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건너기
윤성택 지음 / 가쎄(GASSE) / 201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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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사진 에세이집, 그 사람 건너기, (윤성택 글, 김남지 사진), 가쎄



1. 4,5년을 다녔던 까페가 내일이 마지막 영업이다. 부천을 떠나 서울 강서구로 재오픈 한다고 했다. 매일 아침 7시 30분쯤에 문을 여는데 일찍 출근할 때 가끔 들러 커피를 사가거나 잠시 앉아 쉬다 가곤 하던 곳이다. 건물 임대인과 재계약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떠난다고 하면서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아쉬워하셨다.




“죄송하죠.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이 1000명은 될 거에요.”
“아쉽네요. 가게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가게 이전한다고 인테리어 신경도 많이 못 썼는데, 사진도 다 떼버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커피를 들고 나왔다. 이전하셔서 돈 많이 버시라는 말씀대신 건강하시라는 말씀만 드렸다. 건강하게 여기에서처럼 주변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길 바랐다.





2.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헤어짐 뿐 아니라 근무지, 아끼던 물건, 강과 나무처럼 작별을 반복한다. 윤성택 시인의 사진 에세이 집에 실린 흑백 사진들과 실린 글을 보면서 이별과 만남, 고독, 말하지 못하는 것들의 외침을 생각하게 되었다. 실린 글들은 산문이 아니라 대부분 시적인 것과 시(詩)들이다. 시집으로 묶어내지 않고 왜 사진과 결합한 에세이집을 낸 것일까. 글을 쓰고 사진작가가 그에 알맞은 사진을 덧붙인 것인지, 시인이 사진을 보고 글을 쓴 것이지 궁금했다. ‘존재에 대한 성찰’과 ‘사랑과 고독’ 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어라고 생각한다. 것으로는 웃고 떠들고 밝아야 하는 사람, 그 밝음의 그림자에서 웅크리고 우는 사람,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부딪힌 멍’을 보며 서글픈 사람, ‘사랑을 견디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메모


- 식물인간 266쪽
나의 반생은 아직 잠들어 있는 방입니다./ 중략 / 몸은 지방에 있고 생각은 혈액에 담깁니다./ 내가 잠들어 있지만 당신은 새벽에 깹니다./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지도가 없는/ 막차일 때, 당신이 놓친 인연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잠은 일지에 적혀 있고/ 당신 몸 어딘가 점에도 찍혀 있습니다/ 아직 깨어나지 못합니다 가습기, 링거,/ 심전도 그래프가 전부인 내게/ 식물은 아름다운 나의 잉여입니다.




- 다시 한 사람 282쪽

몸이 생각을 앓고 나면/ 다시 생각이 몸을 추슬러 한 사람이 된다.//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부딪힌 멍을 샤워하다 발견할 때./ 차가운 물이 눈동자에 닿기 전 순식간에 감는 눈의 반응에,/ 몸이 나보다 더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느낀다.// 화초 잎을 가위로 자른 다음 다시 가위를/ 화초에 가까이 대면 화초도 운다./ 잎맥 사이로 급속하게 전기저항이 일면서 안으로 부르르 떠는 것이다.//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니 / 내 몸도 나 아닌 마음이 있는 걸까./ 내 몸에 들어가/ 갑옷을 입듯 깨는 아침.// 내 몸이 가만히 부르르 떤다.




-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198쪽

일기예보처럼 예감이 두렵다./ 오늘 비는 너의 창가에/ 한동안 서성일 것이다./ 아직 돌아 나오지 못한 길목,/ 가로등이 환하게 아픔을 켜고 있다./ 너는 파문처럼 번지고/ 나는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것,/ 사랑은 그렇게 무릎걸음으로 너에게 가는 것이다./ 기어이 아파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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