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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예찬 ㅣ 프런티어21 14
알랭 바디우 지음, 조재룡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12월
평점 :
알랭바디우(대담: 니콜라 트튀옹), 조재룡 옮김, 사랑예찬, 도서출판 길
1. 야구 경기에서 선수, 코치, 감독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나는 상황을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이라고 부른다. 글자 그대로 벤치를 비우고 더그아웃(dugout)과 불펜(bullpen)에 있던 선수들이 황소처럼 경기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고참 선수들은 흥분된 선수들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정리한 뒤 대개 5분 안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물론 이후에 보복성 빈볼이나 퇴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여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사랑은 ‘둘이 등장하는 무대’에서 만남이라는 사건을 통해 ‘우연을 고정’하고 지속적인 ‘선언’(예를 들어 사랑한다는 말)을 통해 사랑의 ‘충실성’ ‘지속성’을 확보하자는 것
이런 주장이 나는 양 팀의 벤치클리어링 상황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마운드는 쌍방이 등장하는 무대, 야구경기의 심판은 경기 중의 판정자 일뿐 벤치클리어링이나 사랑놀음에서 객관적인 판단자는 없다. 각자의 입장이 있으며, 그 둘의 입장이 환하게 비추는 서치라이트와 전광판 아래에서 맞붙는 번외 경기. 벤치클리어링을 통해 자기 팀 선수들의 결속력은 단단해지고 승리에 대한 욕망을 강해진다.
2. 그러고 보니 사랑은 야구를 참 닮았다. 연봉협상을 하듯 밀고 당기기, 포수나 심판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른 존재를 불러내기,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뻥뻥 야구장 밖으로 홈런을 날리는 타자처럼 사랑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빠른 직구만 고집하는 투수도 있지만 변화무쌍한 변화구를 장착한 다른 유형의 투수도 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대박을 꿈꾸는 발칙한 상상, 친구 대신 소개팅 나가 눈 맞았다는 대타 홈런, 번번이 실패하는 헛스윙 같은 만남, 불편한 왼손잡이가 우대받는 곳이 사랑의 그라운드다.
미틱의 광고 문구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전사자 제로” 전쟁이나, 우연도 만남도 존재하지 않는 “위험 제로” 사랑에서, 저는 보편적인 프로파간다의 그 수단들과 더불어 안전한 위협이라고 할, 사랑에 드리워진 첫 번째 위협을 봅니다. (중략) 사랑을 짓누르고 있는 두 번째 위협은 바로 사랑에서 모든 중요성을 박탈해버리는 것입니다.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