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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최대화 ㅣ 민음의 시 219
황유원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평점 :
- 황유원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민음사
1. 세밑이다. 두어 시간 뒷면 2017년 새해가 어둑하게 올 것이다. 새해가 뜨기 전에 새해의 어둠과 새해의 새벽의 어스름이 먼저 올 것이다. 사람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동해의 어느 해변과 산에서, 광화문에서, 보신각에서 새해를 기다릴 것이다.
새해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보다는 왜 그것을 해야지?, 를 생각해야겠다. 몸 밖의 자극에 조금 무심해 지고 몸 안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야겠다.
2. 황유원 시인의 첫 시집이다. 두 페이지 이내의 시는 없고 거의 모든 시가 세 페이지가 넘는 아주 두꺼운 시집. 글자보다 소리로 가득찬 시집. 해설을 쓴 성기완 시인의 말을 빌리면 이 시집에서 ‘소리는 소리는 텅 빈 전체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면서, 동시에 커넥터.’
시인은 수줍게 어느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시의 긴 길이가 곧 영감의 증거라고 느낍니다. 긴장감을 포기하더라도 유창한 리듬은 꺠고 싶지 않거든요.”(현대시 3월호, 181쪽) 다양하게 변주되는 이미지와 그 중심을 이루는 리듬감 덕분에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키워드를 꼽자면 ‘비, 소리, 음악, 겨울’. 한 번 읽고 또 읽고 싶은 시집.
떨리는 손 숨기기 위해/ 손의 멱살을 쥐어 본 적 있습니까/ 손톱자국 네 개 희미하게 남아/ 손에게 미안해 지는 저녁
- 간단한 몇 가지 동작들, 31-35쪽 부분
우리가 동화 속 연인들처럼 동이 틀 때까지 놓지 않고 켜 놓은 환한 양손이/ 우리보다 먼저 졸다/ 살짝, 가볍게 벌어지고// 이윽고 완전한 한 마리의 새로 펼쳐진 그것은/ 불 꺼진 손안에 그대로 안긴 채/ 다시 우리의 잠 속으로 날아들게 되는 거겠지
혼자 비 맞고 있는 운동장, 누가 그쪽으로/ 우산을 든 채 걸어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검은 우산을 들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무슨 작은/ 구멍 같아 보이는 사람이 벌써 몇 바퀴째/ 혼자서 운동장을 돌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비 밎으며 뛰놀진 않는 운동장/ 웅덩이 위로 빗방울만 뛰노는 운동장에서/ 어쩌면 운동장 구석구석에 우산을 씌워 주기 위해/ 어쩌면 그건 그냥 운동장의 가슴에 난 구멍이/ 빗물에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는 건지도 몰랐지만/ .../ 우산은 분명/ 운동하고 있었다/ 혼자서 공 차고 노는 사람이/ 혼자서 차고/ 혼자서 받으러 가듯/ 비바람에 고개 숙이며 간신히 거꾸로/ 뒤집어지지 않는 운동이었다/
- 세상의 모든 최대화, 124-128쪽 부분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 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항구의 겨울, 항구한 겨울은 뺄셈이 불가능한 세계. 마냥 쌓이기만 한다. (···)/ 그래도 웃음이 뺄셈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믿으며 그 믿음을 얼린다. (···) 결국 모든 것은 덧셈이겠지만, 영원히 영을 꿈꾸며. 최대한 동그랗게. 차가운 얼음을 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