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은 눈이 내 얼굴을 - 제3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ㅣ 민음의 시 228
안태운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평점 :
- 안태운 시집, 감은 눈이 내 얼굴을, 민음사
1. 현실의 재현보다 현실 너머의 세계와 꿈에 집중하는 시집. 시인은 《초현실주의 선언》을 쓴 앙드레 브르통이나 카프카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의 의미보다는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독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주어와 서술어만 있고 목적어가 없는 경우, ‘있다 있었다 했다 하고 있다’ 같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문장들은 시적자아와 화자가 현실 세계의 주체이기 보다는 꿈속이나 현실 바깥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에 관한 시들이 인상 깊다. ‘물’은 안과 밖의 경계, 부피와 깊이, 끈적임과 투명함, 고임과 흐름 등 현실과 비현실의 요소들을 두루 가지고 있는 시적 소재이기에 안태운의 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안에 있고 안이 좋고 그러나 안으로 빛이 들면 안개가 새 나간다는 심상이 생겨나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비는 내리고/ 비는 믿음이 가고 모든 맥락을 끊고 있어서 좋다고 그는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 걸어가므로/ 젖은 얼굴이 보이고 젖은 눈이 보이고 비가 오면 사람들은 눈부터 젖어 든다고 그는 말하게 되고 그러자 그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드나들게 된다/ 얼굴의 물 안으로/ 얼굴의 물 밖으로/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 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
그들은 크고 오래된 토우를 바라보고 있다. (···) 먼지가 일고 있고 그 둘은 서로 주장한다. 토우를 자신이 빚었다고. (···) 그럴 때 그는 물에 대하여 말한다. (···) 그곳에서 어떻게 물이 살 수 있었는지. (···) 그 물로 어떻게 반죽을 했는지. 그리고 그가 섞어 넣었던 체액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또 다른 그는 새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 그는 불타는 새의 연기를 토우에 먹였다고 한다. (···) 사람들은 무감하고 주장은 계속된 채로 있다.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토우에 몸을 꽂는다. 꽂고 있다. 꽂지마. 꽂는다. (···)
연안으로 가 봅시다 연안으로 밀려오는 너를 보러 나는 연안으로 건너가 봅니다 너를 마주한 나를 만나러 연안으로 나를 흘러가 봅니다 네게 잠들기 직전이라고 말해 주러// 그런 내게 너는 물을 밀고 땅을 밀었다고 합니다 밀다가 놓쳤다고 합니다 밀려오는 중에 갈 곳을 잃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네가 사이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멀어져서// 너무 멀어져 버렸다고 그러니 나를 흘러가라고 말합니다 너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잠들어 있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