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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ㅣ 창비시선 369
권혁웅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권혁웅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
1.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겪을 법만 일상이 시인의 몸을 통과하니 시가 되었다. 그의 시의 능청스러움, 해학의 코드는 웃음을 짓게 만들기보다 짠하다. 웃프다. 가볍게 보이거나 시어로 사용하지 않을 법한 고사성어, 비속어, 은어까지 자유자재로 비벼 맛깔나게 표현한다. 그는 미래파를 지지하지만 서정시를 쓴다. 서정은 서정인데 풍자코드가 짙다. 시치미 떼기를 배웠다.
* 메모
- 고스톱 치는 순서는 왜 왼쪽인가 11쪽 부분
시간을 따라가면 죽음과 마주치게 된다는 뜻, 그래서 고스톱 치는 순서가 왼돌이일 거예요 우리고모, 동네 할머니들과 힘을 합쳐 시간에 저항하고 있는 거지요
- 환절기 72쪽
몸의 절반이 봄으로 건너가지 못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왼쪽은 가로등을 꺼버린 골목길이다 모세혈관마저 캄캄하게 돌아 나오는 길을 잊었으므로 그곳엔 지금 처음 남자에게 안겼을 때의 체온과 첫 입술이 서성이고 있다 (중략) 오른쪽 절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왼쪽이어서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우익이다 (후략)
- 서해에서 76쪽
인간이 버린 것들을 천천히 되밀어오는 해안/ 나의 해안선은 늑막염처럼 쓰리다/ 모래에 묻어둔 병은 담장에 박아둔 병과 똑같이/ 경계를 넘는 이들의 발을 베어버린다 (중략)/ 그러니, 그런 것이다, 누가 손을 넣어/ 가슴의 불을 끄는 때가 있는 것이다
- 운명의 힘, 96-97쪽 부분
혈압이 길 가던 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골목에서 삥을 뜯던 불량배처럼/ 운명이 뒤에서 아버지 머리를 후려쳤다/ 나오면 백원에 한 대다,/ 주머니에서 정말로 동전들이 굴러나왔다// 됐어, 이제 가봐/ 운명은 너무 일찍 그를 귀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