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9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손철주,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생각의 나무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손철주



1. KBS라디오에서 하는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이라는 방송이 있다. 늦은 시각이라 생방송으로 듣지는 못하지만 팟캐스트 서비스가 있어서 전철이나 버스에서 가끔 듣는다. 미술평론가 손철주씨가 명화를 소개하는 코너가 방송 앞머리에 10여분 방송된다. 한 장의 그림을 소개하고 작가, 역사적 사실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데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 들어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책에 실린 수많은 그림 중에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떠올렸다. 떠올리지 않아도 떠올랐다. “四時長春”이라는 그림인데 혜원 신윤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사랑방 같은 툇마루에 신발이 두 켤레 놓여 있다. 빨간 꽃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옆에 검은 색 신이 놓였는데 여자의 신발과 달리 막 벗어 재낀 모양새다. 마음이 급했나보다. 아마도 누군가의 눈길을 피해 한 사내가 여인을 번쩍 품에 안고 들어갔을 것이다. 사랑방 오른 켠 상단에는 “四時長春”이라는 문패가 걸려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계집종이 술병 하나와 사발 2개를 얹은 넓적한 쟁반을 받쳐 들고 서 있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방 앞에 놓인 두 켤레 신발을 보고 있다. 술을 가져왔노라 아뢰어야 할지, 그대로 방 앞에 술을 놓고 가야 할지 우물쭈물한다. 문태준 시인의 시 하나가 떠올랐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하고 봄날의 햇볕은 따사롭다.




장춘(長春) 31쪽 전문,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 2015

참 꽃을 얻어와 화병에 넣어두네// 투명한 화병에 봄빛이 들뜨네// 봄은 참꽃을 기르고 나는 봄을 늘리네




2. 총 4부 구성으로 1부는 옛 그림, 2부는 도자기 같은 사물, 3부, 4부는 서양 미술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글을 그어 하나의 책이 완성되었다. 나는 책에 그을 수 없는 밑줄을 마음껏 그었다.

- 산수화는 산수를 그리되, 심상화된 산수를 그린다. 그래서 산수화는 지도가 아니다. 설혹 실경을 그렸다손 치더라도 산수화의 실경은 그린 이의 대체화된 심상이다. 그의 이상경이 실경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경치를 그리는 것, 즉 ‘사경(寫景)’은 뜻을 그리는 것, 즉 ‘사의(寫意)’와 같은 것이다. 24쪽



- 조선의 초상화는 알다시피 ‘전신기법(傳神)’을 가장 큰 자랑으로 삼는다. 모델의 정신까지 화면에 살려내는 이 기법은 눈동자 묘사에 성패가 달려 있다. 66쪽



- 매화를 그림으로 그릴 때 꽃은 그러나 뒷전이다. 매화 그림의 매화다움은 몸뚱이에 있다. 매화 그림에는 다섯 가지 요점이 따른다. 첫째가 ‘체고(體古)’다. 몸이 늙어야 한다. 풍상 겪은 매화가 조형성을 이룬다. 둘째가 뒤틀린 줄기이고, 말쑥한 가지와 강건한 끄트머리가 그 다음이다. 아리따운 꽃은 맨 마지막으로 친다. 그러니 매화의 절정이 꽃에 있다고 믿는 이는 매화다운 매화 그림을 감상하기 어렵다. 매화 그림의 덕성은 바로 늙은 몸에 있는 것이다. 82쪽



- 20세기 추상 미술을 용이하게 바라보는 두 가지 기은 ‘조형’과 ‘표현’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기하학적이건 서정적이건 순수한 꼴을 만들어가는 방식인 조형, 그리고 합리적인 전후 사정에 얽매임 없이 감정의 솔직하고도 자동기술적인 측면을 따라가는 표현은 추상화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요컨대 어느 쪽이든 마침내 외적인 현실 세계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고유이 현실을 창조하게 됐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208쪽




- 워홀의 판화는 소인이 찍힌 우표, 그의 판화 기법을 두고 영국의 평론가 존 워커는 ‘회화와 사전 두 마을 사이에 자리 잡은 여인숙’이라 했다나요.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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