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개혁신앙이다
라은성 지음 / 페텔(PTL)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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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다. 치우침이 없는 삶! 균형을 잃었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개신교 신자로서 그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매우 훌륭한 책을 만난다. <이것이 개혁신앙이다>는 총신대 역사신학 교수였고 현재는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새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라은성' 목사님의 저작이다. 탁월한 개혁신학자로 알려진 라은성 목사님의 말씀은 성경을 기반으로 역사신학자답게 기독교 역사와 건강한 개혁신학 교리를 넘나들며 바른 신학과 신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개혁신앙인은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자입니다. p13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개혁신앙은 치우침 없이 올곧다. 본서는 바로 이러한 신앙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책이 가지는 대표적 특징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히 개신교 개혁신학의 교리만을 가르치고자 쓴 게 아니다. 흔한 교리서가 아닌 교리와 신앙적 삶의 관계를 치밀하게 연관시킨다. 특별히 개혁신학의 교리가 신앙인의 삶과 맺는 실제적인 관계를 중시한다. 정확하고 바른 개혁신학을 배웠다면 거기에 걸맞은 개혁신앙인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서는 매우 실천적이다. 이론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책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저작이 가지는 가치는 실로 높다.

 

총 17 장에서 개혁신학 안에 포함된 다양한 신학과 신앙의 요소들을 골고루 다룬다. 그래서 내용이 매우 알차다. 교리적인 내용들은 독자층이 목회자나 신학생들로 한정적인 여타의 교리 책들이 뿜어내는 그 사변적이고 난해한 내용이 아니다. 철저하게 눈높이를 일반 신자들에게 맞췄다. 그렇다고 저작의 지적 퀄리티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쓰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능력은 저자가 가진 가장 큰 은사가 아닌가 싶다. 진리의 진액이 한 권에 응축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서 한 권이면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 교리를 삶과 연관시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책의 구석구석에는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주옥같은 내용들이 알알이 맺혀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을 발견했다. 바로 개혁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를 바로 세워주는 1장의 내용이다. 특별히 신념과 신앙을 구분해 주는 가르침은 저자의 지적 명성에 걸맞게 역시나 탁월하다. 순금과 도금에 비유한 신앙과 신념의 정의, 관계는 피상성에 머문 신자의 삶을 개혁하는 데 있어서 시초가 된다.

 

신념과 신앙은 고백으로 드러날 때까지, 삶으로 보일 때까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중략) 신앙은 항상 '순금'과 같습니다. 신념은 '도금된 납덩어리'와 같습니다. 도금된 납덩어리는 복음적 삶이나 메시지와 같습니다. p30

 

순금으로 알고 신앙생활했다. 은혜로운 복음적 메시지에 도취되어 잘 믿고 잘 걸어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순금이 아닌 도금된 삶이었다... 조국 교회 안에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도금과 같은 신앙의 현주소다. 저자의 날선 지적이다. 신념과 신앙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바른 교리에 기반을 두고 성경의 의미를 순전하게 해석하며 삶에 적용시키는 개혁신앙으로의 회복이 요구된다. 신앙 없는 신학은 교조주의에 빠지고 신학 없는 신앙은 열정주의에 빠질 위험이 상존한다.

한때 목적이 삶을 이끌고, 긍정이 힘이 된다는 요상한 책들이 인기였다. 성도들의 입맛에 맞게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복음과 저작들이 판을 친다.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다. 누군가 개혁신학과 신앙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해 줄 이런 책을 써주길 바랐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저자의 차갑고 날카로운 지성과 조국 교회 신자들의 삶을 염려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회자의 심성이 균형을 이루며 이처럼 아름답게 채색돼 있을 줄 미처 몰랐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보석 같은 수작이다. 나 혼자 보기 아까운 책!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 크게 지탄받고 있는 조국 교회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무너진 모습들을 바로잡고 비뚤어진 신앙의 행태를 개혁하며 올바른 방향을 되찾는 데 있어 나침반과 같다. 초대교회 신앙의 야성을 잃어버린 채 제도화되어 시스템으로 길들여진 교회. 네 믿음을 보이라! 신념이 아닌 신앙으로 너희들의 삶을 증명하라! 이 불신의 시대가 지금의 조국 교회에 외치는 아우성이다. 몇 날 며칠 밑줄을 그으며 나 자신의 얕은 신앙과 형편없는 삶을 적나라하게 돌아보도록 만든 책이다. 한없이 부끄러웠다.

 

Back to basic!

