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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1. 우주비행선을 타고 바라본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벅참이 있을까. 붉고 푸르고 하얀, 어둡고 환하고 흐릿한, 일체의 것들이 동시에 마음을 가득 채우는 상상을 하면 나는 슬플 것 같다.
우연인지 몰라도 신철규 시인의 시들에서는 같은 고향(경남 거창, 거창에는 신씨가 매우 많다)에 같은 성(姓)을 가진 신용목 시인이 떠오른다. 서정적인 풍경과 도시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시골이나 소도시의 정서가 있다. 단지 정서가 그렇다는 말이다. 두 시인의 시적 전개방법은 분명 차이가 있다. 신용목 시인은 대체로 묘사와 진술을 위주로 시를 전개하면서 수사법을 많이 쓰는 스타일인데 신철규 시인은 아주 평이하고 정직한 문장을 선호한다. 그래서 시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한두 번 읽어보면 중심이미지나 메시지가 머리에 박힌다. 신철규 시인은 일상의 사물이나 사건을 유심히 관찰해 일상적인 단어나 진술로 표현해 내는데 뛰어난 것 같다.
2011년 등단 이후 일어난 비극인 세월호 사건에 대한 비판의식과 죄의식(죄책감)도 엿보이고 특히 4부(이무기는 잠들지 않는다)에서는 가족사(아버지, 할머니 등)에 관한 시들이 많다. 첫 번 째 시집의 경우는 시인의 경험이 담긴 감정이 많이 담긴 시가 섞일 수밖에 없는데 전략적으로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 것 같다.
슬픔과 눈물로 뭉쳐진 이 단단한 돌멩이를 입 안에 넣고 씹을 때, 그 안에 섞인 울음과 땀과 눈물이 배어나와 얼른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 때도 많았다.
● 메모
- 슬픔의 자전, 90-91쪽 부분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니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중략)
- 검은 방, 84-85쪽 부분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기도를 하던 두 손엔 검은 물이 가득 고였다// (중략)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 (중략)// 위로받아야 할 사람과 위로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인가// (중략)//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 눈물의 중력, 25쪽 부분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중략) //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중략) //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 유빙 66-67쪽 부분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후략)
- 꽃피네, 꽃이 피네 114-115쪽 부분
구야, 니는 대처로 나가 살아야 한대이, 가서는 총도 잡지 말고 펜대도 굴리지 말고 참꽃맬로 또랑또랑 살거라이, 나서지도 숨지도 말고, 눈을 부릅뜨지도 감지도 말고, 꽃이 피인 기라, 피가 꽃인 기라
- 공회전(-동식에게) 124-125쪽 부분
죽은 화분에 물을 준다// 우리 사이에는 기억의 비무장지대가 있다// 네 몸은 과녁에 꽂힌 화살처럼 떨리고 있었다/ 바람에도 칼날이 있음을 꽃 진 자리를 보고 알았다// (중략)// 죽은 화분을 빠져나온 물이 한없이 투명하다
* 뉴스룸 앵커브리핑에 나왔던 신철규 시인의 '눈물의 중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37&aid=0000140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