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이숭원 지음 / 태학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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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이숭원, 2015, 태학사
#김종삼 #김종삼의시를찾아서



1.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에서 철수했고, 북한 정부는 공단설비 등에 대해 동결조치를 취했다. 한미일과 북중러를 가르는 한랭전선이 드리운다. 2016년 4월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이, 11월에는 미국에서 대선이 열린다. 한랭전선은 당분간은 북쪽과 남쪽을 가르는 철조망처럼 서로를 벼를 것이다. 1991년 제네바 핵협상 이전의 체제로 돌아갔다.
나는 전쟁을 모른다. 전쟁을 글로 배웠고 머릿 속으로만 상상했었다. 1950년 전후태어난 나의 부모님 세대와 그 윗 세대는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분들의 말씀처럼 “전쟁을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남침인지, 북침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2. 김종삼 시인에 관한 책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6.25. 전쟁당시 현역 장교로 전쟁발발과 동시에 북녘에 살던 가족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시인은 전쟁을 경험했고 고향을 잃었다. 이후 동생을 잃고 자신을 갉아 먹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 전쟁이 가져온 분단의 아픔이 존재의 슬픔으로 치환되었고 슬픔은 시인이 마신 술에 절여져 진한 향이 나는 작품으로 환생했다.


-- 아우슈비츠, 전문, 58쪽

어린 교문이 보이고 있었다/ 한 기슭엔 잡초가// 죽음을 털고 일어나면/ 어린 교문이 가까웠다// 한 기슭엔/여전 잡초가,/아침 메뉴를 들고/교문에서 뛰어나온 學童이/ 학부형을 반기는 그림처럼/복실 강아지가 그 뒤에서 조그맣게 쳐다보고 있었다/아우슈비츠 수용소 철조망/기슭엔/잡초가 무성해 가고 있었다
: 잡초는 정돈될 수 없는 무질서, 파탄의 상징이다. 59쪽



-- 민간인, 전문, 67쪽

1947년 봄/深夜/황해도 해주의 바다/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3. "ARBEIT MACHT FREI"
“노동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국가가 잘 살면 개인도 잘 살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이 잘되야 국민이 잘산다.”는 확성기 방송이 야밤을 틈타 우리 집 담벼락을 넘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대문에 걸린 저 글귀가 우리 집 문패 같다. "묵화"를 가만히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묵화(墨畵), 전문, 143-144쪽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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