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 경종.영조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도'개봉에 즈음하여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15권(경종,영조실록)을 읽고



1. 어릴적 집에 배달되는 신문을 탐독했다. 스포츠면만. 축구,농구,배구,야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골프기사도 읽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봄부터 가을은 야구경기를, 겨울엔 농구와 배구경기를 중계했다. 빨강 유니폼을 입은 선동렬과 허동택(허재,강동희,김유택)트리오의 기아자동차,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고려증권 배구팀을 좋아했다.

매일 스포츠 경기만 보던 나에게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만큼 다른 것도 박사가 되면 서울대 가겠다. 내가 어릴 때는 공부하고 싶어도 못했다. 매일 할아버지가 산에 가서 꼴 베어 오라고 해서..."



2. '왕의 남자'를 디렉팅한 이준익 감독이 절치부심 그동안의 흥행실패를 만회하고자 '사도'로 돌아왔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전 국민이 다 아는 스토리인 뒤주에 8일 동안 갇혀 있다 죽은 사도세자의 비극을 얼마나 뻔하지 않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영화프로나 기사를 통해 보면 현대에 맞게 영조와 사도세자의 대사도 수정하고, 아버지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3대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했다고 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을 읽어 나가면서 왜 영조는 그토록 정치에서는 '탕평'(탕평은 '서경'의 치움침도 없고 무리 지음도 없다면 왕도가 탕탕 평평해질 것에서 따옴,79쪽)을 주창했으면서도 자식은 왜 그토록 편애했는지 안타까웠다.

저자는 비극의 원인을 왕과 세자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신하들은 이간질은 고사하고 세자의 비행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왜? 미래의 임금이니까.(209쪽) 비극의 기본 요인은 결국 왕과 세자에게서 찾아야 할 것. 둘은 궁합이 안맞음. 자식에게 호불호가 강한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싫어하는 자식. 왕은 자신이 어렵게 이룬 정치적 안정, 튼튼한 왕권을 유지해나갈 후계자를 원했다.(214쪽) 왕에게는 대안이 없었지만 세손(정조)이 나타났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도세자란 시호를 내린 것을 '곧바로 후회'한 것으로 해석하지만, 이는 세손을 역적의 아들로 만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 생모의 입을 빌려 불가피성을 내보이고, 변란을 꾀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제거 명분을 확보하면서 세자 개인의 병에 의한 광기의 탓으로 돌려 진짜 역모는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226-227쪽)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났고, 선왕인 경종의 세자가 아닌 세제로 노론을 등에 업고 즉위한 왕은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왕조를 평탄히 이어갈 역량을 세자가 익히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방법이 틀렸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도 방법이 그르다면 정당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영조는 너무 오래 살았다.



3. 생각은 자연스레 '자녀교육'의 문제로 넘어갔다. 예전에 포스팅 했던 자녀교육에 관한 글을 포스팅해본다.




- 어색한 스킨쉽과 부모의 자녀교육권-

1. 스킨쉽

독감에 걸린 여자친구를 며칠째 못 보다가 부천역에서 만나 오랜만에 양꼬치를 먹으러 갔습니다. 모바일 쿠폰을 미리 사 둔 덕분에 12,000원에 양갈비살과 탕수육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양 갈비살이 화로에서 익어갔고 하나씩 집어서 먹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자친구가 갑자기 속삭이는 말투로 옆을 보라며 옆에 있던 서빙하시는 딸과 아주머니를 눈으로 가리켰습니다. 좌식 테이블이 있는 마루에 걸터 앉아 있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이 엄마에게 볼을 비비며 뽀뽀를 했다는 겁니다.

‘우리 집은 스킨쉽이 많이 없는 집이라서 저런 장면을 보면 내가 막 오그라들어, 언젠가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1남 3녀를 기르면서 다른 집처럼 딸들을 이쁘다이쁘다 아껴가며 안아주며 키우지 못한게 후회가 된다고 말이야. 오빠 집은 어땠어?’

‘음..우리 집은 비교적 자유로운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이지. 그래도 엄마한텐 스킨쉽을 곧잘 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난 담에 애들을 정말 애지중지 하며 이쁘게 한 번 키워보고 싶어. 우리 집은 딸딸딸 아들의 1녀 3남이라 정말 치열했거든’

집에 돌아오면서 곰곰이 다시 한 번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팔을 좋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머니의 어깨와 팔꿈치사이의 맨드랍고 보드라운 부분, 어릴 때는 엄마품에 누워서 제 손등을 그 부분에 대고 잠을 자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여동생은 ‘저건 분명 애정결핍’이라며 놀려대고 전 ‘난 몸에 열이 많아서 차가운 그 부분이 좋은거야’ 우겼습니다. 문득 예전에 큰어머니가 막내 사촌 남동생은 큰어머니 배꼽을 만지는 버릇이 있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2. 부모의 자녀교육권

자연히 대화는 가풍, 집안의 분위기, 부모님의 성향과 교육방식이 자식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로 넘어갔습니다. 요새 한창 헌법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던 중이라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부모의 자녀교육권’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교육할 헌법상 권리가 있습니다. 민법상의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교양의무, 거소지정권, 징계권 등과 함께 부모의 자녀에 대한 권리 중 핵심이 교육권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과거 과외금지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면서 일차적으로 학교 밖에서는 부모의 자녀교육권이 학교 내에서는 부모와 국가가 공동으로 자녀를 교육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적으로는 학교 밖에서는 부모와 학원이 자녀를 교육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열은 유명합니다. 강남의 집값이 비싼 이유 가운데는 명문대를 보낼 수 있는 유명 입시학원이 많다는 점도 포함됩니다. 사회 지도층인사들이 위장전입을 해서 문제된 경우에 하는 변명의 단골 테마도 자녀 교육입니다.

‘나도 결혼 안했을 때는 얘들을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키우려고 했었어. 근데 막상 학부모가 되고 다른 얘들한테 성적이 뒤처지는 것 보니까 불안하고 남들 하는 것 시키게 되더라’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명문대 입학과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직장, 남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만한 사람과의 결혼, 출산, 명문대 입학을 바라는 부모,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집안에 시집 장가 보내고 싶은 부모의 욕망..
무언가 잘못된 악순환 같습니다.



3. 부모의 자녀교육권의 한계

부모의 자녀 교육권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체벌의 명목으로 심한 폭행을 하거나 머리를 밀어버리는 것은 자녀의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자기결정권 침해입니다. 부모의 기본권과 자녀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핑계로 자녀의 행복까지 부모가 결정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시선에서 성공과 행복을 판단하고 자녀에게 부모의 신념을 주입하고 강요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외형적으로 부모가 원하는 길로 자식이 걸어가서 부모의 꿈을 이뤘다고 만족해 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테러입니다.

자녀의 인생은 자녀가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현재시점에서 부모가 생각하는 성공이 미래의 자식세대에서는 성공적인 삶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너맘껏 뜻을 펼치도록 든든한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공부하라, 책 읽으라 지시하지 말고 부모가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 일이 가장 어렵기 때문에 부모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얘들은 보습학원을 보냅니다.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고, 10점 더 받아서 서울에 있는 대학 나와서 직장에 취직하고 아등바등 사는 지금 부모님들은 행복하십니까?

부모의 자녀 교육권이 부모의 못다한 한을 푸는 자기실현권이 아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