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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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돌베개
#신영복

지난 1월 15일이 故 신영복 선생의 1주기였다. 이에 맞추어 나온 유고집. 제1부 나의 대학 시절 제2부 사람의 얼굴에서는 그동안 펴내신 저서(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처음처럼, 더불어 숲, 담론 등)에서 한 번 씩은 봤음직한 내용이 많다. 자꾸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의 얼굴처럼 책에 선생의 생전의 모습과 어투가 묻어난다.


새로웠던 부분은 이십 대에 썼던 수필을 모은 미발표 원고 부분, 특히 제3부(주소 없는 당신에게)에 실린 강연과 책의 발문, 추천사는 일독할 만하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깊은 사색의 체로 한 번 걸러 우려낸 문장으로 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차분히 설명한다. 아름다운 문체, 논리적 정합성을 떠나 삶과 글과 말이 일치한 사람을 거쳐 간 바람의 흔적이 이 책이다.




* 메모


- 세상에 끊어진 길은 없는 법이다. 끊어진 혈관이 없듯이 모든 길은 모든 길과 연결되어 있는 법이다. 21쪽



- ‘건축’이라는 단어, 이 단어를 읽거나 생각할 때 사람마다 떠올리는 상념이 다릅니다. 아파트 분양권을 생각하는 사람, 아니면 아파트를 생각하는 사람, 또 더 나아가서 포클레인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파트 분양권을 생각하는 사람과 손때 묻은 망치를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더구나 함께 술 먹었던 목수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의 사상은 그가 주장하는 논리 이전에 그 사람의 연상세계, 그 사람의 가슴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연상세계를 그 단어와 함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봐요.




- 그림과 글씨의 결정적인 차이를 한 가지만 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림은 ‘구체적 형식에 추상적 내용’인 반면 글씨는 ‘추상적 형식에 구체적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116쪽



- 미발표 유고 중, 이십대에 쓴 수상록

가을도 이미 지나가 버렸다. “봄이 자라서 여름이 되고 여름이 늙어서 가을이 되고 가을이 죽어서 겨울이 되었나보다.” 137쪽

초가지붕 참새 둥지에 손을 찔러 넣다가 그 속에 먼저 도사리고 있는 뱀의 싸늘한 냉한(冷寒)에 섬찟해진 경험이 있는가? 145쪽



- 대숲은 그 숲의 모든 대나무의 키를 합친 것만큼의 광범한 뿌리를 땅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나무는 뿌리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나면 이제는 나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의 마디와 뿌리의 연대가 이루어 내는 숲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홍수의 유역에서도 흙을 지키고 강물을 돌려놓기도 하며 뱀을 범접치 못하게 하고 그늘을 드리워 호랑이를 기릅니다. 그때쯤이면 사시청청 잎사귀까지 달아 바람을 상대하되 잎사귀로 사귀어 잠재울 것과 온몸으로 버틸 것을 적절히 가릴 줄 압니다. 설령 잘리어 토막 지더라도 은은한 피리소리로 남고, 칼날 아래 갈가리 찢어지더라도 수고하는 이마의 소금 땀을 들이는 바람으로 남습니다.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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