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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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여름, 영국 선원 네 명이 작은 구명보트에 올라탄 채 남대서양의 망망대해를 표류했다. 이들이 탄 구명보트에는 순무 통조림 두 개뿐 마실 물도 없었다. 선장과 일등 항해사, 일반 선원 그리고 배의 급사로서 잡무를 보던 열일곱 살 소년 한 명으로 구성된 난파자들은 순무 통조림과 운 좋게 잡은 바다거북 한 마리를 가지고 연명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이후 여드레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잡무를 보던 소년은 주위의 충고를 무시한 채 바닷물을 먹고 병에 걸려 구명보트 한켠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굶주림으로 19일의 시간이 지나가던 어느 날 선장은 일등 항해사에게 때가 왔다고 말한 후 날카로운 주머니칼로 죽음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열일곱 살 소년의 경정맥 급소를 찔렀다. 그리고 이들 세 명의 남자들은 나흘간 소년의 살과 피로 연명했다. 난파 24일째 되는 날 드디어 배가 나타났고, 이들 세 명은 모두 구조되었으며 영국으로 송환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아사 직전에 있었던 세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죽어가는 한 명의 목숨을 빼앗아 인육으로 연명한 이들에 대해서 당신이 판사라면 어떠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위의 이야기는 10년 전 출간되어 우리나라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히 최대다수의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 챕터에 나오는 실화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바로 우리가 학창 시절 도덕, 윤리 시간에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용어인 공리주의를 다룬 일종의 윤리 철학서다. 공리주의하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너무나 익숙한 명제가 떠오른다. 이는 보통 행복을 양적으로 평가하고 이해한 '제러미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말이다. 개인과 소수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기에는 사실 부족함이 있는 벤담의 공리주의와는 달리 수정된 공리주의로서 질적 공리주의를 표방한 사람이 벤담의 제자이며 이 책 <공리주의>의 저자인 영국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이다.

공리주의는 utility(효용, 유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영국의 벤담이 주창한 공리주의는 개인의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사상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중요한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행복은 쾌락을 증진시키며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 공리주의는 쾌락을 계량할 수 있다고 주장한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밀의 질적 공리주의로 나뉜다. 양적 공리주의는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소수의 의견이나 권익이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 반면 수정된 공리주의로서 밀의 질적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행복에 대해서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밀은 행복을 나만의 행복으로 국한시키지 않았기에 나의 행복과 당신의 행복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고려했다. 그렇기에 밀에게 있어서 스승인 벤담이 주장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도덕 행위자 자신만의 행복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느낄 수 있는 최대행복이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다시 말해서 사회 전체의 행복인 일반 행복이 바로 모든 인간 행동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몇 해 전 현대지성에서 밀의 <자유론>이 출간되어 완독한 경험이 있다. 개인의 자유는 다른 이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어떠한 제약도 없이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영미권 최고의 고전을 접하며 마음속 깊이 지울 수 없는 인상이 각인되었었다.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밀의 또 다른 대표작 <공리주의>를 읽으며 다시금 밀의 시대를 읽는 혜안과 천재성을 엿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19세기 영국이라는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던 당시 시대상에 비춰볼 때 개개인의 동등한 행복보다는 산업화로 인해서 부를 획득한 소위 유한계급들만의 행복이 추구되었을 시대에 밀의 공리주의는 매우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다시 말해서 소수의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대한 추구를 말 그대로 최대다수가 최대의 행복을 동등하게 누리는 것만이 진정한 공리이며 고상한 도덕적 규범임을 설파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볼 때 밀이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급진적 성향의 선구자와 같은 인물이었을지도 짐작하게 된다.

밀은 행복과 만족을 구분했고 행복이 만족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속에는 바로 이러한 공리주의가 추구하는 행복과 만족의 상관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더불어 밀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쾌락이 육체적인 쾌락보다 더 우월하며 고상하다고 말했다. 나 같은 범인(凡人)들에게 있어서는 쾌락의 질적 차이를 통한 행복과 만족의 결과는 고작 금요일 심야에 안락한 소파에 반쯤 기대고 누워서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볼 것인가(육체적 쾌락) 아니면 내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쌓여 있는 책들을 완독해 갈 것인가(지적이고 도덕적인 쾌락)와 같은 하찮은 것들이다. 그렇기에 밀이 이 책에서 말하는 공리주의는 사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쉽사리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이 사회 속에서 지각과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의무를 가진다면 본서는 반드시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는 고전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제 서평의 서두에서 말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난파된 세 명의 남자가 한 명의 소년을 죽이고 그의 살과 피로 연명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을 논해 보도록 하자! 만약 당신이 판사라면 당신은 어떠한 판결을 내리겠는가? 배의 급사로 일한 소년은 고아이다. 그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은 없으며 그는 당시 바닷물을 마시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의 선원들은 모두 다 영국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이 굶어죽게 된다면 많은 가족들이 절망과 슬픔 속에 한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밀은 책에서 사회적 공리와 개인적 공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자유론>까지 집필했던 밀은 자유와 공리의 상관관계를 항상 염두에 둔 듯하다. 그는 허용될 수 있는 불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사회적 공리와 개인적 공리가 충돌할 때 개인이 어쩔 수 없이 희생될 수도 있는 여지가 있음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제한과 한계를 전제하며 전체적인 밀의 의도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행복을 지향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된 공리주의를 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일주일의 시간이었다. 논란도 많고 반론도 팽배했던 도덕 철학 사상의 알쏭달쏭함이 한 주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찌 되었든 한번 읽고 꽂아두기에는 나의 이해력이 부족함을 인정하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서가에 안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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