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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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여행의 의미(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1. 제천행 기차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 승택이가 오늘 장가를 간다. 제천행 직행이 다른 차편이 없어 뜻하지 않게
관광열차를 타게 됐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나 나올법한 신형원의 개똥벌레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옆 자리에는 영어로 외국인 커플이 호박죽을 먹으며 재잘거린다.

어제도 두 군데나 결혼식에 참석했다. 10월의 어느 멋진날인 10월 3일 개천절에 결혼을 했으니 행복하게 잘 살겠지. 많은 사람들이 중앙에 대열을 이루어 사진을 찍었다.

"자자, 왼쪽 두번째 계단에 계신 남자분 옆으로 살짝. 네~ 좋구요. 박수좀 쳐주세요. 한 번 더요."

사진사가 신랑신부보다 더 흥분했는지 목청을 높인다. 하객들은 구령에 맞춰 몇 초간 미소를 머금는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1차적 이유는 신랑신부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결혼식은 웃기 위해 간다. 오랜만에 친구,친지, 못 만났던 직장동료의 얼굴을 보고 악수하고 웃는다. 둘이서 마주보고 웃고, 다 모여 사진기 앞에서 같이 웃는다. 우리 뇌는 바보라서 진정성 없는 억지웃음이라도 건강에 좋다고 한다. 지갑은 얇아졌지만 몸에 좋다니까 보약 먹은 셈 치고 웃는다.

2. 결혼은 여행이다. 두 사람이 마주 보다가 같은 곳을 이제 같은 곳은 본다. 간과하기 쉬운 것은 같은 곳을 보는 것이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이 이불을 덮는다고 해서 같아지는게 아니다. 비유하자면 같은 곳에 여행가서 각자 자기가 맘에 드는 곳을 둘러본 후 다시 만나 같이 숙소로 돌아가는 여행이다. 물론 같이 보고 다닐수도 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결혼을 해도 개개인의 존재감은 뚜렷이 발현해야 건강한 한 묶음이 된다는 생각이다.

3. '연금술사'에서도 양치기 산티아고는 피라미드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늙은 왕, 크리스털 상인, 영국인, 연금술사, 병사들을 만난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고자 사막을 걷고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에서 묵는다. 사막의 여자를 만난다. 다시 떠난다.
여행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말을 빌리자면 삶의 만류인력에서 벗어나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라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수가 없다. 그건 우리가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여행자에게 여행지는 잠시 머물다가 오는 곳이다. 정류장이 삶의 터전이 되는 순간 참을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요정과 호수의 대화부터 의미심장하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놀란 요정들이 반문했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동화같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언어인 사랑의 의미, 하루하루의 순간 속에 영겁의 세월이 깃들여 있다(172쪽)는 깨달음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4. 작년 이 맘때 쯤 혼자 동유럽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적어 놓았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과거가 현재로 바뀌는 연금술을 익힌다.

- 여행에게 보내는 고백편지 -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 그래서 널 항상 찾아다녔지. 게시판도 보고, 티비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너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면 가리지 않았어. 너를 찾으러 작년에만 파주를 시작으로 강화도, 문경, 강릉, 제주도까지 안가본 데가 없어.

심지어 독일, 체코,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까지 돌아보았단다. 한가지 느낀건 해외에도 정말 너를 아는 한국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나처럼 너를 만나고 싶어 안달이었지 다들.

문득 너의 조상은 누구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어. 족보를 찾아보니 시조가 헌법 14조 거주이전의 자유더라. '국내에서의 거주이전, 국외이주와 해외여행의 자유, 국적이탈의 자유 할아버지'들이 나와 있었어. 그런데 '무국적자가 될 자유 할아버지'는 호적에서 파였는지 나와 있지 않았어. 호구조사 좀 했지.

너를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어.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막 가슴이 설래.
처음 유럽에서 본 날이 생각나. 그땐 참 난 순진했었지. 용기가 안나서 패키지를 들고 주선자랑 같이 나갔잖아. 초가을 이었는데 날씨가 죽였지. 혼자 나갈까 생각했지만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데서 소개팅은 처음이었고 갑작스럽게 일정이 잡혀서 어쩔 수 없었어.

머리스타일은 동화책에 나올 법한 빨간머리로 염색한 머릿결을 휘날리면서 앉더니, 체코에 있는 체스키크롬노프 미용실에서 염색했다면서 자랑했었지. 프라하 레스토랑의 야간 조명에 비친 너의 얼굴. 그 집 요리사인 밀란 쿤데라 아저씨의 말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난 느꼈어.
프라하 레스토랑에서는 매년 5월에 '프라하의 봄' 대박 할인행사를 한단 너의 말 아직도 기억나.

난, 말하다가 멈칫 하는 그 틈에서 너가 짓는 표정을 좋아해. 너만 바라 보고 있으면 머리에 있던 세포가 심장으로 우사인볼트처럼 뛰어가서 멀리뛰기하는 기분이야.

난 항상 널 보러갈 때 가방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들고 가. 너에게서 배운 지혜와 널 통해 건너건너 알게 된 사람들과의 추억을 한 아름 담아올 여백의 공간을. 그렇다고 내가 게으른 건 아냐. 몸이 게으른 사람은 너를 제대로 알 수 없잖아. 제한된 시간 속에서 너를 지긋이 바라보는 여유는 필요하지만, 게으름으로 몸이 늘어져 소중한 시간을 갉아 먹으면 안되니까.

나랑 넌 애초에 천생연분이었어. 나 책 좋아하는거 알지?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다'라고 하잖아. 나는 바람구두를 신고 세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너가 나랑 결혼해줄때까지 쫓아다닐거야. 좀 섬뜩하지?

근데 말야, 이제 와서 말하는데 좋은 건지 나쁜건지 너! 돈 좀 밝히더라. 특히 해외에서 너랑 데이트 10일정도 하면 나 집에서 라면만 먹는거 알어? 쪼잔해보이겠지만 사실이 그래. 그렇지만 후회는 없어.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했거든.

널 볼 떄면 잠시 지구의 만유인력에서 벗어나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기분이야. 시간이 막 느려지지. 하루하루 반복된 일만 하면 금새 1년이 지나가는데 너를 만나는 순간은 시공간이 지구와 다름을 느꼈어. 말로만 듣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내가 몸소 체험할 줄이야!!

항상 너를 그리워 하고 사랑할게. 내 맘 알지?
2015년 2월 24일 밤, 송내동 골방에서.
#여행 #결혼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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