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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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집, 사월 바다, 창비
#도종환 #사월바다



1. 어머니가 췌장암 판정을 받으신 지 오년 만에 완치되셨다. 발견도 어렵고 발병 후 삼 년 이내 생존율이 십 퍼센트 미만인 병을 이겨내셨다. 2011년 이후로 당신은 분명 살아 계신데 죽은 것 같다. 분명 살아났는데 죽은 것 같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독이 내 몸속에 남았다. 논할 수 있어도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 반대편에서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반대편 지하철이 도착했고 당신은 사라졌다. 당신은 지하철에 탄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있는 이편으로 건너오고 계실까.

‘아침식사 됩니다’는 국밥집의 비뚤빼뚤한 글씨가 엄마를 닮았다.



2. ‘사월 바다’는 엄마를 닮았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자꾸만 세수를 하는 엄마의 얼굴을 닮았다. 한없이 다정하고(서정시) 한없이 매섭다(정치적인 시). ‘거세개탁(擧世皆濁)’에도 홀로 독야청청이 아니라 나와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더불어’ 가잔다. 이 시집의 마지막 시가 ‘희망의 이유’다.




3. 메모


- 나머지 날 12-13쪽 부분

나물들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곳에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 좋겠네



- 겨울 저녁 68쪽

찬술 한잔으로 몸이 뜨거워지는 겨울밤은 좋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 쓰던 붓과 화선지도 밀어놓고/ 쌓인 눈 위에 찍힌 산짐승 발자국 위로/ 다시 내리는 눈발을 바라본다/ (···)/ 그동안 너무 뜨거웠으므로/ 딱딱한 찻잎을 눅이며 천천히 열기를 낮추는 다기처럼/ 나도 목을 눅이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 ‘거새개탁’은 굴원의 「어부사(漁夫辭)」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온 세상이 탁한데 나 홀로 맑다(擧世皆濁我獨淸)



- 이릉대전 98-99쪽 부분

지려야 질 수 없는 싸움에서도 질 때가 있고/ 마지막 성 하나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운명도 있다는 걸 공명은 알고 있었다/ (···)



- 희망의 이유, 126-128쪽 부분

떡갈나무 잎을 들추고 도토리를 파묻는/ 다람쥐의 분주한 발걸음을 보라/ 그대도 나도 가을까지 왔다/ 숲의 정강이를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기계톱의 질주에/ 우리의 안락한 정원이 있다고 믿지 말라/ 우리의 미래는/ 불에 탄 나무에서 다시 솟는 연둣빛 새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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