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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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자 (함민복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중)

#줄자 #함민복

줄자는 감겨 제 몸을 재고 있다
자신을 확신해야 무엇을 계측할 수 있다는 듯
얇은 몸 규칙적인 무늬
줄자의 중심엔 끝이 감겨 있다
줄자는 끝을 태아처럼 품고 있다



수도자의 뇌를 스스륵 당겨본다



: 시집 한 권을 읽으면 기억에 남는 시 한 두 편이 있다.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화려한 수사(修辭)를 보면 기가 질려 ‘이래서 시인은 다르구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저녁상에 밥 한 공기와 김치 하나만 있어도 따뜻한 저녁처럼 느껴지는 시도 있다. 함민복의 시는 가난하다. 가난에 울고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개천에서 용나는’ 스토리가 아니다. 함민복은 ‘가난팔이’시인이 아니다. 가난은 일상이고 사물이고 현실이고 실존이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라는 어느 시집 제목처럼 가난은 고향이다.


사람을 가방끈의 길이, 돈의 높이, 나이테의 둘레로 판단하며 줄자를 들이대는 세상에서 줄자를 ‘태아를 품은’ 어머니, “수도자의 뇌”라고 환대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발견의 차원을 넘어 발명이라 부르고 싶다. 뇌 속의 해마 같은 “얇은 몸”을 칭칭 감고 고뇌하는 수도자의 삶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그런 가난이라면 가난하고 싶다. 가난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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