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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2018.1 - Vol.57
시인동네 편집부 지음 / 시인동네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이놈,/ 파리채를 들어 때려죽일까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거두어버린다./ 용서하기로 했다./ 시를 쓰는 성스런 시간이 아닌가?
나의 하나님께서도 내 참회기도를 들으실 때/ 부디 시 쓰시기를 바란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복효근, 「시적 순간- 고래의 잠」, 벌 46-47쪽
이중으로 된 창문 사이에/ 벌 한 마리 이틀을 살고 있다
떠나온 곳도 돌아갈 곳도 눈앞에/ 닿을 듯 눈이 부셔서
···당신 알아서 해/ 싸우다가 아내가 나가버렸을 때처럼
혼자 싸워야 하는 싸움엔 스스로가 적이다/ 문으로 이루어진 무문관(無門關)
우체국 통유리창에/ 새가 연신 날아와 부딪쳐 죽더란다/ 우체국장은 맹금류 스티커를 유리창에 붙이고 있었다
유리창에 되비치는 창공에 속았든가/ 유리창에 반사되어 제게로 날아오는 한 마리 새를 제 짝으로 알았을까
우체국 유리창을 통하여/ 새는 하늘 저 넘어 주소지로 저를 옮기고 말았는데
죽을 만큼의 힘으로 저쪽에 닿고 싶은 그 순간을/ 그리움의 속도라 부르겠다/ 서로에게 날아 달려오던 그 새들은 하나가 되었을까
그리운 저쪽으로 편치를 부치던 날이 언제였던가/ 나 지금/ 죽을힘을 다하여 이르고 싶은 그곳이 있기나 한가
그 먼 곳으로 제 생을 통째로 날려 보낸 새를 보며/ 우체국 생애안심보험에 대해 물으려다가/ 그냥 돌아온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