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미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2
천세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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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숲에서 만났던 소년이 천세진의 장편소설 [이야기꾼 미로]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진짜 ‘이야기꾼 미로‘였을까? 꿈인 줄 알았는데 평생동안 기억하는 꿈이라니 그건 꿈이라기엔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

이야기꾼 미로가 사는 호수마을엔 자동차도 없고 전자기기는 물론 문명의 혜택이라고 할 수 있는 글자와 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호수들 근처에 모여 살며 ‘이야기꾼‘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개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승합니다. 다른 호수마을의 소식은 ‘이야기꾼‘들이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마을에 돌아와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큰 호수마을에는 여러명의 ‘이야기꾼들‘이 존재하고 후계자들도 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로가 사는 작은호수마을은 나이가 들어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꾼 할아버지 구루가 오래전 후계자가 되려다 포기한 애린이 떠난 이후로 마을의 이야기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할까 싶어 걱정을 하는 중입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미로가 서럽게 우는 동안 눈물호수에 맑은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넘쳐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만 들었던 마을 사람들은 실제로 미로의 눈물호수로 인해 마을 골목이 채워지고 그대로 두면 마을 전체가 잠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에 접하자 당황한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 이야기꾼을 불러와 미로가 눈물을 그치게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작은호수마을의 유일한 이야기꾼인 구루 할아버지는 천천히 미로에게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 지나치면 그리움거울 호수가 나타날꺼라고, 그 길을 걷다보면 보고 싶어했던 걸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눈물을 멈춘 미로가 이야기꾼 구루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데에는 이런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숨안개 너머의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꿈이.

하지만 미로는 여행 도중 길을 잃고 안개 자욱한 곳에서 희한한 옷과 이상한 물건들을 쓰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엄마와 다투고 외삼촌이 있는 전라북도 송학마을로 가출을 한 고등학교 2학년의 나와 UFO 덕후인 외삼촌이 바로 미로가 만난 당사자들입니다. 안개와 함께 홀연히 나타나 일주일을 머물다 다시 안개처럼 사라진 미로, 이후로 혹시 미로를 다시 만날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긴 나와 미로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사라진 외삼촌까지 이야기는 돌고돌아 ‘이야기꾼 미로‘가 들려주는 긴 호수세계 여행이야기들로 남았습니다.

글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지혜와 살아가면서 만나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는 수많은 지식들을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야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화 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허황된 꿈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기도 했지만 농축된 삶의 지혜는 계승되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는 문명의 발달로 기록물들이 넘쳐나지만 평행이론에 의한 다른 차원의 세계에는 아직도 호수들 마다 마을이 있고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꾼을 통해서 지혜를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래 동화 같고, 판타지 소설 같고, 또 어딘가 SF소설 같은 [이야기꾼 미로]를 통해 본 적도 없는 차원 너머의 세상을 여행하고 온 기분입니다. 지치고 힘들어 꿈처럼 먼 옛날이 그리울 때, 그때 다시 한번 미로의 여행에 동행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사는 곳이 다 같아서 질투도 하고 싸움도 있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호수세계의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천세진 작가님, 다른 작품들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야기가 꼭 시 같습니다.

#이야기꾼미로 #천세진 #장편소설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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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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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아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은 ‘할아버지‘였다. (7쪽)

슬아의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읽은 독자는 슬아의 이 말투에 중독되었다. (독자)

가부장 할아버지의 큰아들이 바로 슬아의 아빠였지만 세월이 흘러 슬아가 글을 써서 작가가 되고 열심히 글쓴 돈으로 집을 사고, 그 집에 출판사를 차려서 출판사 사장이 되고 슬아의 엄마 복희 씨와 아빠 웅이 씨를 모두 고용하는 가녀장이 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라고.

눈을 감고 읽어도 이슬아 작가님의 이야기인데 참으로 유쾌하게도 장편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 복희도, 아빠 웅이도 이슬아 작가님의 엄마와 아빠 성함 그대로, 할아버지도, 외할머니 성함도 그대로 등장합니다. 매일 마감을 하는 작가님의 하루 일과가 그대로 소설에 녹아 있고, 다만 낮잠을 매일 자야해서 지었다는 출판사 이름 ‘낮잠 출판사‘는 소설에만 등장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가녀장‘이라는 이질적인 단어를 접하고 나서야 ‘가부장‘이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친 단어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울러 ‘모부‘라는 단어를 소설에서 만날 때마다 움찔울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움과 생경함이 공존하는 순간입니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아버지가 아닌 딸이 그 집의 가장이라는 뜻으로 ‘아비 부‘ 대신 ‘계집 녀‘를 넣었을 뿐인데 어색하고 생뚱맞아 보입니다. 이 소설은 그래서 재밌습니다.

낮잠 출판사가 있는 이 집의 구조는 맨 위층에 이 집안의 가장인 슬아의 서재와 침실이 있고, 그 아래엔 출판사 사무실이 있고, 더 아래엔 슬아의 옷방이 있으며 복희와 웅이가 지내는 안방은 지하에 위치해 있습니다. 가장인 슬아는 집안 어디에서나 실내 흡연을 하지만 그의 아빠인 웅이는 실외 흡연만 가능합니다. 아주 예외적으로 집안에 심각한 우환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한 겨울에도 웅이는 패딩을 챙겨입고 귀찮고 서럽지만 이 집을 나가서 살 돈이 없으므로 조신히 실외 흡연을 합니다.

슬아는 글을 쓰기 위해 집밥을 먹습니다. 아니, 복희가 해 주는 집밥만 먹습니다. 낮잠 출판사가 운영 되기 위해서는 슬아가 글을 써야하고 슬아는 집밥을 먹어야 글을 쓰기 때문에 복희는 ‘낮잠 출판사‘에 처음부터 정직원으로 입사해 지금은 복희팀 팀장 입니다. 군대에서 사성장군의 운전병을 했던 웅이는 이후로도 다사다난한 노동의 역사를 품고 만능 노동자로서 삼십 년을 보냈고 지금도 가녀장 슬아의 출판사 직원 겸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주말엔 트럭에 실린 다양한 물건들을 전국에 판매하는 일과 산업 잠수사, 수영강사 일도 가끔 합니다. 문학청년으로 문예창작과 학부생이었던 웅이는 요즘 넷플릭스 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가녀장의 시대]는 이미 도래하였으나 우린 그 이름을 몰랐습니다. ‘소녀 가장‘과는 전혀 다른 단어 ‘가녀장‘를 만나 비로소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깨달아 갑니다. 근무시간 중에는 딸이어도, 자식이어도 존대를 하는 복희와 웅이, 직원으로 근무하는 중인 부모님의 노동에 대해서 철저히 급여를 지급하고, 문화생활을 위한 복지혜택과 김장과 장 만들기 등의 특별한 노동의 댓가 또한 보너스로 적절히 챙겨주는 멋진 사장님이 꾸려가는 낮잠 출판사의 시트콤 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지만 [가녀장의 시대]에 더 특별한 재미와 웃음과 어딘지 어긋난 듯 보이는 정상인의 모습이 다 실려 있습니다. 자극적인데, 도발적인데, 그래서 멋진 이슬아 작가님의 가족드라마 ‘가녀장‘ 이야기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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