 

신념이 아닌 신앙이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이빨과 검투사들의 칼날에 생명을 내놓을 수 있었으며 자신의 눈앞에서 어린 자녀들이 굶주린 맹견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가는 처참함을 지켜볼 수 있었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결국 다시 원점이다. 이 책이 말하는 요지다. 성경과 바른 신학,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삶에의 적용과 실천, 기본과 균형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개혁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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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길라의 일기 - 브리스길라의 눈으로 본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두 번째 이야기 이야기 사도행전 시리즈
진 에드워즈 지음, 전의우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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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가 죽었고 열두 제자 중 사도 요한만 남았다. 바울의 여덟 제자 중 살아남은 사람은 가이오 뿐이다." '1세기의 일기들' 시리즈 네 번째 책인 <브리스길라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디모데로부터 펜의 바통을 이어 받은 '브리스길라'는 자신의 관점으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후반부와 예루살렘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바울이 드디어 제국의 심장인 로마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서술한다.

네 번째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에베소의 소요로 인해 바울은 3년간의 정든 에베소를 떠나 빌립보 이동한다. 그곳에서 바울은 고린도를 향한 두 번째 편지를 작성한다. 그리고 그의 신실한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드디어 로마로 들어간다. 글라우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이 아직 유효했기에 유대인인 아굴라는 로마로 들어가다가 적발되면 목숨이 위험했다. 하지만 그들은 로마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복음에의 열정 하나를 갖고 로마로 들어갔다.

이즈음 바울은 연합과 용서, 치유로 화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는 잊을 수 없는 환희의 경험을 한다. 바울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만들었던 고린도 교회가 다시금 교회로서의 바른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기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보다 먼저 로마로 들어가 교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목숨을 내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로마 교회를 위해 역사적인 편지를 집필한다.

 

 

바울 신학의 정수이며 쓰인 문체가 가장 아름답고 유려하다 평가받는 로마서가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 로마서 한 권에 응축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만큼 로마서는 바울이 자신의 진액을 뽑아 쓴 복음의 결정체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며 로마서를 기록했다. 로마서를 쓰는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제국의 심장을 향한 바울의 갈망은 몇 년 후 자신이 그곳에 가게 되는 필연적인 운명으로 성취되었다. 물론 자유인이 아닌 죄수의 신분으로...

고린도까지 쫓아온 단검파를 따돌린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의 눈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3부는 사건이 매우 빠르게 전개된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결국 미결수 신분으로 네로 황제의 법정에 서기 위해 로마로 가는 배를 탄다.

이야기는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의사인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바울의 로마행에 동행한다. 나머지 일곱 제자들은 바울의 지시에 따라 이방 교회 각지로 흩어진다. 마가 요한이 마가복음을 기록했고, 사도 마태가 마태 복음을 기록했다. 누가는 이방인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누가 복음을 기록했으며 이제 로마로 출발하기 전 자신이 사도행전을 기록할 것임을 시사한다.

브리스길라의 에필로그로 책이 끝난다. 서두에서와 같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요한만이 살아남았고 모두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바울의 여덟 제자 중 일곱 명이 죽임 당했고, 이제 살아 있는 사람은 가이오 뿐이다. 브리스길라의 남편 아굴라도 네로의 박해가 시작된 후 죽임 당했고, 마가 요한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참혹하게 죽었다. 저자는 사도행전 28장이 뭔가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끝난 듯한 느낌이 누가 또한 갑작스럽게 체포되어 순교했음을 암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지난 한 주 동안 1세기의 일기들 시리즈를 연속으로 몰아 읽었다. 시리즈 소설의 묘미는 끊어 읽으면 안 된다는 나만의 독서 철학 때문이다. 신자로서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감동과 감사가 성경적 사실에 픽션이 가미된 몇 권의 책들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 사무친다. 너무나 쉽게 펴 볼 수 있는 성경과 지금은 팬데믹으로 인해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1세기 신자들과는 비교할 수없이 편한 예배와 신앙생활 속에서 나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본다. 갖은 모욕과 핍박, 심지어는 목숨을 내걸어야지만 믿을 수 있었던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21세기 신자들의 편안하고 안락한 신앙의 모습과 비교되어 낯이 뜨겁다.

