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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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1. 당나귀는 몸집은 작지만 고집이 세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산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은 고집불통 최고 권력자를 조롱하는 말인 동시에 연민의 감정이 담긴 말이다. ‘어린’ 당나귀는 제 운명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이리저리 날뛰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길들여져 온순해질 것이다. 귓불을 어루만지며 조심스레 나귀의 귀지를 파내고 목을 쓰담쓰담 어루만지며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





2. 시집 한 권에 실린 작품들에서 ‘이 시(詩) 정말 좋다’고 느끼는 시가 2-3편만 있어도 성공적이라고 한다. 김사인 시인의 이 시집은 ‘정말 좋다’와 ‘좋다’가 많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어린 섬들을 안고 어둑하게 돌아앉습니다./ 어둠이 하나씩 젖을 물’리고 ‘몸 안쪽 어디선가 씨릉씨릉/ 여치가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 바다’가 있는 통영(「통영」), ‘모과나무 우듬지’에 붙어 ‘끝나지 않을 오포(午砲) 소리같이 캄캄한’ 여름이 지나면(「매미」)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한 가을볕’이 내린다.




서정적인 시 뿐 아니라 알레고리를 통해 사회 비판성을 강하게 표현하는 시「내곡동 블루스」 등)도 있지만 나는 「풍선」이 좋았다. 터져버릴 줄 알면서도 온 힘을 모아 불수밖에 없거나 손 놓으면 하늘로 날아가 버릴 풍선을 손에 놓지 못하고 있다. ‘불리지 않으면 풍선이 아닌 걸’.




3. 풍선 26쪽, 전문

한번은 터지는 것/ 터져 넝마 조각이 되는 것/ 우연한 손톱/ 우연한 처마 끝/ 우연한 나뭇가지/ 조금 이르거나 늦을 뿐/ 모퉁이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많이 불릴수록 몸은 침에 삭지 무거워지지./ 조금 질긴 것도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네./ 모퉁이를 피해도 소용없네./ 이번엔 조금씩 바람이 새나가지.// 어린 풍선들은 모른다/ 한번 불리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다는 걸./ 뽐내고 싶어지지/ 더 더 더 더 커지고 싶지.// 아차,/ 한순간 사라지네 허깨비처럼/ 누더기 살점만 길바닥에 흩어진다네.// 어쩔 수 없네 아아,/ 불리지 않으면 풍선이 아닌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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