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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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지금여기가맨앞‬

이 시집을 읽어 나가면서 몇 단어를 적었다. 
오래된 기도, 전통적 서정, 존재론, 아포리즘, 생태주의

나는 보통 시집을 읽을 때 맨 뒤에 수록된 발문이나 해설을 먼저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집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해설한 부분을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을 “봄, 중년, 사랑과 죽음, 지금 여기가 맨 앞인 이유”라는 제목을 붙여 그 의미를 예를 들어가며 탐색한다. 일반적으로 평론은 어려운 글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정말 좋은 글은 알기 쉽게 쓴 글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깨닿게 해주는 해설이었다. 집에서 잠자는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를 조만간 읽어야겠다.

그리고 이 시집에 대한 기억이 조금 흐려졌을 때 쯤 다시 ‘지금 여기가 맨 끝이자 맨 앞’이라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펼쳐야겠다.

- 문자메시지(72쪽)
형, 백만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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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개론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쪽지를 시험지 밑에 깔고

정신없이 답안지를 채워나가는데 손이 불쑥 들어왔다

그 손은 조용히 쪽지를 뒤집었다






 

나는 다시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어느새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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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저울


저울의 무게는 누가 잴까
양팔의 벌려 바람의 무게를 재어 볼까
양다리와 양가슴은 평형이 아니다
다리가 무거우면 가슴은 가볍다
머리에서 발까지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
가벼워야 한다 가벼움마져 버려야 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바람은 가늠할 수 없지만
바람은 분명 다르다
나는 바람을 안고 양다리를 차례로 내딛으며 걷는다
나는 가장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존재인가 가벼움인가
가장은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저울이 평형을 이루는 꿈을 꾸었다
주사위는 몸을 뉘이지 않고 떠 있다
육면의 숫자가 쏟아져 몸을 누른다
하나는 가볍게 둘은 나란히 셋은 뾰족하게
넷은 갑갑하게 다섯은 찬란하게 여섯은 무겁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무서운 다리를 건너는 꿈
나는 새롭다 나는 가볍다고 되뇌이며
아이처럼 가벼워지고 싶어 나이를 먹는다
그림자에도 무게는 있다
밝을수록 그림자는 무겁고 어두워질수록 가볍다
티브이에는 영근 얼굴들이 스웨그를 꿈꾸고
고개 숙여 인사할 줄 모르는 뻣뻣한 모자는 가볍다
스웨그는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만드는 것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더 두렵다
가장 콤플렉스, 장남장녀 콤플렉스 없는 작품의 이름은
"공동가장"
거기에는 두 개의 심장과 두개의 척추를 매달은
평형을 이룬 저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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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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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뇌(상, 하권), 열린책들)
‪#‎뇌‬ ‪#‎베르나르베르베르‬
어머니 생신이라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2002년 초판 1쇄 『뇌』를 ‘발견’했다. 내가 산 것인지 동생이 산 것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책장에 꽂힌 홍명희의 『임꺽정』과 『뇌』중 어떤 것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고등학교 때 『임꺽정』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났지만 10권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 2권짜리를 택했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고 나온지 10년도 넘은 책이라 내용도 약간 진부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지금 읽어도 한 눈과 한 귀의 지각능력만 가진 교통사고 환자 마르탱이 핀처 박사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의사소통하는 광경은 신비롭다. 지인 중 한 분이 ‘마르탱’처럼 눈의 깜빡임으로만 의사소통을 하신다. 한 번 깜빡이면 ‘Yes', 두 번 깜빡이면 ’NO'. 이렇게 벽에 붙여놓은 자음, 모음 글자판으로 한 음절씩 말씀을 하시는데 인간의 생존의지에 대한 감탄에 앞서 개인적 경험 때문에 이 책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첫문장 :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 사람의 행동을 이끄는 동기
첫째 동기 : 고통을 멎게 하는 것
둘째 동기 :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셋째 :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넷째 : 안락함을 위한 부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다섯째 : 의무감
여섯째 : 분노
일곱째 : 성애
여덟째 : 습관성 물질
아홉째 : 개인적인 열정

열번 째 종교
열한 번째 모험
열두 번째 최후의 비밀에 대한 약속
열세 번째 최후 비밀의 실제적인 경험



인간의 뇌에 대한 탐구를 ‘오뒤세우스’의 모험에 빗대어 풀어가는 방식은 나의 지적욕구를 충족시켜주기도 하고 전체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었다.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때로는 한 가지에 꽂혀서 때로는 여러 가지가 섞여서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 일반적인 대답이겠지만 어려운 철학적 물음을 던져 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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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신문‬

뜨겁고 고요한 아침
정확한 시각에 배달되는 신음소리
폭탄 터지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함께 내는 자명종

노려보고 흘기다가 악수하며 웃는 글자들
자음이 없어 받침이 없는 세상에서 둥둥 떠도는
아야 아야 소리만 들리는 박스형 기사
공기주머니를 찬 핏덩이 같은 크렌베리가 떠오르는 사진

나는 오늘도 흐물흐물한 비명을 밟으며 걷는다
닮아빠진 구두로 지하세계의 침묵과 사라진 시간과 
죽음의 악취의 밟는다

사냥꾼이 쫒아오고 있다
숨이 가쁘다

어둡고 닫힌 미로를 몇 바퀴 돌면 멀미가 난다
손을 따고 등을 쓸고 두드리고 토하고 손가락을 집어넣어도
멈추지 않는다 
청각과 시각의 불균형은 눈을 감아야 멈춘다
평형을 생각한다

나는 아큐도 
치숙을 둔 조카도 아니다
나는 본 것만 쓴다
본 것과 생각하는 것은 같다 
나는 생각하는 것만 쓴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떠도 감아도 똑같은 색깔인 벽을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스미고 베인 검은 물이 벽을 타고 흐른다
물 위에 떠다니는 뼈들은 빙산에 부딪혀
점점 가라앉는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

물방울은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했다
나는 어두운 독방에서 하루 종일 지난 몇 년간 내가 무슨 일을 했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부족한 자극을 보충한다
현재를 즐기면 된다는 말은 전혀 자극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빛을 볼 수 있다는 말은 자극이 아닌 혐오다

나의 뇌는 바다에 떠 있다
나는 신문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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