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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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두번 째 책은 살인 사건의 배경이 웨일스였던 첫 권과 달리 주요 무대를 캐드펠 수사가 거주하는 잉글랜드의 슈루즈베리로 설정했다.


1138년 잉글랜드의 왕권을 둘러싸고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일어났다. 서로 간 왕위의 정당성을 논하며 자신이 잉글랜드의 적통 왕위를 잇는 자임을 내세우며 죽고 죽이는 혈전이 벌어진 것이다.


평화로운 슈루즈베리 수도원에도 전운이 감돌기 시작할 즈음 여전히 허브 밭을 가꾸며 신 앞에서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수도 생활에 전념하고 있던 캐드펠 수사에게 낯선 소년 한 명이 맡겨진다.


슈루즈베리 성에서 온 이 낯선 소년에게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이 풍긴다. 자신의 몸보다 지나치게 큰 통자루같은 옷을 걸친 소년은 과연 누구일까?



소년이 소녀로 밝혀진 것은 탁월한 추리력과 직관의 소유자 캐드펠 수사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의해서다. 캐드펠은 소년으로 분한 아름다운 소녀 고디스가 소년으로 분하여 수도원에 오게 된 이유를 듣게 되고 어떻게든 고디스를 안전하게 지켜주리라 맹세한다.


스티븐 왕과 황후 모드 간의 왕위를 둘러싼 내전 속에서 고디스의 아버지 피챌런은 모드 황후를 지지하는 편에 선 귀족이었다. 전세가 스티븐 왕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스티븐 왕의 군대가 슈루즈베리를 포위한 채 성의 함락이 초 읽기에 들어갔음을 직감한 고디스의 아버지가 딸을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맡긴 것이다.


드디어 스티븐 왕의 군대가 슈루즈베리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성은 소규모의 수비대를 제압하며 큰 어려움 없이 함락되었다. 인류의 전쟁이 그렇듯 성의 함락은 곧 성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폭력의 시작이며 재앙의 시초를 의미한다.


그러나 입성한 스티븐 왕은 자신의 군대에게 약탈 금지 명령을 내리며 슈루즈베리에 평화를 선물한다. 하지만 끝까지 무기를 버리지 않은 채 대항하다가 생포된 포로 94명 전원을 처형토록 한다.


94명의 생목숨을 성벽에 매다는 교수의 방식으로 처형하는 피의 살육이 시작되었다. 왕의 군대가 주저하는 일을 왕의 용병들이 말끔하게 해치우기 시작한다. 처절하게 절규하는 이들을 결박하여 목에 올가미를 건 채로 교수하는 집단 학살이 이루어진 후 이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남았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모드 황후 편에 섰던 슈루즈베리 수비대 94명의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 과업이 주인공 캐드펠 수사에게 내려졌다. 십자군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퇴역 군인 출신이기에 캐드펠이 시체 수습에 적임자로 뽑힌 것이다.


자원하는 다른 동료 수사들을 이끌고 시신이 쌓인 도랑으로 내려가 역한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캐드펠 수사는 특이한 장면을 만나게 된다. 목이 꺾이고 뼈가 으스러진 시신의 수가 이상하다. 분명 94명의 사람들이 처형 당했는데 시체의 수는 95구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죽임 당한 이상한 시신 한 구를 발견하며 캐드펠 수사의 촉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과연 95번째 시체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그 시체가 여기에 함께 버려지게 되었을까? 캐드펠 수사의 추리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끔찍한 내전의 희생이 된 이들의 아픔 속에서 또 다른 범죄를 마주하게 된 캐드펠 수사가 기지를 발휘하여 95번째 희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된다.


역시나 자극적이며 들뜨지 않고, 차분하며 조용하게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캐드펠 수사의 이야기는 정통 추리 소설이 가진 특성을 그대로 간직했다. 추리문학의 흥미 뿐 아니라 캐드펠 수사가 내뱉는 대화와 문장 속에서는 인류를 향한 인생의 깊은 조언이 가득하다.


