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 제3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79
서효인 지음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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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민음사
#서효인


1.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격언을 알고 있다. 도덕이라는 커다란 원이 있고 그 울타리 내에 이것만은 국가나 공동체의 힘으로 강제해야 할 불가피한 영역이 법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법이 도덕을 울타리와 담을 허물더니 도덕의 집을 철거하고 철제 컨테이너 가건물을 지으며 영역을 넓혀 간다. 법은 바람에도 끄덕 없다. 힘 센 사람은 더 강하게, 힘 약한 사람은 쪼그라들게 만드는 트랜스포머. 언제든 분리와 철거가 가능한 도시의 게르가 법이다. 한비자는 물론이고 공자, 맹자도 추운 곳에 덜덜 떨다가 전기장판 위에서 잠시 몸을 지지는 피난처.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법의 울타리를 벗어나 법의 눈 밖에 나면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밥 주고 운동시켜주고 기술도 가르쳐 주는 치외법권의 대사관인 큰 집으로 이사해야 한다.



2. 시집을 읽고 법, 도덕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효인 시인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직접 까든 돌려 까든 눈 뜨고는 못 본다. 시인의 예민한 촉수로 자본화 된 권력에 빳빳이 고개를 들고 대들 준비가 되어 있다. 일단 내 성질 한 번 건드려 봐라는 식으로.
‘그의 옆집’이라는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늙은 시인과 덜 늙은 시인과, 더 늙은 시인이 중국요리를 시켜먹는다. 옆집은 적막하다가 무슨 일이 일어난 듯 시끄럽다가, 필시 사고로 추정되는 상황에도 시인들은 침묵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이나 하듯. ‘누가 권력을 잡든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그래도 박통이나 전통때가 좋았는데. 그때가 좋았었지.’ 어르신들의 말이 배경음악으로 들리는 시.



나는 ‘그때, 거기, 그들’ ‘지금, 여기, 우리’가 좋았으면 좋겠다.



3. 메모




- 그의 옆집 86-87쪽 부분

우리는 그의 옆집에서 그의 발소리를 숨죽여 기다린다. 급기야 시인들은 서로를 몽둥이로 떄리며 점점 분명해지는 옆집의 소리를 외면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늙었다. 옆집은 그대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은 음식이 뒤섞인 그릇을 오늘 자 신문으로 덮는다. 악마의 행복도 이렇게, 치밀하지 못했다.



- 옥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비밀이야, 106-107쪽 부분

한 대, 두 대, 석 삼, 너구리, 오징어 (···) 굴 속에 너구리가 있다. 바깥에는 지독한 매연, 매연 속에는 못 박힌 각목, 각목 끝에는 너와 나의 손목이 있다. 또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손목 끝에는 고운 손가락이 있고, 우리는 자가용 핸들을 가볍게 쥐던 손으로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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