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 시인선 112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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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1. 오늘도 시인이 이끄는 그곳으로 간다. 내가 사는 곳이 그의 고향인 덕적도와 멀지 않기에, 그곳으로 건너가는데 포석으로 놓아둔 강화도, 소래포구, 덕적도를 회상하며 상상하며 그곳으로 그때로 돌아가고 처음 가본다. 그곳으로의 발걸음은 이국으로의 망명이고 귀향이고 떠남이고 돌아옴이다. 배를 타고 바다에 하얀 발자국을 잠시 남기고 그곳으로 건너가는 나는 무엇을 건지고 떠메고 버리고 올 수 있을까.



- 맨발로 걷기 :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꾸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 개밥바라기가 옹관 같은 눈동자로 51쪽

초저녁 개밥바라기가 옹관 같은 눈동자로/ 우리들을 내려다본다/ 세상은 오래 된 웅덩이처럼 컴컴해지고/ 무덤들은 침착하고 참한 표정으로 둥그러져 있다/ 처녀들은 치마를 걷고 자기 웅덩이를 바라본다/ 우리는 웅덩이에 낯을 씻고/ 씻은 낯을 개밥바라기에게 비춘다/ ‘얼굴이 모두 같군/ 솎아낸 시금치야’/ 뒷짐을 지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개밥바라기/ 祖上들은 우릴 솎아서 내버린 걸까



- 그리운 시냇가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 돌멩이 같은 아기 낳으면/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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