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용도 (양장)
니콜라 부비에 지음,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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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용도, 니콜라 부비에 글,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소동, 2016



1. 1953년 6월, 제네바에서 1954년 12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카이바르 고개까지(구 유고-터키-이란-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카불) 고물 피아트 자동차를 타고 화가 친구 티에리 베르네와 동행(중간에서 헤어짐)하며 겪인 여행기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공간적 배경과 내가 가볼 수 없는 시간적 배경 속에 놓인 도시들과 사람들을 간접 경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책의 부록으로 첨부된 지도를 펼치고(다행히 책에 도시마다 번호가 있어 바로 지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여행을 상상하는 일은 정말 앉아서 하는 여행 그 자체였다. 6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고 번역은 다행히 매끄러운 편이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쓴 글만큼 가독성이 높진 않기에 완독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저자는 여행 중에 메모한 글들을 다 날려버리는 사고 후에도 여행 후에 이 글을 수백 번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여행의 과정을 상기하고 그때의 느낌을 재생하는 일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귀찮은 일인데도 세밀한 묘사와 여정을 꼼꼼히 기록한 것이 놀랍다.



* 메모

- 우리에게는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다. 돈의 액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넘쳐났다. 우리는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작정했다. 84쪽



- 침묵 속에서 하루가 끝나간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실컷 얘기를 나누었다. 여행은 엔진 소리와 스쳐가는 풍경에 실려와서 당신의 몸을 관통하고 당신의 머리를 환하게 밝혀준다.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인 생각은 당신을 떠난다. 반대로 다른 생각이 새로 정리되어 강 밑바닥의 조약돌처럼 당신 가슴속에 자리를 잡는다. 개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도로가 당신을 위해 일을 한다. 도로가 제 할 일을 다 하여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인도 끝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죽음까지 그렇게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86쪽



- 이 세상 어디서나 그렇듯 이곳(타브리즈)에서도 역시 정말 꼭 속여야 할 때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거짓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의 동기나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까지 스스로를 기만하지는 않는다. (중략) 절차는 덜 음흉하고 덜 꾸며지는 대신 그만큼 더 명확하다. (중략) 다른 사람들은 속일망정 자기 자신은 속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348쪽



- 특히 이 도시(테헤란)에는 푸른색이 있다. 푸른색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곳까지 와야만한다. 이미 발칸반도에서부터 눈은 이 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스에서는 푸른색이 주조를 이룰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공격적인 푸른색으로서, 바다만큼이나 활동적이지만 또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모험적인 계획, 일종의 비타협성을 장려한다. (중략)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이 페르시아의 푸른색은 마음을 고양시키고, 가라앉지 않도록 이란을 받쳐주고, 위대한 화가의 팔레트가 환해지듯 시간이 흐를수록 밝아지면서 고색(古色)을 띤다. 청금색으로 된 아카드 동상들의 눈, 파르티아 궁궐의 선명한 청색, 더 밝은 셀주크 도자기의 유약, 세파비드 이슬람 사원의 푸른색, 그리고 이제 모래의 황갈색과 나뭇잎의 먼지 자욱한 연한 녹색, 눈, 어둠과 더불어 편안히 노래하고 날아오르는 그 푸른 색······. 373-374쪽



* 목차



서장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1. 발칸 반도: 새로운 세계에서 빈둥거리며 나태를 부리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2. 아나톨리아 가는 길: 이 광활한 땅, 이 진한 냄새, 사랑을 하면 그렇게 되듯이

3. 이란 국경: 아무리 빵을 씹어도 안 넘어가고 목에 걸리는 순간이 있다

4. 타브리즈-아제르바이잔: 삶이 중앙아시아의 어느 변두리에서 길을 잃고 해매도록 하고 싶었다

5. 교도소에서: 봄꽃들이여, 뭘 기다리니

6. 타브리즈Ⅱ: 이 세상처럼 오래되고 이 세상처럼 매혹적인 도시

7. 사흐라: 만져지지 않는 이 길,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는 이 강

8. 사키바 주변에서: 여행은 나선처럼 그 자체 위를 지나간다

9. 아프가니스탄: 뭐든 천천히 하는 것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0. 카불: 아시아의 시간은 유럽의 시간보다 넓게 흘러간다

11. 힌두쿠시: 떨어지고 떨어지는 모든 물, 그것은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어라

12. 이교도들의 성: 나는 왜 이 여행에 관해 말하려고 고집을 부리는가

13. 카이바르 고개: 세계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색깔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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