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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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양·제천 앓이를 했었다. 아파트가 밀집한 도심에서 차를 타고 2시간만 달려도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제천시 청풍면을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담은 청풍호(충주사람들은 충주호라 부른다)를 망루에서 바라보면 물에서 빛이, 빛에서 물이 보인다.

 

한적한 마을에 아무도 찾지 않아도 마을을 떠나지 않은 탑과 옛 고궁의 주춧돌을 보면 아무리 감성이 메마른 사람도 잠깐이나마 상념에 젖을 것이다. 공수부대가 날아와 일주일 동안 산소폭탄을 투하한 듯 제천의 공기는 코에 들어오는 순간 내가 사는 곳의 공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항상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2. ‘월든(Walden)', 소로우가 나고 자라고 평생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콩코드 마을의 호숫가. 월든 호수에는 네 권의 물고기(로빈슨 크루소 같은 모험기, 자연묘사, 걸리버 여행기처럼 사회에 대한 풍자서이자 정신적인 자서전, 아마도 최초의 녹색 서적 10-11쪽)가 살고 있단다. 내 생각엔 장자가 언급한 북쪽 바다에 산다는 ’곤‘이라는 물고기도 연암 박지원이 말했던 수레바퀴의 일부분도 호숫가에 발을 담그고 있다.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들어가 1847년 9월 6일 호숫가를 떠나 1862년 마흔 다섯에 세상을 떠난 시인이자, 사상가, 철학자. 아니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모든 것도 아닌 사람의 2년 동안의 생생한 체험이 책에 담겨 있다. 솔직히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분량이 500여 페이지고, 번역자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원전의 수많은 비유와 시적인 표현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 실제 보지 못한 1800년대의 이국의 호숫가의 정경을 상상하면서 읽어야 하는 피로감이 책을 읽는데 조금 방해를 준다. 그렇지만 잠이 와서 책장을 덮을까 하는 시점에서 만나는 표현과 깨달음은 완독의 기쁨으로 되돌아왔다. 멕시코전쟁과 미국 흑인노예제도에 반대하며 세금 납부를 거부해서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직후 쓴 ‘시민의 불복종’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 메모

 

남부의 노예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북부의 노예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감독일 때이다. 22쪽

 

- 한 농부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채소만 먹고는 못 삽니다. 뼈가 될 만한 성분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서 자기 몸에 뼈의 원료를 공급해줄 원료를 공급하는 데 정성껏 하루의 일부분을 바친다. 농부는 이런 말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소 뒤를 따라다니는데, 그 소인즉 풀만 먹고 자란 뼈를 갖고서도 온갖 장애물을 헤치면서 농부와 그의 육중한 쟁기를 끌고 있다. 25쪽

 

 

- 미개인들은 저마다 최상의 주택에 못지않은 집을 한 채씩 가지고 있고, 이 집은 소박하고 단순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하늘을 나는 새는 둥지를 가지고 있고 여우는 굴을 가지고 있으며 미개인들도 오두막을 가지고 있건만,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반수도 안 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54쪽

 

 

 

나는 푸리족 인디오처럼 살았다. 그들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나타내는 데에 한 가지 말밖에 없다. 그래서 어제를 의미할 때는 등 뒤를 가리키고, 내일은 자기 앞을, 그리고 오늘은 머리 위를 가리켜서 뜻의 차이를 나타낸다.” 172쪽

 

 

- 이 콩의 결실을 내가 다 거둬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 콩들의 일부는 우드척을 위해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밀의 이삭이 농부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서는 안 되겠으며, 그 낟알만이 밀대가 생산하는 모든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농사가 실패하는 일이 있겠는가? 잡초들의 씨앗이 새들의 주식일진대, 잡초가 무성한 것도 실은 내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밭농사가 잘되어 농부의 광을 가득 채우느냐 아니냐는 비교적 중요한 일이 아니다.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초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251쪽

 

 

호수는 하나의 경관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지형이다. 그것은대지의 눈이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은 자기 본성의 깊이를 잰다. 호숫가를 따라 자라는 나무들은 눈의 가장자리에 난 가냘픈 속눈썹이며, 그 주위에 있는 우거진 숲과 낭떠러지 들은 굵직한 눈썹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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