처음 만난 캐드펠 수사에게 자신은 스티븐 왕보다는 모드 황후를 지지한다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행하는 고디스에게 "생각을 머릿 속에만 담아두면 안전하다"라는 조언은 다른 이의 생각을 퍼 날라서 밥을 먹고 살아가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손쉽게 발설하는 일의 위험성을 재고케하는 의미심장한 대사다.


또한 증오가 없어도 살인할 수 있다. 낯 동안에 구걸하여 받은 거지의 돈 마저도 빼앗기 위해서 죽이는 세상이라는 표현 등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 시대를 정확하게 대변하는 놀라운 통찰이다. 작가인 엘리스 피터스는 추리문학 안에 시대를 조망하는 놀라운 시각을 녹여냈다.


캐드펠 수사와 함께 95번째의 시체를 찾아가는 시간 속에서 정의와 부조리의 세상을 마음껏 헤쳐 모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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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현대지성 클래식 59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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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명성을 높인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 사회의 시대적 자화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본서만큼 20세기 초 미국의 시대상을 정확히 직시한 작품도 드물다. 그렇기에 본서가 갖는 문학적 의미 또한 크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가난한 청년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장교로 복무하는 중 아름다운 상류층 여성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가난한 청년 개츠비는 그녀를 붙잡을 재력이 없다. 개츠비를 떠난 데이지는 돈 많은 남성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이후 개츠비는 다양한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거머쥔다. 이제 자신이 쌓은 부를 통해 옛사랑을 되찾으려는 그의 치밀하고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는데...


작가는 1인칭 작중 화자 '닉 캐러웨이'의 시선을 통해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와 성격을 밀도 있게 조명한다. 더불어 사건의 진행과 전환 과정 중 닉 스스로가 스토리 속에 직접 관여하여 전후좌우의 정황을 질서 있게 바로잡는다. 


주인공 개츠비는 환상과 이상을 담지한 인물이다. 가난을 극복하고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겠다는 그의 신념은 비현실적이리만치 환상적이며 동시에 이상적이다. 흐릿한 안개와 같은 자신의 삶 속에 또렷한 한줄기 빛이 되어 준 것은 오직 그의 첫사랑 데이지다. 


반면 상류층 여성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 톰 뷰캐넌은 전형적 속물의 아이콘이다. 데이지에게 있어 사랑보다는 자신의 안락함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돈만이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다. 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정력적인 남자 톰은 탐욕과 정욕으로 똘똘 뭉친 전형적인 시대의 사생아다.


작가는 전후 미국의 쇠락한 사회상을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예리하게 묘사했다. 돈과 쾌락을 숭앙하는 정신의 쇠퇴는 아메리칸드림의 변질로 나타났다.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과정은 악해도 된다는 가치관의 오염이 작중 인물들의 삶에 진하게 배어있다.


책의 제목과 같이 개츠비는 과연 위대할까? 책을 덮으며 나름의 독자 포인트를 발견한다. 첫째는 1차 세계 대전 후 시대상이 보여주는 시대적 적실성이다.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인간 이성의 무한 신뢰가 1차 대전이라는 참혹한 역사적 사건 앞에 여실히 무너졌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모든 악을 목도한 직후 세상은 추구해야 할 이상의 푯대를 상실했다. 


표류하는 인간 정신과 참된 인간성의 부재는 쾌락과 탐닉으로 표출된다. 피츠제럴드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흔들리는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을 고발한다.


둘째는 '위대한'이 가진 반어적이며 역설적 의미 속 진의다. 사랑을 되찾기 위해 개츠비가 부를 축적하는데 동원한 방법은 금주법이 시행되던 당시 미국 사회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밀주 사업과 도박이다. 자신의 환상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벌인 행각은 위대함과는 거리가 먼 범죄 행위다. 


과정이 어떻든지 간에 결과만 아름다우면 위대하고 좋은 것인가? Yes!라고 서슴없이 대답하는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대이기에 속이 쓰리다.


셋째는 과거에 대한 집착에 기인한 인간 주체성의 상실이다. 이미 결혼한 첫사랑을 되찾겠다는 개츠비의 환상은 일종의 망상이며 집착이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전락한다. 그것이 돈이든 명성이든 권력이든 사랑이든지 간에...


