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글쓰기 -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문장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명숙 옮김 / 북바이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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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유명한데 막상 읽은 책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번쯤은 들어본 ‘자기만의 방‘이 그녀가 1928년(46세) 10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두 여성 칼리지(뉴넘 칼리지의 예술협회와 거턴 칼리지의 오타-거턴 역사협회)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한 강연의 강연문을 수정 보완해 다음해 출간한 일종의 강연문 에세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870년, ‘기혼여성재산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여성이 결혼 후에 벌어들인 급료와 재산을 모두 남편이 차지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난 1882년에서야 이 법이 확장되어 비로소 그 근거나 획득 시기와 상관없이 여성이 자기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놀랍고 영국의 최대 호황기라고 불리는 엘리자베스 시대(1558년~1613년)를 겪었음에도 여성에 대한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했다는 사실, 단독으로의 여행이나 독신의 삶 또한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는 1441년에 창립되었고 옥스퍼드 대학교의 발리올 칼리지는 1263년에 세워졌습니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오직 부유한 남성에게만 열려 있었습니다. 18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여성이 다룰 수 있는 문학-소설(픽션)의 문이 열렸고 버지니아 울프는 바로 이런 현실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한 강연문을 다듬어 ‘여성이 픽션을 쓰고 싶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며 ‘자기만의 방‘을 시작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이 저명학 작가이자 비평가, 역사가였기에 울프는 대학에 가지 못했음에도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방대한 장서로 홈스쿨링을 하며 고전과 문학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열다섯 살때부터는 킹스 칼리지 런던 여성부에서 다양한 공부를 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이때 여성 인권 운동가들과의 접촉은 울프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비록 열세 살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으로 신경증 증세와 정신 불안, 환청 등으로 고통받았으나 고모에게 받은 2,500파운드의 유산으로 매년 이자만 500파운드 가량이 생겼기에 그녀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고 픽션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칼리지의 잔디밭을 가로질러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가로막히고 도서관 조차 칼리지의 연구원이나 그에 합당한 누군가의 허락이나 대동 없이 출입이 불가능한 시대에 버지니아 울프는 선구자적인 활동들을 넓혀 나갑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여성과 글쓰기]가 자유로워지는 날들을 향해, 살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그리고 조지 엘리엇 같은 위대한 선배들에 이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갔으며 장편소설들과 에세이, 서평과 문장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소설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이나 [제이콥의 방] 등등에서 가려 뽑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원문 포함)과 그녀의 내적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일기들이 [여성과 글쓰기]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어 당찬 모습 너머로 여전히 정신적으로 아픈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습니다.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받는 현실이지만 행동으로 나서는 버지니아와 고민하는 버지니아를 만났습니다. 때론 질투하고 때론 자신의 글에 터무니 없는 이유를 들어 깎아내리는 글에 곧바로 반박하는 멋지고 쎈 버지니아를 만났습니다. 비록 자신의 삶을 자연이 준 시한까지 살지는 못했으나 그녀가 닦아놓은 길이 있었기에 이후로의 ‘여성과 픽션‘이 거듭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방아쇠를 당길 수 없어서 펜이나 붓을 사용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How many times have people used a pen or paintbrush because they couldn‘t pull the trigger? (Selected Essays /483쪽)

책속에 책들을 만나보며 몰랐던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을 곱씹어 읽어봅니다. 다음엔 아마도 [등대로] 아니면 [댈러웨이 부인]을 꺼내들 것 같습니다. [여성과 글쓰기] 통해 버지니아 울프를 많은 분들이 만나시길. 추천합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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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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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00년 경의 이집트, 새 파라오 쿠푸 자신은 어쩌면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흘리고 이 말을 듣고 있던 왕궁의 점성가와 파라오의 최측근 대신들, 늙은 고문관과 대제사장은 파라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합니다.

파라오가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겠다는 말을 꺼낸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대재앙으로 다가옵니다. 얼마전 가장 오래된 신전 두 곳을 폐쇄 했고, 그 직후에는 이집트인들에게 희생 제의를 금하는 법령까지 제정한 파라오의 말 한 마디였기에 충격은 크게 다가옵니다.

애꾸눈의 늙은 서기 이푸르를 만나러 고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는 지하로, 훼손되었을지언정 파피루스들에서 온갖 정보를 찾아내어 피라미드의 필요성을 새 파라오에게 언급해야만 합니다. 드디어 대제사장은 자신들이 조사한 피라미드에 대해 고문서들이 감추고 있던 비밀들을 설명해나갑니다. 피라미드는 거대한 묘소임에 틀림없지만, 그걸 만들게 된 원래의 의도에 무덤이나 죽음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즉 그 두 개념과 상관 없이 피라미드는 탄생했고, 그 둘과 피라미드를 연결짓게 된 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하다고.(12쪽)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에 빠진 이집트인들을 결집하기 위한 방법, 피라미드는 바로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구상 되었으며 백성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시킬 방법으로, 요컨대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하는 동시에 철저히 무용한 무엇이야야 했기에 파라오와 대신들은 차츰 거대한 묘비를 생각해내기에 이르러 바로 피라미드 건축이 시작되었다는 설명에 파라오 쿠푸는 매료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피라미드는 권력입니다. 폐하. 억압이요, 힘이요, 부이지요. 동시에 군중을 지배하고 그 정신을 우매화하고 의지를 꺾어놓는 무엇이며, 단조로움이요 소모입니다...˝(16쪽)

쿠푸는 선언합니다. ˝피라미드를 만들겠노라. 가장 높은 피라미드, 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를.˝(18쪽)

이스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는 이렇게 지어져 갑니다. 가장 높은 피라미드, 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쿠푸가 파라오로 집권하는 내내 진행 되고 새로운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한 초석으로 왕국의 서른여덟 개 주에 채석장을 향한 관리들의 발걸음이 시작되고 거대한 돌덩이들의 이동을 위한 도로를 설계하는 이들과 피라미드 건축을 담당할 중앙 부서 설계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1만 999번째 돌을 앉히던 때엔 여기저기서 정신착란 증세가 급증하고 1만 1384번째 돌은 피라미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불길한 소문에 휩싸이더니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사망자가 속출했고 결국 인부들은 파리떼처럼 소리없이 죽어나가고 현장감독 역시 수석 감시관의 채찍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7년, 10년, 20년...마지막 돌 네 개만을 남긴 피라미드, 그리고 그 돌들을 지키기 위해 보초까지 세워진 상황, 피라미드의 완성은 곧 파라오의 죽음을 의미하기에 파라오는 파라오대로, 설계하고 건축을 진행해오던 관리들은 관리들대로 마지막을 선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집트하면 떠오르는 건축물 ‘피라미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거대한 돌을 채석장에서 옮겨오는 동안에, 경사진 피라미드에 정확한 위치에 올리고 움직이고 고정하는 과정에 많은 목숨이 그야말로 소모되었음을. 국가라는 권력체가 힘을 과시하고 통솔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관계시설과 운하와 같은 시설들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을 불러일으키는지 목도한 기분입니다.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독재정권으로 인한 고국 알바니아의 현실을 기원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과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자행 된 동양의 피라미드, 바로 티무르 칸-절대군주-이 세운 칠만 개의 머리통으로 이뤄진 해골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그 피라미드의 주인이 되었다고, 죽음으로서.

강렬한 이스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의 건축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으스러지고 절규하는 이들의 비명속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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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07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현준아사랑해 2022-06-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