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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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1. 박준 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결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집과 산문집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당신’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님’처럼, ‘연인, 가족, 신’으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시집의 표제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당신’은 대필 작가가 대필하는 사람인데, 제목만 보고 연인에 관한 시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읽는 사람마다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오독해도 좋겠다. 그게 시의 매력이다.



여행, 가족, 문학, 죽음 정도가 키워드. 읽어보고 더 많은 나만의 태그를 추가해보면 좋겠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157쪽)는 시인의 마음이 믿음직하다.



시인의 말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첨언하자면, 울면 달라진다. 울면 마음은 후련해지고 눈에 끼었던 홍진(紅塵)이 씻겨 세상이 투명하게 보인다. 다만 울 때 내 옆에서 누가 내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더 실컷, 엉엉 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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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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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미옥 시집, 온, 창비


1. 오랜만에 여백이 많은 시집을 읽었다. 간결한 문체가 낳은 하얀 여백에 내 기억을 환칠했다. 검정에서 빨강과 파랑을 꺼내 마음의 천국을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 ‘천국’연작과 ‘마음’에 관해 성찰하는 여러 시편들(제1부의 제목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을 읽고 있으면 시인의 말처럼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 생각이 든다. 시인과 시의 주체는 엄밀히 분리되지만 독자는 어쩔 수 없이 둘을 겹쳐 생각하기 마련이다. 결코 밝지 않은 가족사, 색상표에서 온색보다 한색 계열에 치우쳐진 감정이 느껴진다. 슬플 때는 슬픈 노래를 들으라고 하지 않는가. 천국과 지옥, 꿈과 현실, 기억과 망각, 밤과 낮이 하나라 갈마드는 것 같은 시집이다. 그게 ‘온’이다.




제1부 –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제2부 –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제3부 –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를수록 좋았다
제4부 - 부서지고 열리는 어린잎을 만져본다




* 메모


- 시집 94-95쪽 부분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건 정말일까/ 한겨울을 날아가는 벌을 보게 될 때// 투명한 날갯짓일까/ 그렇다면//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



- 천국 42-43쪽 부분
같은 곳을 맴돌고 있으면 이곳에 남지 않는 법을 모르게 된다. 숲이 숲을 닫았다. 나무가 열매를 닫았다. 이 집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큰불을 기다려. 멀리 있는 사람들도 돌아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그런 말들을 기다려. 말 속에 숨어 있는 빛나는 눈을 기다려. 가라앉은 채. 부서지는 마음을.// (중략)




- 온(천국 3), 46-47쪽 부분

날지 못하는 새의 이름을/ 녹슨 나사/ 깨진 창문에 비치는 얼굴을// 나는 없는 것에 대해서만 말했다// 무너지고 있는 집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큰비가 올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창밖을 보지 않기로 했다./ 얼굴이 벗겨질 것 같았다// 죽은 비둘기떼의 펼쳐진 날개/ 뒤집힌 우산들이 쌓여 있는 곳// 나는 하류로 가지 못했다/ 허리까지 차올랐던 물이/ 끌고 내려가는 것들을 생각했다// 뿌리 뽑힌 풀들이 메말라 있어도/ 끊어지지 않는 볕// 나는 이제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아있는// 큰비가 온다/ 나는 소문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간다




- 램프 50-51쪽 부분

망가진 주술들이 쌓여 있다/ 앞니가 빠지는 꿈을 자주 꾸었다// 뒤집힌 그물을 다시 뒤집다가/ 정면을 잊는다// 영혼이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건너편의 마음이 된다// 사람들에겐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무수히 많은/ 노란 리듬 때문// 구부러진 앵무새의 코// 안전선은 익숙하게 경고한다/ 살아 있다는 생각 같다// 여름은 요약도 없이/ 자라서 죽는다// (중략)// 구한 적 있는 소원// 뭉친 솜을 풀고 있다



- 생일 편지 80-81쪽 부분

‘목적지를 정하면, 도착할 수 없게 된다.’// (중략)// 시작을 시작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작이 필요했다./ 베란다의 기분. 축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중략)// 발이 더 무거워졌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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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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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1. 우주비행선을 타고 바라본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벅참이 있을까. 붉고 푸르고 하얀, 어둡고 환하고 흐릿한, 일체의 것들이 동시에 마음을 가득 채우는 상상을 하면 나는 슬플 것 같다. 


  우연인지 몰라도 신철규 시인의 시들에서는 같은 고향(경남 거창, 거창에는 신씨가 매우 많다)에 같은 성(姓)을 가진 신용목 시인이 떠오른다. 서정적인 풍경과 도시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시골이나 소도시의 정서가 있다. 단지 정서가 그렇다는 말이다. 두 시인의 시적 전개방법은 분명 차이가 있다. 신용목 시인은 대체로 묘사와 진술을 위주로 시를 전개하면서 수사법을 많이 쓰는 스타일인데 신철규 시인은 아주 평이하고 정직한 문장을 선호한다. 그래서 시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한두 번 읽어보면 중심이미지나 메시지가 머리에 박힌다. 신철규 시인은 일상의 사물이나 사건을 유심히 관찰해 일상적인 단어나 진술로 표현해 내는데 뛰어난 것 같다. 