삶의 주체성은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할 때 비로소 주어진다. 삶의 결정권이 나에게 있고, 선택과 결단의 주체가 나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개츠비의 삶을 통해 본다. 이 부분 또한 주체성을 상실한 채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부재한 영역이다.


개츠비는 잃어버린 자아와 표류하는 인간 정신으로 대표되는 현대인들의 표상이다. 과거의 영화를 회상하며 환상 속에 갇힌 채 자신의 자아를 건강하게 표출하지 못하는 아픈 인류를 향한 지적일 수 있다. 또한 변질된 아메리칸드림의 병적 단면을 다양한 캐릭터의 삶을 통해 여실히 드러낸다.


피츠제럴드는 세속에 물든 속물적 존재인 데이지와 톰, 그 밖의 존재들에 비해 순수한(?) 의도를 갖고 첫사랑을 찾아 돌아온 개츠비의 삶이 상대적으로 순박하기에 개츠비의 이름 앞에 '위대한'의 형용사를 붙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등장 캐릭터들의 삶을 볼 때 도긴개긴이다.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한 권의 책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간 내면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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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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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세대를 뛰어넘어 가장 흥미로운 문학 장르 중 하나다. 꼬인 실타래와 같은 사건의 미궁 속 단서를 찾아내 진범을 지목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은 남녀노소 모든 독자를 환호케하는 추리물의 백미다.

그런데 여기에 역사가 더해진다면 어떨까? 그것도 배경이 중세 영국이라면? 설정 자체에 추리문학 마니아를 열광케할 요소가 충분하다.

중세 역사 미스터리물의 고전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러한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이번에 북하우스에서 야심 차게 복간한 국내 유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다섯 권이 새로운 옷을 입고 독자들을 만났다.

여류 작가 '엘리스 피터스'에게 '움베르트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애거사 크리스티'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놀랄만한 찬사를 받는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총 21권으로 이루어졌고 그 창작 기간만 무려 18년이라니 추리문학의 전설적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캐드펠'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이력을 갖고 있는 老 수도사로서 잉글랜드 슈루즈베리의 한적한 수도원에서 허브를 비롯한 각종 식물을 키우며 남은 생애를 조용히 수도 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주인공 캐드펠은 범상치 않은 인물로서 각 권에서 펼쳐지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의 해결을 위한 키맨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남들은 볼 수 없는 예리한 관찰력과 비범한 직관력을 가진 캐드펠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을 볼 때 독자는 캐드펠이 평범한 수사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1권 :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펴냄>은 본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여는 만큼 흥미진진하다.

배경은 12세기 중세 잉글랜드의 슈루즈베리 수도원. 수도원의 수사 중 하나가 발작 증세 중 웨일스 귀더린에서 순교한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모시고 올 것에 대한 환상을 본다.

수도원의 로버트 부수도원장을 대표로 수행 수도사들로 이루어진 웨일스 귀더린 성녀 위니프리드 유골을 모셔오기 위한 순례단이 구성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웨일스어와 잉글랜드어가 유창한 우리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도 합류한다.

왕자와 주교의 허락을 등에 업고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귀더린에 도착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손쉽게 성녀의 유골을 모셔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일은 그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

귀더린의 지주 '리샤르트'의 명확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통한 반대가 지역 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성녀의 유골을 순순히 내어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며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만 들어가는데...



책을 통해 독자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작가가 단순히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형사물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 본성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저작의 전면에 흐른다.

귀더린의 성녀 유골을 웨일스에서 잉글랜드로 가져오려고 하는 이유를 이해할 때 작가가 인간 본성에 대해 무언가를 고발하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살인 사건의 용의선상에 수도사로 이루어진 순례단이 제외되는 듯한 느낌을 성직과 상관없는 것으로 갈무리하는 캐드펠 수사의 대사는 인간 본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본작의 명성에 무지했다. 작가의 이름도 생소했고, 작품의 이름도 몰랐다. 움베르트 에코의 추천사 하나에 마음이 동했고, 본작을 꼭 읽어보리라 마음 먹고 만났다. 책을 읽으며 왜 에코가 극찬했는가를 눈으로 확인하며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킬링타임 용의 가벼운 추리 소설이 아니다. 단순한 역사와 추리 장르의 결합을 뛰어 넘어 종교와 철학이 녹아 있는 일종의 인문 역사 미스터리 고전이라고 평가하면 극찬일까?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매력적이다. 주요 플롯을 전개함에 있어 독자를 이해시키는 상세한 배경을 친절하게 기술한다.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동인이 이미 그 전에 짙은 안개와 같이 깔리기 시작할 때 살짝 소름이 돋는다.

