주위에서 명식처럼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이를 만날 수는 없지만 요즘은 자신의 얼굴을 또 다른 나로 설정하고 내면의 나를 따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명식의 말처럼 사람들이 그 엄청난 대낮의 햇빛을 스스럼없이 견디어낼 수 있도록 잘 단련이 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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