  2011년 등단 이후 일어난 비극인 세월호 사건에 대한 비판의식과 죄의식(죄책감)도 엿보이고 특히 4부(이무기는 잠들지 않는다)에서는 가족사(아버지, 할머니 등)에 관한 시들이 많다. 첫 번 째 시집의 경우는 시인의 경험이 담긴 감정이 많이 담긴 시가 섞일 수밖에 없는데 전략적으로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 것 같다. 


  슬픔과 눈물로 뭉쳐진 이 단단한 돌멩이를 입 안에 넣고 씹을 때, 그 안에 섞인 울음과 땀과 눈물이 배어나와 얼른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 때도 많았다. 


● 메모


- 슬픔의 자전, 90-91쪽 부분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니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중략) 


- 검은 방, 84-85쪽 부분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기도를 하던 두 손엔 검은 물이 가득 고였다// (중략)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 (중략)// 위로받아야 할 사람과 위로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인가// (중략)//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 눈물의 중력, 25쪽 부분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중략) //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중략) //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 유빙 66-67쪽 부분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후략) 


- 꽃피네, 꽃이 피네 114-115쪽 부분


  구야, 니는 대처로 나가 살아야 한대이, 가서는 총도 잡지 말고 펜대도 굴리지 말고 참꽃맬로 또랑또랑 살거라이, 나서지도 숨지도 말고, 눈을 부릅뜨지도 감지도 말고, 꽃이 피인 기라, 피가 꽃인 기라 


- 공회전(-동식에게) 124-125쪽 부분


  죽은 화분에 물을 준다// 우리 사이에는 기억의 비무장지대가 있다// 네 몸은 과녁에 꽂힌 화살처럼 떨리고 있었다/ 바람에도 칼날이 있음을 꽃 진 자리를 보고 알았다// (중략)// 죽은 화분을 빠져나온 물이 한없이 투명하다   



* 뉴스룸 앵커브리핑에 나왔던 신철규 시인의 '눈물의 중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37&aid=0000140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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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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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소설, 윤미연 옮김, 허기의 간주곡, 문학동네


1. 유년의 ‘에텔’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스무 살의 여성과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요약하기에는 그물이 너무 성기다. 시간적 배경 외에 ‘에텔’ 집안의 고향인 모리셔스와 주 거주지인 파리, 피난지는 브르타뉴, 니스를 상기해야 하고 화목하지 못했던 부모, 친구지만 거리가 있었던 ‘제니아’, 어머니의 삼촌인 종조부 ‘솔리망’도 소환해야 한다.


2.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Dunkirk)》가 떠올랐다. 영화가 영국군이 덩케르크에서 본토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군과 민간인들의 애국심과 인류애,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전쟁형 휴머니즘 영화라면 이 소설은 국가적 차원이 아닌 한 개인(넓게는 한 집안)이 겪는 휴머니즘형 리얼리즘 소설이다. 물론 화자의 직접적인 비판이 아닌 소설적인 테두리 안에서다.


소설에서 몇 부분 예를 들어, ‘메르엘 케비르 사태’(1940년 프랑스 해군의 전력이 독일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처칠이 알제리의 메르 엘 케비르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대서양함대를 공격하고 영국 영토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에 대해 무장해제를 단행한 사건, 201쪽), 됭케르크에 고립되자 싸우기를 포기했던 영국인들(234쪽)에서 언급되어 있다. 그밖에도 영국이 곡창지대인 인도 뱅골 지방에서 쌀 수탈에 나서는 바람에 발생한 기아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현재의 중동-이스라엘 분쟁도 영국에 책임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 6.25 전쟁에 역사까지 겹쳐져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만은 없었다.


3.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수많은 장소와 인물들(파리의 거리, 팔려간 노예들의 기록장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가 있던 곳)을 호명한다.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 호명해 주는 것이 독자의 몫이자 남은 자들의 책무다.


* 메모
- 남자는 ‘아우스바이스(증명서)’를 정성스레 작성했다. 그러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증오스러운 서명을 위협적으로 들이대는 그 잔혹한 맹금류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낫을 모아놓은 것 같은 갈고리 십자가가 풍기는 위압감을 완화하려는 듯, 왼쪽으로 기울어진 예쁜 글씨로 종이 좌측 하단에 감탄부호가 달린 단어 하나를 덧붙였다.

플뤼흐틀링에!

그래서, 순진하게도 에텔은 그가 그녀 가족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것은 그녀 가족이 무엇인지를, 온갖 잡동사니를 가득 쑤셔넣은 고물 자동차 안 짐 사이를 끼어 있는 그 보헤미안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간단하게 한 단어로 요약한 것이었음을.
피난민!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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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로드, 한국을 담다 - 한국의 자연과 사람을 담아낸 청아한 계절의 기록 아트로드 시리즈 2
김물길 글.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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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물길 글·그림, 아트로드(한국을 담다), 알에이치코리아
1. ‘아트로드’(스물넷에 떠난 컬러풀한 세계일주)를 인상 깊게 읽어서 국내편에 해당하는 ‘아트로드’(한국을 담다)를 주저 없이 집었다.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국내 곳곳의 산, 강, 바다, 섬 등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얘기가 짤막하게 실려 있다.
전편처럼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 매우 인상적인데, 사실 묘사가 아니라 상상적 체험에 바탕을 둔 그림이 많아 흥미롭다. 특히 작가는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사람의 몸에 연결시켜 표현한다. 초현실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글 뿐 아니라 그림 자체가 굉장히 시(詩)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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