전 세계 22개국에서 번역 출간될 정도로 본작이 갖는 문학적 의미가 크다. 역사추리소설이라는 더없이 흥미로운 장르는 캐주얼한 팝콘과 같은 추리물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정서를 환기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책장을 넘길 수록 작품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독서욕을 자극하는 충분한 마력을 지닌 <캐드펠 수사 시리즈> 2권을 기대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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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8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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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정국, 굵직하고 민감한 주제로 인해 여야가 대치한 상태에서 서로의 가슴에 예리한 칼날을 겨눈다. 상대방을 죽여야지만 내가 살 수 있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흡사 진흙탕 참호전을 방불케한다.


언제나 정치는 죽고 죽임의 역사였기에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살육의 대상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이전투구 정치의 여파가 흙을 먹고 살아가는 가여운 민초들에게 미치기에 분노한다.


암담한 현실 정치무대의 풍경 속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보석 같은 고전 한 권을 만났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며 인류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집필한 정치에 관한 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서를 통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치의 의미와 개념, 원리를 훑어내는 기염을 토한다.



본서는 총 8권으로 나뉘어 있다. 각 권은 정치체제에 관한 개관, 다양한 정치체제의 종류, 정치체제의 변혁, 가장 좋은 정치체제란 무엇인가와 같은 보편적 주제를 상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다른 저작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윤리를 논함에 있어 선과 악의 관념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당위의 관점이 아닌 좋은 것과 즐거운 것은 본성에 부합하기에 행복한 것이며 윤리적이다. 여기에 기반할 때 참된 윤리의 기초는 사회 구성원의 안정과 평안, 즐거움이며 이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좋음의 가치다.


이 좋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무대와 공간이 바로 국가다. 최고의 공동체는 국가이며 국가는 바른 정치체제 아래에서 올바로 훈련된 자들에 의해 다스려질 때 참된 윤리를 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 3권에서 시민의 정의를 다룬다. 국가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집합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가 시민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 말하는 시민은 거류민이나 노예를 제외한 재판과 공직에 참여하는 사람들만을 가리킨다. 또한 기술자와 일용노동자도 시민에 포함되지 않으며 미성년자 또한 시민이 아니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진 시민 범주의 한계를 어렴풋이 느끼는 대목이다.



이어서 국가의 최고 권력이 누구에게 속했느냐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과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는 훌륭한 삶임을 천명한다. 공동체는 다스림 받는 사람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정치체제를 정의의 관점으로 비출 때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 공동체는 정의롭다. 반면 다스리는 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정치체제는 정의롭지 못하며 변질된 것이다. 바른 정치체제는 다스림 받는 절대 다수가 행복함을 지향할 때 원래의 존재 목적을 이룬다.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비난과 암투 속 그 어디에도 다스림 받는 이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한 몸부림은 없다.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며 그 안에서 떨어지는 탐욕의 부스러기를 받아 먹기 위해 미친 듯이 달음박질하는 자들이 현실 정치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에 대다수 국민은 불행하다.


더불어 눈여겨 볼 점은 다수의 대중이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 개념을 오롯이 담지 했다.


사회가 이루어지고 국가 공동체와 함께 탄생한 권력은 필요악이다. 시민들은 안전과 권리를 보호받기에 국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국가가 어떠한 정치체제의 모습을 지향하며 누구에 의해 어떤 가치관으로 통치되느냐의 중대한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은 통치와 피통치의 역학 관계를 지금껏 출현한 다양한 정치체제의 모습 속에서 살핀 탁월한 고전이다. 그의 스승 플라톤이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식 정의를 다루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본질을 국가 공동체를 이루는 시민들과의 관계에서 다루는 세심함을 놓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국가 공동체의 정치는 언제나 공공선의 실현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눈 먼이들이 권좌에 앉기에 작금의 현실 정치는 부조리하고, 그렇기에 슬프다.