이제 독자는 로마로 향한 바울의 마지막 사역과 최후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마지막 일기의 화자는 여덟 제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이오다. <가이오의 일기>는 아직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되지 않았다. 마지막 책을 기다리며 이 감동이 빨리 식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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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의 일기 - 디모데의 눈으로 본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이야기 이야기 사도행전 시리즈
진 에드워즈 지음, 박상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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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의 일기들' 시리즈 세 번째 책은 "내 친구 디도가 크레타 섬에서 로마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라는 소식으로 시작된다. 탁월한 이야기꾼 '진 에드워즈'는 디도에게 펜의 바통을 이어받은 디모데의 시각으로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의 전반부를 그린다. 전편들과는 달리 <디모데의 일기>부터는 바울과 함께 직접 전도여행의 현장 안에 있었던 인물이 진짜 자신의 일기를 기록하듯 써 내려간다. 아!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픽션의 요소를 가미한 기독교 소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1, 2차 때와는 성격이 다르다. 바울은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바울로 하여금 새로운 사역의 비전을 실현할 때가 온 것을 의미했다. 자신이 죽고 난 이후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 세계에 편만이 퍼져나가도록 하는 일...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도를 이어갈 자신의 제자를 훈련시키는 일이다.

치밀한 계획 속에서 바울은 자신이 1, 2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운 이방 교회들에서 온 소명 받은 여섯 명의 젊은이들을 모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소아시아 서쪽의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약 3년의 시간 동안 함께 먹고 자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시키는 사역을 시작한다. 이들은 루스드라의 디모데, 안디옥의 디도, 더베의 가이오, 데살로니가의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베뢰아의 소바더다. 이후 에베소의 두기고와 드라비모, 골로새의 에바브라 등이 합류한다.

성경을 읽다가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이름의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서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며 형제들과 함께 웃고 울고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는 앳된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정말 그러했을까는 물론 의문이지만 작가의 문학적, 영적 상상력을 통해 본 이들의 모습은 충분히 그럴만하겠다는 개연성을 갖는다. 진 에드워즈의 은사가 이렇다. 자칫 건조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성경의 진리와 사실을 변개하거나 재미를 위해 짜 맞추지 않으면서도 성경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탁월하다!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있어.(중략) 누군가를 정죄하는 일은 없어야 해. 자네들에게는 누군가를 나무랄 이유도 없고 누군가에게 화를 낼 이유도 없네.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상황이 아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들을 꾸짖지 말게. 교회를 신부로 대우하게.(중략) 자만하지 말게. 늘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게. 경건한 체하지 말고 영적인 체하지 말게. p103~105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여섯 명의 젊은이들을 앉혀놓고 자신의 삶을 통해 가르치는 이 장면은 책의 백미다. 독자로서 2천 년 전 에베소 두란노 서원의 한구석에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 같다. 불붙는 듯한 열정은 있지만 교회의 추천을 받지 못한 청년들은 바울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여섯 명의 청년들은 내적 소명과 자신들의 교회로부터의 추천이라는 외적 소명을 받고 선택된 자들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였던 사도 바울을 멘토로 둘 수 있었던 실로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듯 향후 이들 거의 대부분이 순교한다. 어느새 독자는 바울과 제자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관찰자의 관점을 넘어 어느 순간 제7의 제자로서 분하여 바울의 발치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또한 본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사역 중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을 다룬다. 바로 고린도 교회의 분열이다. 나는 아볼로파, 베드로파, 바울파, 그리스도파라고 외치며 교회 내에서 파가 갈라진다. 덧붙여 교회 내 성적으로 부도덕한 일까지 겹친다. 교회의 분열과 타락이라는 고통 속에서 바울은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쓴다. 교회를 향한 바울의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묻어난다.

더불어 바울은 사역자로서 자신의 재정관을 밝힌다. 바울은 일종의 자비량 사역인 텐트 메이킹과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공급받는 전임 사역 모두를 인정했다. 그러나 바울은 전임 사역자도 아니고 파트 타임 사역자도 아니다. 저자는 책에서 바울을 가리켜 '자투리 사역자'라고 말한다. 바울은 천막 기술자였다. 천막을 고치고 만들어서 자신의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했는데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열매는 전임이나 파트 사역자들의 것과는 비교할 수없이 컸다.

