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1. 산문시보다 짧은 시가 훨씬 어렵다. 독자 입장에서는 여백을 읽어내야 하고 작자는 압축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지미가 풍부한 암시력을 지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년」「다랑이길」같은 작품을 읽으면 텍스트 그 자체로 풍부해서 좋고, 내 경험과 연결해 또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봉숭아는 분홍을 한 필/ 제 발등 둘레에 펼치었는데/ 마당은 지글거리며 끓는데/ 하산(下山)한 우리는 된 그늘을 두어 필씩 펼쳐놓고서/ 먹던 물 대접 뿌려서 마당귀 돌멩이들 웃겨놓고서/ 민둥산을 이루었네
논둑길이나 걷다보면 낫는다/ 속이 울음인 사람/ 다랑이 논둑길을 걸으면 낫는다// 울음 밑이 서퍼런 우물인/ 웃음 밑이 떨리는 절벽인 사람// 다랑이 논둑길/ 약(藥)으로 걸으면/ 가을 가 겨울// 눈길 걸어/ 길 잃으면/ 낫는다
- 어찌하여 민들레 노란 꽃은 이리 많은가? 76쪽 부분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올라오는 이 있겠지/ 그 말이 누군가를 막 때리는 말인 줄은 까맣게 모를 테지/ 여전히 나는 민들레 노란 꽃을 남기면서 내려가고 있을거야// 민들레 노란 꽃을 여럿 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