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미치다
김동원 지음 / 만인사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김동원, 시에 미치다, 만인사, 2014

 

1. 김동원 시인이 인터넷까페 ‘텃밭시인학교’에 연재한 글과,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에 수록된 내용을 수정, 보완한 책이다. 


'시에 미치다'. 제목이 한 줄의 시다. '미치다'는 광(狂) 이 아닌 도(道 , 到)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그를 시에 다다르게 했을까, 무엇이 그 길에 이르게 했을까. 손을 뻗어 쥔 것은 "허공 한줌"이 아니었을까. 


2. 시에 관한 일반론부터, 나의 애송시까지, 시인의 시심을 불러일으켜 그것이 형상화되고 응축되어 시가 탄생하는 과정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해주는 책이랄까. 무엇보다 책 속에 담긴 많은 명시들이 있다.



- 좋은 시의 요건(미당문학상 심사기준)

“대상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발견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응결 혹은 형상화의 미학이 돋보여야 한다. 가독성과 흡인력이 높은 작품이어야 한다. 그리고 독자의 나태한 일상을 흔들고 긴장하게 만드는 힘(낯설게 하기)”

 

- 송재학, 공중, 전문, 09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되어 2010년 계간지 문학사상이 주관한 제25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 놓으니 허공이라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뒷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새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인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게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一家)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란 곤줄박이의 개체수이다 새점을 배워야겠다

 

: 이 시의 관전 포인트는 허공(虛空)과 공중(空中)이란 시어가 갈마들며 풍기는 기막힌 늬앙스이다. ‘허공의 입김’ '허공의 날숨‘에서 그 예를 확인할 수 있듯, 허공이 만질 수 없는 추상어에 가깝다면 공중은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 “공중의 소리 일가”등에서도 짐작되듯, 촉각과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구상어에 근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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