또한 책의 깨알재미는 에베소를 찾은 바울과 빌레몬의 만남이다. 골로새의 양모 상인 빌레몬은 16세 어린 노예 '오네시모'를 바울의 모임에 데려왔다. 겁에 질린 게르만족 야만인 노예 오네시모와 바울의 첫 만남이다. 이후 오네시모는 바울과 다시 한번 만난다. 개인적으로 내 바이블네임의 주인공 오네시모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픽션이지만 작가가 극적 장치들을 흥미롭게 배치해 놓는 것을 보면 역시 진 에드워즈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은 브리스길라의 에필로그로 마친다. 디모데는 네로황제의 살해 위협을 피해 은신해있다. 에베소에는 소요가 일어났고, 디도는 행방불명 되었다. 바울의 대적자인 거짓 율법교사 블라스티니우스가 고린도에 도착했다. 유대 교회와 이방 교회의 분열 조짐이 보인다. 바울의 요청으로 로마로 들어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생명의 위협 앞에 서 있다. <디모데의 일기>는 이렇게 제4권 <브리스길라의 일기>를 예고하며 끝난다.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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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의 일기 - 디도의 눈으로 본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이야기 이야기 사도행전 시리즈
진 에드워즈 지음, 최종훈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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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의 일기들 시리즈의 두 번째 화자는 바울의 동역자 '디도'다. 실라에게 펜의 바통을 이어받은 디도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기록을 일기로 남긴다. 전편 <실라의 일기>에서 보았듯 1차 전도여행을 통해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 지방 네 개의 이방인 교회를 세웠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디도의 일기>는 루스드라에서 부터 출발하는 2차 전도여행을 다룬다. 이동거리만 무려 5000Km. 교통과 통신 수단이 전무했던 1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거의 살인적인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떠나는 두 번째 여행의 동반자는 전편의 일기를 기록한 실라와 루스드라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젊은이 디모데다.

2차 전도여행은 이동거리와 거점이 되는 이방 교회 개척의 과정과 수만 봐도 1차 때와는 훨씬 규모가 크다. 주요한 이야기의 시작은 소아시아의 서쪽 드로아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고심하던 바울에게 보인 마케도니아 환상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와서 우릴 도와주시오!" 복음의 서진을 알리는 역사적 장면이다.

채찍질을 당해 초주검이 된 상태로 던져진 빌립보 감옥에서의 고난 중 찬양의 장면은 은혜가 깊다. 아덴(아테네)에서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인 에피쿠로스, 스토아 철학자들과의 한판 대결은 바울의 탁월하고 예리한 지성의 숨겨진 면모를 보여준다. 마치 스위스 로잔에서 존 칼빈이 펼친 카톨릭 신학자들과의 진검승부의 예고편을 보는 것만 같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외쳤고 교회를 세웠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순종의 삶은 이어졌다. 부인할 수 없는 복음의 신비가 바울, 그의 몸에 스티그마로 새겨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의 백미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추방 당해 데살로니가로 가는 에그나티아 도상에서의 이야기다.

 

인간이 마주하는 최대의 위기, 그리고 됨됨이 자체를 점검받는 최고의 시험은 사역이 위태로워지는 순간 찾아온다네. 사역을 지키고 보존하려고 마치 야수처럼 사납게 싸우며 하나님을 찾게 되지. 그러다보면 십자가라든지 버림으로써 얻는 원리라든지, 또 실패에 담긴 하나님의 뜻 따위와 관련된 더없이 기초적인 이해마저 놓치기 십상이지. 힘에는 힘이 없네. 승리는 승리가 아니야. 권력은 권력이 아니고. 힘이니, 승리니, 권력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연약함 가운데 들어 있네. 기꺼이 실패하고자 할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지. 제 손에 든 걸 완전히 포기할 줄 알 때 힘이 나오는 법이야. 모두 내려놓고 모두 잃어버리고자 할 때 말일세. p120

 

본서는 전편에 이어 성경에는 실명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탄생된 바울의 최대 빌런, 거짓 율법교사 '블라스티니우스 드라크라크마'가 칼잡이들을 고용해서 바울을 죽이기로 결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뒤를 쫓으며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율법으로 훼파 시키려는 대적의 위협 앞에서 바울은 극심한 영적, 심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삶에 블라스티니우스라는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을 때 삶과 사역을 바라보는 그의 전 이해의 폭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다.

 

바울은 살아가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바람을 하나님 손에 맡겼다. 성공하려는 꿈을 포기한 것이다. "실패자로 살다가 실패자로 죽겠어!"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음으로써 장차 마주하게 될 모든 일들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p127

 

바울의 자기 부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리스도 이후로 가장 천재적인 인물이었던 사도 바울을 깨뜨리고 낮추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이렇게 드러났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의 어두운 지성의 장막을 걷어냈던 하나님의 빛이 에그나티아 도상에서는 그의 영혼에 가리어진 자기 의의 베일을 걷어냈다. 철저하게 실패자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역설의 외침 속에서 드디어 복음의 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복음이 율법을 견뎌 내지 못한다면 그건 복음이 아니야" 자신이 개척한 모든 교회의 순도를 가늠하는 한마디다. 블라스티니우스라는 늑대탈을 쓴 거짓 율법교사의 마수에 어린 양과 같은 교회의 운명이 던져졌다. <디도의 일기>는 디모데의 에필로그로 마친다. "바울과 바나바의 죽음 이후 실라까지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이 일기를 쓴 디도마저 그레데 섬에서 체포되어 순교했다. 그리고 그 펜의 바통은 나 디모데에게 넘겨졌다"라는 말로 다음 편 <디모데의 일기>를 예고하며 끝난다. 읽을수록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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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의 일기 - 이야기 갈라디아서 이야기 사도행전 시리즈
진 에드워즈 지음, 전의우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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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 이야기>로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진 에드워즈'의 걸작 중 하나다. 원제는 First Century Diaries. '1세기의 일기들' 시리즈는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이후 17년간의 역사를 다룬 프리퀄 같은 개념의 <이야기 사도행전>을 포함하면 총 여섯 권이지만 바울이 행한 세 번의 전도여행부터 이후 그의 순교까지 다루는 다섯 권의 책이 시리즈의 본편이다.

