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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 ㅣ 세계기독교고전 5
우골리노 지음, 박명곤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12월
평점 :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이하 생략)
이 거룩하고 성스러움이 묻어나는 문장은 기독교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드린 <평화의 기도>다. 중세 기독교 영성의 진수라 불리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설립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수사는 1182년 부유한 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정규 교육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생활을 영위했지만 이후 로마를 순례하는 도중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자신에게 주어질 아버지의 유산을 포기한채 본격적인 수도사의 삶으로 전향하기에 이른다.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과 순결, 청빈을 삶의 가장 지고한 목표로 삼으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끊임없이 고난과 고행 속에 던졌던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한 행적과 그를 따랐던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제자들의 삶의 흔적들은 이후 거의 한 세기가 지나서 문서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서의 저자 '우골리노'형제가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프란체스코와 제자들의 신앙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기록한 책이 바로 본서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이다.
책은 서론을 제외하고 크게 총 6부로 나누어져있다. 성 프란체스코와 그의 첫 제자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주를 이루는 전반부와 프란체스코가 천사로부터 오상을 받는 장면, 주니퍼, 길레스 형제들의 행적 등이 기록된 중반부와 후반부의 구성이다. 자발적 헌신을 통한 믿음과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동경했던 이들 수도사들은 청빈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깨끗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자신보다는 이웃의 삶을 염려하며 돌보는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성경적 이웃 사랑의 실천을 본인들의 삶의 지평 속에 풀어놓았다. 끊임없는 기도와 금욕, 고행은 이들에게 있어서 삶의 의무이자 신앙의 기쁨으로 드러났고, 이들의 이러한 깨끗하고 투명한 삶의 모습은 당시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이들의 삶이 대중들에게 환영받고 숭앙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벌거벗음과 누추함의 모습은 이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적지 않은 대중들에게 항상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었으며 갖은 욕설과 비아냥의 희생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무지한 대중들에게 받는 손가락질과 업신여김은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하늘의 기쁨이었으며 행복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리뷰의 서두에서 <평화의 기도>를 짤막하게나마 소개한 이유는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이 그들이 살던 당시의 세상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리고 싶어서였다. 야만과 광기로 얼룩진 중세 암흑의 시대를 살아내었던 이들에게 반목과 투쟁이 아닌 화합과 상생을 위한 평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 자신들의 삶이 그러한 고귀한 사명을 위해 도구로서 쓰이기를 갈망했다는 것은 세상의 부유함과 안락함을 버릴 수 있었던 이들 삶의 근본적 동기였으며 원천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했던 깊은 신앙과 경건 가운데서 샘솟았다.
프란체스코는 당시 문둥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어느 날 문둥 병자 중에서 유독 화를 잘 내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수사들을 공격하고 모욕하며 욕지거리를 행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기에 마침내는 프란체스코가 그를 만났다. 그가 갖은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지만 프란체스코가 아랑곳 않고 약초를 넣은 물을 끓여서 이 배은망덕한 문둥 병자의 몸을 조용히 닦아주자 기적이 일어났다. 문둥 병자의 피부는 깨끗해졌으며 자신의 몸이 치유된 것을 확인한 병자는 프란체스코 앞에서 회개와 참회의 눈물을 쏟고 새사람이 되었다. 이렇듯 아무도 돌보기를 원치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프란체스코 수사는 영혼에 대한 연민을 가진 신자였다.
이외에도 프란체스코 수사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신앙적 미담은 본서에 가득하다. 1517년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기독교의 시대를 살다 갔던 사람이기에 당연히 프란체스코는 카톨릭의 성인으로 시성 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책 또한 개신교보다는 카톨릭적인 색채가 강한 저작이다. 책의 내용 중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연옥 교리와 마리아 몽천설, 오상, 자연스러운 카톨릭 성인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이 책의 시대적이며 종교적인 배경을 드러내준다. 나는 한 명의 평범한 개신교 신자로서 이 책을 펼쳐들고 읽으며 단순히 개신교와 카톨릭의 종교적 구분이나 교리적 차이가 아닌 프란체스코라는 비범한 역사적 인물과 그를 따랐던 제자들의 신앙의 모습이 보여주는 교훈에 집중했다.
피폐해진 인간성과 고갈된 인간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작금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삶을 던져 이웃의 삶을 보듬을 수 있었던 이 위대한 인물들의 삶은 지금을 살아가는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신선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개신교와 카톨릭의 구분을 떠나서 하나님을 믿는 현대 교회의 신자들에게 있어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가장 높고 고결한 신앙적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항상 그렇듯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고통을 감내하며 육체적 아픔을 견디고 있다. 자기 부인과 겸손, 타자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필요한 시대,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듯 지난하기만 한 지금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이때, 본서에서 이야기하는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의 삶은 독자들의 영혼의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충분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