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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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평점 :
밀도가 꽤 높다.
"한 권으로 읽는 인문학 147권" 따위를 예상했다면 그건 좀 아니라고 살짝 말씀드리고 싶다.
그 책들의 핵심 내용만 쏙쏙 뽑아 알기 쉽게 간추려 주는 책도 아니다.
어떨 땐 리뷰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비평 같기도 하며, 어떨 땐 책 그 자체의 내용보다는 그때그때 자신의 감상과 하고픈 말에 더 많은 비중이 실린다.
그의 글은 엄정한 '비평'과 가벼운 '리뷰' 그 사이를 자유롭게 산보하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해, "로쟈"를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온라인 서점에 올라와 있는 책소개와 목차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설명은 대충 끝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를 안다면 상당수는 그의 블로그(로쟈의 저공비행)도 알 것이고, 그의 글 쓰는 스타일도 알 것이며, 책소개와 목차만 훑어보아도 눈에 익은 글들이 많을 테니깐. 한국의 '책 좀 본다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그의 이름을 들어봤을 터이다.
그러나, 대뜸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부터 물어본다면 설명이 좀 길어진다.
아니, 사실은 그럴 때에도 블로그 주소부터 알려줬을 것 같다.
뒷표지에 '매일 천 명 이상의 사람이 들락거리는 강의실'로 표현된 그 블로그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책에 대한 글'이 올라온다. 처음에는 정말 무슨 '책 읽는 기계'이거나 '로쟈'라는 이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독서집단 같은게 있는 줄 알았다.
가만히 보면, 올리는 모든 글이 온전히 그의 글들만은 아니다.
주요 일간지에 실린 괜찮은 도서 소개를 하나 슥~ 갈무리해온 다음, 관련된 원서 표지나 주제에 관련된 이미지를 큼지막하게 붙여놓고 기사의 앞 뒤로 짤막한 멘트를 다는 경우도 많은 그의 블로그 스타일은 다른 '인터넷 서평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그의 블로그 주소를 알려준다는 것은, 웹툰 작가가 웹툰을 엮어 책으로 내었는데 공짜로 그걸 볼 수 있는 온라인 주소를 알려주는 기분과 조금 흡사하다. 하지만, <한겨레21>, <시사IN>, <출판저널>, <텍스트>, <공간> 등등 다른 매체에 기고된 글들이 엄청 많기 때문에 그런 걱정일랑 안 읽어본 글들을 읽는 데에 돌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제법 많이 덧붙여진 [P.S.]들도 재미와 부담을 함께 가중시킨다.
그가 작심하고 쓰는 글에는 정교하게 켜켜이 쌓아올린 섬세한 독서의 흔적이 있다.
빵으로 비유하자면, '바움쿠헨'이나 특수한 종류의 '패스트리' 같은 것인데, 한 가지 결과 맛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문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자연과학, 정치, 심리학 등 다양한 재료가 서로 얼기설기 엮여서 독특한 지식의 결을 구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학자적 자세와 양심이 마음에 든다. 오타나 오역에 대한 가차없는 지적과 비판,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용어를 곰씹어 사용하는 그 태도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어색한 번역을 가지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는 것은 알라딘 서재에서도 늘상 보아왔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다른 글들에서도 여전하니 반갑다.
그는 요컨대 '발췌독'의 대가이다. 워낙 많은 책을 건드리니 당연히 구석구석 다 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도, 남들이 잘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점을 그 책에서 찾아내어 또 다른 지식과 연계하여 소개해 준다. 이미 봤던 책인데도 하나 이상은 꼭 새로 건질 것이 있다는 점이 그의 글을 찾아읽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자유>를 쉽사리 '한권으로 읽는~' 류의 책으로 부르지 못하게 한다. 이들은 모두 '로쟈에 의해 선별되고 재해석된' 것이므로 이 책을 다른 147권에 대한 소개서 쯤으로 여기는 것 또한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책 앞쪽에 실린 "책머리에"와 "프롤로그 : 인생은 책 한 권 따위에 변하지 않는다"를 읽고 그닥 쫄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글들이 원래 그렇듯이, 평소보다 멋있고 좀 거창한 멘트를 집어넣은 느낌이다. 그냥 본문에 실린 그의 글들부터 읽기 시작한다면 심리적 부담이 덜해지지 않을까, 라는 사족.
여기 실린 글들은 기본적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이다.
뭔가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 자체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 법. 분명 이해의 질을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 '책' 자체를 직접 읽어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리라. 그것 역시 "책을 읽을 자유".
P.S.
"아따, 그 양반, 눈알도 부리부리하고 수염도 텁수룩한게 한국어를 아주 잘 하데~. 귀화한 러시아 사람인가?"
이건 또 무슨 소리? 인문학에 관심 있다길래 <로쟈의 저공비행> 블로그를 소개해 주었더니 며칠 후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아니 왠 러시아 사람? 아하.. '로쟈'는 <죄와 벌>에서 봤는지 어땠는지 러시아 이름인줄 안 것이고, 블로그 대문 왼편에 앉아있는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의 사진을 바로 주인장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 사람은 슬라보예 지젝이라구요, 지젝... (ㅠ.ㅠ)
☞ 로쟈 =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
☞ 로쟈의 저공비행 = http://blog.aladin.co.kr/mram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