<플라톤 국가>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정의를 일별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통해 정의로운 정치체제를 조망해 보는 것도 좋다. 고전이지만 예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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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브렉시트까지, 하룻밤에 읽는 교양 세계사 인생 처음 시리즈 2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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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 어렵지만 세계사는 더 어렵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하기만 한 세계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재미있는 세계사 교양서 한 권이 출간되었다.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 / 톰 헤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펴냄>은 일단 광범위한 세계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시대 범주로 나눈다. 그리고 63개의 핵심 테마를 선정하여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의 뼈대를 잡아나간다.


역사하면 사건의 연도와 수많은 인물을 암기해야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는가? <정글북>의 저자 '러디어드 키플링'은 "역사를 이야기로 배우면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본서의 특징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역사 기술 방법이다. 저자인 '톰 헤드'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 스토리텔러다. 이야기꾼이 전하는 세계사는 대다수 독자가 가진 역사에 대한 일종의 포비아를 극복케한다. 한마디로 너무 재미있다.


기록이 존재하기 시작했던 선사 시대 이후부터 6000년의 인류 역사에 관한 다양한 사건과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기에 독자는 지루할 틈이 없다.



고대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가운데 아시리아 제국이 있다. 구약 성경에도 등장하며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역사상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살아있는 포로들의 가죽을 벗겨 죽일 정도로 야만적이며 잔학한 나라였던 아시리아에 대한 내용 가운데 우리가 모르는 반전이 있다.


수도인 니느베에는 당대 최대 규모의 도서관이 존재했으며 도시에는 정교한 배수 시설이 건설되었다. 적극적으로 예술을 후원했고, 통신망이 발달했으며 고등 종교를 신봉했다.


우리가 아는 아시리아가 폭압적이고 미개하며 야만적인 동시에 고도로 문명화 된 제국이었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 성공회 탄생 비화다. 영국 헨리 8세는 엄청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다. 6명의 아내를 맞이했고 그중 2명은 참수형에 처한 기인이다. 많은 이들이 영국 성공회 탄생이 헨리 8세가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하기 위한 과정 중에 탄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성공회는 헨리 8세의 두번 째 아내이자 참수형 당한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 때 만들어졌다. 오래 전 총신대 역사신학 라은성 교수님이 성공회를 헨리 8세가 단지 이혼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금 확인한다.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까지 주요한 사건과 인물을 살피며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오해가 적지 않게 해결되는 시간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평화주의 아이콘이다. 오른 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는 기독교적 무저항의 행위는 현대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나름의 공헌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정당한 폭력도 존재함을 역설한다. 오해는 마시라! 저자가 폭력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20세기 세계 역사에서 폭력적인 저항이 더 큰 폭력을 막을 수 있게 된 경우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미친 운전사가 운전대를 잡고 광란의 질주로 무고한 시민들을 짓밟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오직 하나, 미친 운전사를 힘으로 운전석에서 끌어내리는 방법 밖에는 없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이탈리아의 저항운동 등은 나치 독일이라는 미친 운전수를 끌어내리는 일에 앞장 섰다. 이들의 희생이 연합군의 승전을 앞당겼음을 역사가 증명하기에 세계사 속 정당한 폭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연도와 사건, 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이름의 인물들이 얼키고 설킨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 세계사 교과서 아니었는가?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은 이러한 모든 염려를 단번에 불식시킨다. 책의 제목과 같이 인생 처음으로 세계사를 공부하는 독자를 염두하며 쓴 책과 같다.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순간이 깊은 감동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중국에 오랜 저주가 있단다. "당신이 흥미진진한 시대에 살기를..." 세계사를 배우며 이해하게 될 때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욕도 없다.


역사 속 우리는 방관자로 있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타임라인 위에 올려진 순간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 <인생 처음 세계사 수업>은 흥미진진한(?) 무대 한 복판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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