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시집을 봤다. 누구의 손에 닿았는지 종이의 끝은 닳아 있었다. 지금은 민음사에서 재판을 찍어내어 헌책방에서나 볼까말까한 고은의 시선집 '부활'(초판). 제목에서부터 청년 고은의 패기가 느껴진다. '부활'은 고은의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에서부터 네 번째 시집인 <문의 마을에 가서>까지 총 5파트로 나누어 정리해 놓은 시집이다. 말이 정리지 그의 시들중 괜찮다는 것은 모두 있으니 초기시의 정수만 뽑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부활'은 그의 초기시를 간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지만, 언어가 얼마나 신선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2000년에 70년대의 시가 신선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가 그만큼 시대를 앞서 있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비평가 염무웅은 '부활'의 해설에서 고은의 언어가 낯설다는 말을 내비친다. 그러나 지금의 시선에선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젊은 작가의 언어처럼 현재의 시대와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이리라. 그러면서도 그는 당시의 상황들을 조용히 내뱉는다. 신선하고 어찌보면 낯설기도 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조용하고 나지막이 표현된다.시집을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일기장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시 자체가 마음의 고백이라지만, 표지의 느낌도 그렇고 시의 내용도 일기일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난 지금 시인의 일기를 훔쳐본다. 그 일기엔 절제된 언어가 있고 젊은 날의 그가 있고 그가 사랑한 사물들이 꾹꾹 눌러 적혀있다. 한 장 한 장을 읽을 때마다 그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 같아 미안하고 다른 한 편으론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시대가 지났어도 그의 언어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