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마을

#고추장마을






매운 사람 맛을 보러 간 고추장 마을에 사람이 없다

거뭇한 장독대만 차렷자세로 어깨를 붙이고 삼열횡대로 웅크리고 

지나가는 한 두 사람을 쳐다본다

나는 수 년 채 무거운 지붕을 이고 햇볕을 보지 못한 고추장에게 

몇 살인지 물어본다 분명 외치는 것 같은데 울려서 알아들을 수

없다 

널찍한 도로와 서로 원조라고 우기는 간판들

고추장 마을에는 고추장이 없다

고추장은 건너마을 고추장 박물관으로 수 년 전 이사를 갔다

오랜 세월 부대끼며 살다가 생이별을 한 장독과 장이 흘리던

눈물을 풀어 국을 끓이고

산나물에 고추장을 넣고 밥을 비벼 먹으니 눈물을 쏙 뺀다

슬퍼서가 아니라 더워서 나는 열이 많다 눈물은 많지만

고추장은 장독을 떠나 치약같은 독방에 살다가 이민을 간다

여행객들은 여행지의 설렘을 상상하며 웃지만 고추장은 

우리말과 우리향을 잊지도 잃지도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주먹을 쥐고 장독보다 정없는 여행가방에 이중감옥살이를 한다

고추장 마을에는 고추장이 없다

내가 가면 밥 비벼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도 새끼손가락을 장에 찍어

맛 보라던 훈훈한 인심도 없다

티브이 광고에 간간이 나오는 "고추장 마을로 오세요"라는 말은

오래전 보았던 기록영화같다 "잃어버린 잊어버린 고추장을 찾아주세요"라고 외치는 이산가족 같다

지금 못 오는 줄 알면서 "내가 죽어야 오겠제"라며 고개를 장독에 묻는 침묵의 외침같다

고추장은 독 속에서 독을 품고 독을 뿜고 독이 된다

독은 밥이 되고 독은 살이 되어 한 살 두 살 나이가 든다

독은 고독하게 끊임없이 땀을 낸다 땀은 증발하고 흡수되어

독이 된다

고추장은 땀이고 독이고 눈물이고 침이고 샘이다

고추장 마을에는 고추장이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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