 

현재 <이야기 사도행전>은 미션월드 라이브러리에서 출간되었고, 1세기의 일기 시리즈는 <실라의 일기>, <디도의 일기>, <디모데의 일기>, <브리스길라의 일기>가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되었다. 마지막 <가이오의 일기>는 역시 미션월드 라이브러리에서 <가이우스 다이어리>라는 책명으로 출간되었지만 생명의 말씀사에서 시리즈의 연속성을 살려서 <가이오의 일기>로 출간 예정이다.

이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 진 에드워즈는 사도행전을 바탕으로 1세기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피어난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를 정확한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들을 고증하며 재연했다.

 

바나바가 죽었다. 바울도 몇 해전 칼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로 시작되는 <실라의 일기>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다룬다. '이야기 갈라디아서'라는 개정 출간 전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디아 지방을 여행하며 네 곳에 이방인 교회를 개척하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책의 화자는 바울의 동역자 실라다. 실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바울과 바나바의 발자취를 좇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이 넘어간다. 흥미로운 선교의 역사에 더해 깊은 은혜가 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았으며 세 번 파선해서 하루를 꼬박 차가운 지중해 속에 있어야 했다.

그뿐인가? 39번의 채찍질을 다섯 번이나 당했고, 강에 빠져 죽을 뻔했고, 강도, 동족과 이방인들의 위협, 그리고 거짓 교사들의 위협과 방해라는 모든 고난을 감당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구령의 열정이 마음을 뜨겁게 한다. 바울의 사도성과 회심을 의심하는 할례파 유대인들 앞에서 바울이 채찍질 당한 자신의 흉측한 등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바울과 바나바가 세운 이방인 교회에 대해 유대인들로 구성된 예루살렘 교회는 율법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갈라디아 지방의 이방인 교회에 가만히 흘러들어간 거짓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픽션화했다는 점이다. 지독한 선민의식에서 발현된 율법주의의 망령은 성경에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작가가 가상의 인물로 설정한 블라스티니우스 드라크라크마라는 율법 교사를 통해 극대화된다. 할례파 유대인인 그는 바울의 대적자로 등장하며 바울이 전하는 온전한 복음에 반하여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 할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빌런의 역할을 맡는다. 바울을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바울의 '이단적' 교회들을 율법으로 재회심시키든지 아니면 무너뜨리겠다는 피의 맹세를 한 그의 모습이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블라스티니우스는 1차 전도여행을 통해 개척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교회에 들어가서 율법으로 교회를 분열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 의해 탄생된 성경이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의 이방 교회들에 보낸 서신 '갈라디아서'다. 이야기를 통해 배경과 상황을 전달하기에 성경 읽기를 어려워하는 신자들에게는 전체적인 그림이 한눈에 정리되는 효과가 있다.

 

책의 백미는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그려진 바울의 베드로 책망 사건이다. 시리아 안디옥 교회를 방문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온 할례파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이방인들과 겸상하지 않는다. 또한 바나바조차도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모습에 분노한 바울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도 베드로를 강하게 질책한다. "너희도 지키지 못할 율법을 왜 이방인들에게는 지키라고 강요하느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한 바울은 일부러 꾀죄죄한 이방인들의 식탁에 앉아 큰소리로 외친다! "여기 돼지고기 좀 주시겠어요!"

 

가장 통쾌했던 장면이다. 복음이 가져다주는 자유가 이렇다. 모든 묶인 것을 자유케하는 복음의 능력을 바울은 알았다. 저자는 이러한 복음의 정수를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학적이며 영적인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여 흥미롭게 기술한다.

 

<세 왕 이야기>라는 작은 책을 통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기에 진 에드워즈의 작품은 만날 때마다 기대가 있다.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 작가가 가진 탁월한 레토릭이 사실과 픽션이라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안정감 있게 끌고 나가는 저력의 원천이다.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진 에드워즈의 1세기의 일기들 시리즈,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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